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입술 2회
가을이 왔습니다. 매일 저는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하고 강가의 새벽안개를 바라봅니다. 이 조용한 세상에 아무도 없이 혼자만 살고 있다 해도 행복할 것 같은 기분입니다.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는 괴상한 나의 이웃들도 용서하는 시간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모든 고마운 사람들과 하나도 고맙지 않은 사람들, 아니 언젠가 나를 아프게 한 사람들 모두를 위해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그리운 사람은 늘 멀리 있습니다. 몇 해 전 우리 성당의 젊은 신부님을 좋아했어요. 멀리서 바라보는 그 애틋함까지 사랑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성당에 가서 고백성사를 했어요. “누군가를 사랑합니다. 그분은 사랑해서는 안 되는 분입니다. 매일 밤 그분의 꿈을 꿉니다. 괴롭습니다. 어쩌면 저는 이 신앙을 접어야 할까요? 다시는 이곳에 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고백성사를 듣고 있던, 당신임이 틀림없는 목소리가 잠시 흔들렸습니다.
“자매님 사랑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신앙을 저버리셔서도 안 됩니다. 그 사랑으로 자매님의 기도가 더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자기 전에 주기도문을 열 번 더 외우세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당신은 다른 성당으로 가셨습니다. 당신이 보이지 않는 성당 안에는 한동안 하느님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리운 사람은 늘 멀리 있습니다.
가을은 매일 매일이 축제입니다. 우리 집 마당에 쌓인 낙엽을 쓸며 저는 깜짝 놀랐어요. 누군가 죽은 쥐를 현관 앞에 던져놓은 거예요. 틀림없이 옆집 ‘사이코 부부’의 짓일 겁니다. 그들이 저를 ‘빨간 입술’이라 부르듯 저도 그들을 ‘사이코 부부’라 부릅니다. 하루 종일 밖으로 나오지 않는 그들은 날이 어둑해지면 관 속에서 일어나는 드라큘라처럼 집 밖으로 나옵니다. 대개는 제가 퇴근을 해서 저녁을 차려 먹은 뒤 이층에 올라가 하늘에 떠오른 달을 바라볼 때쯤이지요. 그들은 낄낄대며 집 바깥의 비닐하우스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뭘 하는지 그들은 밤이 깊도록 그곳에 있다가 낄낄거리며 집으로 돌아가지요. 심심하면 우리 집 대문을 발로 차면서요. 이곳에 이사를 온 뒤 이 세상에는 생각보다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그것도 버젓이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매일 골프공을 날리는 우리 옆집 남자, 저는 그를 ‘골프 치는 변태’라고 부르지요. 그가 제 이름을 ‘빨간 입술’이라 부르는 것처럼요. 그 집 앞에는 벤츠 한 대와 아우디 한 대가 늘 서 있답니다.
마당 안에는 커다란 배 한 척이 놓여 있어요. 그는 절대 멀리 외출을 하지 않아요. 제가 눈앞에 보이기만 하면 그는 골프채로 공을 날린답니다. 어느 날 저녁 학교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어둑해진 이층 창가에 올라 건너다보니, 옆집 그 남자의 방에 빨간 불이 켜져 있는 거예요. 그것도 발가벗고요. 그 불빛은 전적으로 저를 향한 불빛이었어요. 이후로도 심심하면 그는 빨간 불을 켜고 발가벗은 채 저를 바라다보았어요. 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옆집 ‘골프 치는 변태’가 제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든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해주십사하고요. 쥐를 던져 넣는 사이코부부가 어느 날 아침 연기처럼 세상 밖으로 사라지게 해달라고요. 그때 먼 곳에서 사랑하는 당신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마리아 자매님 참으세요. 그들은 절대 자매님을 헤치지 못해요. 제가 열심히 기도를 드리니까요.” 엉뚱하게도 혹시 신부님이 저를 사랑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제 곁에서 멀리 떠나 이렇게 지켜주고 있는 걸지도 모르잖아요.
그리운 것들은 언제나 멀리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 2학기가 시작된 가을이었어요.
미술반이었던 저는 국어 선생님이 좋아서 문예반에 앉아 있곤 했어요. 어느 날 선생님은 저를 어느 여고 문학의 밤에 데려가 주셨어요. 귀뚜라미가 울어대는 정말 아름답고 슬픈 밤이었지요, 그날 여고생 언니들이 시와 수필을 낭독하는 소리를 들으며 저는 훗날 시인이 되리라고 생각했어요. 문학의 밤이 끝나고 저는 어둑해진 길목을 선생님과 함께 내려왔어요. 그때 저는 선생님의 손이 저의 어깨에 부드럽게 얹히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게 착각인지 사실인지 지금도 분간이 가지 않아요. 그날 이후 선생님은 달라졌어요. 가끔 데려가 주시던 찻집도 가지 않게 되었죠. 그런데 지금도 알고 싶어요. 혹시 선생님도 나를 좋아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 후로도 오래도록 들었답니다.
오늘 밤도 아무 말 없이 멀리서 저를 기도로 지켜주시는 사랑하는 당신처럼요.
달이 없는 하늘은 너무 심심합니다. 저는 달을 만들어 창이 하늘을 향해 뚫린 제 욕실에 걸어두었어요, 이제 하늘에 달이 없어도 괜찮아요. ‘골프 치는 변태’가 저를 향해 아프게 공을 날려도, 한밤중에 빨간 불을 켜고 알몸으로 서서 이쪽을 바라보아도 저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답니다. 사이코 부부가 죽은 쥐를 던져 넣어도, 옆집 할머니가 덩치 좋은 조폭들을 우르르 끌고 들어가 옆집에 들리든 말든 커다란 소리로 왁자지껄 파티를 열어도 괜찮아요.
할머니가 저를 ‘빨간 입술’이라 부르듯 저는 그녀를 ‘조폭 할머니’라 부른답니다. 아마도 조폭들을 상대로 오랜 세월 고리대금업을 하셨나 봐요. 그중에 가장 힘센 조폭이 할머니의 애인이라는 소문을 부동산 업소에서 들은 적이 있어요. 할머니는 가슴에 용 문신을 한 조폭아저씨에게 ‘오빠’라고 부른답니다. 엉뚱하게도 언젠가 텔레비전 다큐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장면이 떠오르네요. 이차대전 당시 전쟁에 나갔던, 이제는 노인이 된 어느 일본인이 서툰 발음으로 이렇게 말했어요. “오-빠”라는 조선말을 기억한다고요.
정신대로 끌려온 조선의 여인들이 일본 군인들을 ‘오빠’라고 불렀다고 하네요. 그 오빠라는 말이 문득 슬프게 들리는 깊은 가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