빨간 입술 3회
당신 눈썹 같은 초승달이 하늘에 걸려 있는 밤입니다. 문득 눈물이 날 것 같네요.
돌아가신 울 아버지 눈썹도 저랬습니다. 아버지는 전집류의 책들을 판매하는 외판원이셨어요. 사람들이 얼마나 책을 읽지 않는지, 그런데도 얼마나 많은 책들이 이 세상에 나오는지 아버지는 늘 신기하다 하셨습니다. 하루는 책을 팔려고 들어간 집의 개에게 물려 다리에서 피가 났어요. 내가 개한테 물린 아버지 다리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우니까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책 같은 거 안 읽어도 사는 데 아무 불편 없다는 걸 개도 아능기라.”
“책”하고 발음해 봅니다. 아버지는 책을 참 사랑하는 분이셨어요. 오빠와 나는 가끔 점심을 굶으면서도 아버지가 팔지 못한 책들을 읽었답니다. 고등학교 시절, 점심을 싸가지 못한 나에게 자기 도시락을 먹으라고 내주던 짝꿍이 생각납니다. 지독한 고도 근시에다가 얼굴에 빤한 데가 없이 여드름이 알알이 박힌 내 짝꿍은 부잣집 딸이면서도 참 착하고 인심 좋은 아이였어요. 얼굴에 빤한 데가 없이 가득 난 여드름 때문에 어떤 날은 그 애가 화성인처럼 보였어요. 그것도 아주 착한 화성인이요. 저에게 자기 도시락을 내주는 그 애에게 “너는 여드름 때문에 얼굴이 빨개서 꼭 화성인 같아”라고 한 말이 지금도 마음에 걸린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누군가를 오래 미워할 필요가 없어요. 상대는 이미 여러 번 뉘우친 뒤일지도 모르니까요. 아무튼 그 애가 내게 내밀어 준 도시락은 환상이었어요. 지금도 저는 그 도시락을 가끔 꿈속에서 본답니다. 꿈속에서 아버지는 제가 먹지 않고 가져다준 짝꿍의 도시락을 열면서 감탄사를 연발하십니다. 어릴 때 할머니가 싸준 도시락과 똑같이 닮았다나요.
우리 아버지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고 자라 가난한 사람으로 죽어간 분이십니다.
이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참 많아요.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로 태어난 사람들이 늘 부자인 줄 알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거든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고생 하나 안 하고 자란 사람이 인생의 끝없는 역경을 만나 부서지는 모습은 정말 안쓰럽습니다. 마치 영화 <마지막 황제>에 나오는 주인공처럼요. 사람들은 쉽게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구분하지만 실은 있다가도 없는 자와 없다가도 부자가 되는 자가 있기 마련이지요.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비하면, 지금 저는 무척 부자가 된 기분입니다.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도시락’은 역시 ‘책’처럼 그리운 이름입니다. 여드름이 온 얼굴을 덮어 빠끔한 데가 없었던 그 부잣집 딸내미 내 짝꿍은 지금은 어디서 뭘 하는지 궁금합니다. 아직도 부자로 잘 살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착하고 맘씨 좋은 화성인이 아니라, 지금 제가 사는 마을의 이웃들은 그야말로 무섭고 낯선 화성인들이지요. 화성에 생물체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데, 그곳에 그 옛날 내 짝꿍처럼 착한 생물들만 살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만일 그렇다면 우리 집 이웃들을 닮은 무서운 지구인들은 그냥 화성을 통째로 먹으려 들겠지요.
저는 어머니 얼굴을 모릅니다. 오빠는 울 엄마가 화집 속의 모나리자처럼 생겼다고 말하곤 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국경 없는 의사회’의 일원이 되어 아프리카로 떠난 오빠가 그립습니다. 오빠는 가끔 제게 그림엽서를 보냅니다. 얼룩말이 그려진 엽서, 혹은 아프리카의 초원을 달리는 사자들의 모습을 찍은 그림엽서들을 받으면, 저는 혼자서도 힘이 솟았어요. “그래. 우리 남매는 아무도 안 도와줘도 이렇게 씩씩하게 잘 살고 있다.” 그런 자부심이 솟아나곤 했답니다. 오빠가 살고 있는 아프리카를 그려봅니다. 얼마 전 어느 다큐프로그램에서 본 아프리카의 풍경이 떠오르네요. 세상의 모든 곳들이 다 그렇겠지만, 아프리카의 그 유명한 세렝게티 국립공원은 그곳의 땅주인인 마사이족들을 다 몰아내고 만들어진, 비아프리카인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곳이랍니다. 하긴 미국이야말로 땅주인인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만든 세상에서 가장 힘센 나라이지요.
세렝게티 국립공원의 주요 관광 수입은 사냥공원에서 이루어집니다.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 사이 사냥 관광차량들이 공원으로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물은 사자와 치타입니다. 150년 전 그루지맥 정책에 의한 원래 취지는 공원의 방문자들을 제한하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보존하는 것이었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정작 고기가 필요한 배고픈 마사이 원주민들은 사냥을 못하게 규제당하고, 그곳은 부유한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의 사냥터가 되었답니다. 하마 한 마리 죽이는데 육만 불, 코끼리 구만 불, 사자는 더 비싸답니다. 자신들의 땅을 빼앗긴 마사이족들은 관광객들에게 사진을 찍히거나 기념품을 팔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을 겁니다. 개발을 코에 건,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만든 백인들의 국립공원 정책은 ‘사람은 자연의 일부’라는 진리를 망각한 실패한 정책이라고 그 다큐 프로그램은 말해주고 있었어요. 사실 마사이족은 사자나 코끼리 같은 거대동물을 사냥하지 않았답니다. 야생동물의 생존은 마사이족들에 의해 오히려 가능했던 것이지요. 세상은 그렇게 황무지가 되어갑니다.
오늘은 ‘골프 치는 변태’가 벤츠를 타고 천천히 눈치채지 못하도록 저를 따라왔습니다. 남들이 들으면 착각이라 하겠지만 사실입니다. 마치 제가 마사이 원주민이 된 기분입니다.
저는 천천히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마사이족처럼 걸으면서 주기도문을 욉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당신의 이름이 거룩한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다. ‘골프 치는 변태’가 제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옵시며…” 그러자 거짓말처럼 ‘골프 치는 변태’는 방향을 바꿔 제 시야에서 사라져갔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