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마지막 남자 8회 (최종회)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엄마의 집으로 이사했다.
고양이들의 서식처인 우리 아파트를 떠나 나는 어릴 적 살던 고즈넉한 집으로 돌아왔다. 이곳에 돌아오기가 왜 그렇게 힘들었던가? 엄마의 손때가 묻은 가구들과 벽에 걸려 있는 그리운 그림들, 버려진 채 놓여 있는 아저씨와 엄마가 다정한 모습으로 찍은 빛바랜 사진, 창으로 비쳐드는 환한 햇살 사이로 보이는 먼지, 그리고 침묵…
엄마는 아저씨가 떠난 뒤,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방 하나에 아저씨의 흔적을 남겨두었다. 낡은 옷장을 여니 색깔이 바랜 낡은 바바리코트와 검은색 겨울 코트, 색색 가지의 아름다운 넥타이들이 즐비하게 걸려 있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떠나는 사람들은 옷을 버리고 떠나 다른 곳에서 새 옷을 사 입는 걸까? 하긴 이 세상을 아예 떠나는 사람들이야말로 옷가지 하나 가져가지 못하고 그대로 남겨놓는다. 엄마의 옷장에는 웬만한 사람들은 입을 엄두도 못 내는 화려하고 신비로운 옷들로 가득했다. 어릴 적 그녀는 내게도 그렇게 신기한 옷들을 사다 입혔다. 나는 학교에 가서 몰래 그 옷을 벗어놓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곤 했다. 레이스가 주렁주렁 달린, 어느 먼 나라 공주님의 옷장에서 금방 꺼낸 것 같은 밝은 노란색 드레스를 입고 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렸다. “제네 엄마 아빠가 다 사고로 돌아가시고 없대. 근데 제네 새엄마가 좀 이상한가 봐.” 너무 눈에 튀는 옷으로 뚱뚱한 몸을 휘감고 학교에 오는 엄마가 창피해서, 그녀가 학교에 올 때마다 나는 늘 숨어 있곤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엄마는 그 시대의 진정한 패션 리더였다. 나는 엄마의 옷 중에서 그중 가장 화려한 옷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쯤 덜 화려한 옷 하나를 챙겨 들고 내 연인의 아내가 누워있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것도 그녀의 남편이 절대 오지 않을 시간을 골라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내 손길이 닿지 않아 추레해진 그녀가 눈을 껌벅거리며 누워있는 게 보였다. 한 방에 있던 환자들의 얼굴이 바뀌어 마치 다른 방에 잘못 들어온 것 같았다. 변하지 않은 얼굴은 그녀뿐이었다. 나는 아무 표정 없는 식물처럼 나를 반기는 그녀의 환자복을 벗기고 환한 오렌지색 원피스로 갈아입혔다. 주변을 둘러보니 환자 가족들은 아무도 없었다.
순간 나는 그녀의 무기력한 생명을 이 고통스러운 삶과 연결시켜주고 있는 통로인 가는 호스를 떼어주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내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하지 못했다. 대신 나는 다시는 그녀의 남편을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고 이메일 주소도 바꾸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남편이 절대 올 수 없을 시간에만 몰래 그녀를 만나러 갔다.
그래도 나의 삶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일주일에 한두 번 고양이들을 돌보고, 엄마가 아니면 절대 돌아가지 않을 것 같은 갤러리를 부동산에 내놓았다. 생각보다 엄마가 갖고 있던 그림은 많았다.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그림 몇 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 미술관에 다 기증해버렸다. 육신 하나만도 무거운 내 연인의 아내를 떠올리며, 물건을 처분할수록 내 마음은 가벼워졌다. 나는 매일매일 무언가를 버렸다. 오래된 가구들이랑 수없는 구두와 가방들과 아저씨가 남겨둔 오래된 옷들과 넥타이들, 박물관에나 걸려 있을 법한 엄마의 화려한 옷가지들 중 몇 개만 남기고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했다. 물건을 버리면 버릴수록 나는 온몸과 마음이 가벼워져 갔다. 하지만 사람의 기억도 그럴까?
가끔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오래도록 이사 한 번 하지 않은 그 빨간 벽돌집으로 걸려오는 전화는 잘못 걸려온 전화거나 부동산을 사라고 걸려오는 전화거나 통신사를 바꾸면 공짜 휴대전화를 준다고 걸려오는 전화들뿐이었다. 그리고 가끔 받기만 하면 뚝 끊어지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 끊어지는 전화가 아저씨였는지. 휴대전화를 받지 않는 내 목소리를 확인하려는 내 연인의 전화였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가끔 내 무의식의 저 밑바닥에서 아직도 아저씨를 찾아 헤매는 엄마의 영혼과 교류하는 기분이 들었다.
비 오는 초가을 어둑해질 무렵, 나는 우산을 접고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지하철 구석에 신문지를 깔고 누워 있는 노숙자의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어떤 끌림 같은 것이 그를 향해 다가가게 했다. 엉뚱하게도 나는 그가 아저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무슨 연유로 그가 그렇게 거기에 누워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가까이 가서 ‘아저씨’하고 불러보았다. 옆으로 돌아누운 채 잠시 꿈틀하면서 귀를 세우는 그 남자의 지친 얼굴은 문자 그대로 노숙자의 얼굴이었으나, 그 표정 어딘가에 내 오래된 기억 속의 희미한 아저씨가 있었다. 하지만 만일 그가 정말 아저씨라면 ‘아저씨’하고 부르는 나의 목소리를 못 알아들을 리가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아저씨는, 아니 그 노숙자는 내가 몇 번을 ‘아저씨’하고 불러도 다시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엄마가 오래전 동경에서 보았다는, 휠체어에 하반신을 못 쓰는 중년의 여인을 태우고 엄마 앞을 그저 스쳐 지나갔다는 그 남자가 정말 아저씨였을까? 어쩌면 그건 엄마가 착각 속에서 본 아저씨의 환상이었을지도 몰랐다. 차라리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착각, 환시 같은 거였을지도. 나는 아마 아닌가 보다― 혹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노숙자의 앞을 지나쳤다. 하지만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 날 나는 다시 그 지하철에 내려가 보았지만 그 노숙자는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그는 거기에 없었다. 엄마의 마지막 남자 ‘아저씨’는 산토리니 섬에도, 그 어느 낯선 바닷가에 표류하는 커다란 유람선이나 고기잡이배에도, 달나라에도,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존재였다. 동시에 이 세상의 길바닥 아무 데나 누워있는 그 모두가 다 아저씨였다.
가을이 조금씩 깊어가고 있었다. 정원에는 ‘툭툭’하고 은행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낙엽이 수북이 쌓일 것이다. 여전히 집안에는 평온한 침묵이 감돌았고, 가끔 받으면 끊어지는 전화벨이 울렸다. 정원에서는 매일 벌레들의 오케스트라가 들렸다.
그 많은 벌레들의 소리 중에서 ‘똑딱똑딱’ 시계 소리를 내며 우는 벌레의 목소리를 나는 따로 구분했다. 그리고 나는 엄마가 그 ‘시계벌레’로 환생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들려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