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마지막 남자 4회
너무 어릴 적에 오갈 데 없는 혼자가 되었다는 걸 제외하고는, 사는 동안 대체로 나는 운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혼자됨의 막막함이 늘 나를 따라다녔다. 그래서 아저씨가 우리 곁을, 남편이 내 곁을 떠났을 때도 “그럴 줄 알았어” 하는 자포자기의 기분이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양가의 가까운 친척 부지 하나 없었던 탓에, 어머니의 가장 친한 친구인 지금의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고, 그녀와 나는 친구처럼 형제처럼 이 가파른 세상길을 걸어 올라가는 데 의지할 수 있는 서로의 유일한 지팡이가 되어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가끔 영원히 성숙하지 않고 소녀처럼 늙어가는 엄마를 견딜 수 없었다.
아저씨가 떠난 후 감행한 두 번의 자살 미수는 언제라도 엄마가 나를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그랬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내 곁을 떠나지 않을 다른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남편과 한시라도 빨리 결혼해버린 건지도 몰랐다. 결혼 후에도 엄마는 나랑 같이 살기를 원했다. 나이트가운으로 뚱뚱한 몸을 반쯤 가린 채 나쁜 꿈에서 깨어나 문득 나를 찾을 때, 아무도 없는 빈집을 견딜 수 없었던 건지 모른다.
엄마는 오랜 세월 거의 매일 꿈을 꾸었다. 하루는 아저씨가 집을 나가는 꿈이었고, 다른 하루는 아저씨가 돌아오는 꿈이었다. 크게 보면 이 두 가지의 꿈을 매일 반복해서 꾸었다.
여행을 좋아하던 엄마는 이 세상에 안 가본 데가 없었다. 아저씨가 우리 곁에 있던 시절, 두 사람은 늘 어디론가 떠났다.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혼자 앉아 나는 거실에 걸려 있는 내가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꽃송이들 속에 알알이 들어앉은 사람들의 모습, 서로 부둥켜안은 남자와 여자, 누군가 떠나가는 모습, 어느 낯선 바닷가의 등대…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낯선 풍경을 바라보는 일보다는 낯익은 일상을 사랑한다. 어디론가 떠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떠난 자리로 돌아오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들이 떠나는 걸 보는 것도,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이 떠나는 뒷모습을 배웅하다 보면 왠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다.
내가 결혼하기 한 달 전쯤 엄마의 생일에 우리는 같이 뉴욕을 여행했다. 그게 아마 우리 둘이 한 유일한 여행이었다. 뉴욕은 그녀에게 특별한 곳이었다. 맨해튼 소호의 갤러리들을 돌아보다 그곳에서 아저씨를 처음 만났고, 센트럴 파크 주변을 한 바퀴 도는 마차 속에서 첫 키스를 나누었다. 그때 엄마는 그를 그렇게 많이, 죽을 만큼 사랑하게 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저 뛰어난 심미안을 지닌, 젊고 매력적인 남자라고만 생각했다.
엄마는 아저씨와 같이 여행을 갔던 곳 중에서 그리스의 섬들을 제일 사랑했다.
하얀색의 집들과 파란 지붕들이 그림처럼 빼곡히 모여 있는 그리스 산토리니 섬의 ‘이아마을’의 추억을 그녀는 늘 잊지 못했다. 하얀 집들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산토리니 섬의 이아마을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하염없이 구불구불한 길들을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그 높은 곳 꼭대기에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들이 숨어 있다고 했다. 아저씨는 그곳에 집 한 채를 사서 갤러리를 열고, 여름이면 우리 세 식구가 오순도순 살자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이후 언제부턴가 달력 속의 산토리니 마을의 풍경은 언젠가 그곳에서 살았던 것처럼, 나의 기억 깊숙이 자리 잡았다. 나는 아무 의식이 없는 내 연인의 아내에게 가본 적도 없는 그리스 섬들에 관해 이야기해주었다. 이야기가 아니라 독백이었을 산토리니 섬 마을의 풍경에 관한 이야기는 그녀의 눈동자에 하얗고 푸른 상이 되어 맺혔다. 죽기 전에 가 봐야 할 곳이 있다면 산토리니 섬의 이아마을이라고. 오늘 밤 꿈속에서 그곳에 같이 가보자고.
그 끝없는 하얀 계단들을 둘이서 손을 잡고 끝까지 올라가 보자고.
남들은 믿지도 않고 믿을 수도 없겠지만, 세월이 갈수록 일주일에 한 번 휴일에 만나는 그 남자보다도 그의 아내가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제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다. 바로 그 점이 그녀가 내게 소중한 이유이기도 했다.
언젠가 엄마는 말했다. “그리스 로도스 섬에 가면 길고양이들이 굉장히 많아. 너를 닮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자꾸만 쫓아오잖아. 그래서 갖고 있던 빵조각을 주었더니 어디선가 길고양이들이 떼거리로 몰려와서는 서로 먹으려고 난리가 난 거야. 그 싸움이 얼마나 끔찍하던지 빵을 준 걸 후회하고 말았어.” 도대체 우리가 누군가 다른 대상을 구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우리는 아무도 다른 존재를 구원할 수 없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조차도. 그러니까 너도 길고양이들을 구하려는 생각을 버리라고 엄마는 늘 말하곤 했다. 그리스가 아니더라도 한국에도 섬에는 늘 고양이들이 많았다. 하긴 도시의 아파트 재개발단지들도, 오래된 아파트의 구석구석도 다 섬이 아니던가?
나는 문득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길고양이에 관한 다큐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고양이는 날 때부터 놀라운 환경적응력을 지니고 태어난다. 수컷 한 마리와 암컷 두 마리가 같이 새끼들을 기르곤 한다. 엄마 고양이는 자기가 낳지도 않은 새끼 고양이에게도 차별하지 않고 젖을 물린다. 엄마가 되고 나면 평생을 엄마로 살아야 한다. 바로 그 점이 나의 엄마에게 없는 점이었다. 가끔 그녀는 엄마가 아니라 내가 보호해야만 할 딸처럼 생각되었다.
바로 그 점이 아저씨가 엄마를 떠났던 이유라고 나는 내 맘대로 생각해버리곤 했다.
엄마는 적포도주를 좋아했다. 둘이서 한 병 따서 오순도순 마시면 딱 좋았다. 하지만 늘 그걸로 끝나지는 않았다. 한 병, 두 병, 세 병, 새로운 적포도주 병을 딸 때마다 엄마는 점점 더 옛날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때 그 햇살 좋은 가을날에 말이다. 동경에서였어. 아트페어가 열리고 있을 때였지. 전시 참여 차 갔다가 아저씨를 우연히 만났던 거야. 믿을 수 있니? 너는? 아저씨는 휠체어를 밀고 있었어. 그 휠체어를 타고 있는 여자는 젊지도 예쁘지도 않은 내 또래의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그런 여자였어. 내가 너무 놀라 아는 척을 하려니까 아저씨는 나를 향해 조용히 묵례를 하며 그냥 내 앞을 모르는 사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거야. 그렇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렇게 스쳐 지나가다니 나는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어. 그리고 그때 알았단다, 아저씨는 이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그 똑같은 이야기를 엄마는 적포도주 병을 새로 딸 때마다 되풀이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백화점 지하 식품코너에서 우연히 만났던 남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그들은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러고 싶어도 유효기간이 지난 식료품처럼 만기가 되어 돌아오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그들이 떠나든 다시는 돌아오지 않든, 주인 없는 섬 고양이들은 살기 위해 매일 매 순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전쟁 같은 삶을 계속하고 있는 거였다. 막막한 바다와 척박한 섬, 태풍이 지나가고 아침이 지나가고 살아남아 그 무서운 밤의 기억을 잊은 채 고양이들은 일상으로 돌아온다. 자연과 싸우고 인간과 싸우느라 지친, 늘 고단한 길고양이들은 저 너머의 일까지는 생각하지 못한다. 네 마리 중 세 마리는 태풍에 목숨을 잃고 새끼들의 울음소리마저 그친 막막한 바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고양이들의 절망뿐이다. 인간의 농경 역사는 한 번에 스무 마리의 쥐를 살해하는 능력을 지닌 고양이들과 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곳이 어디든 홀로 가야 한다.
인간만을 위한 도시의 길목 이곳저곳에서 쫓겨나고 도피하며 삭막한 길에서 불안한 삶을 이어가야 하는 고양이들은 더 깊고 험한 곳으로 스며든다. 도시에서 섬으로, 그래도 갈 곳이 없어지면 추위와 바람과 배고픔에 병든 고양이들은 먹을 곳을 찾기 위해 지난밤에도 황량한 숲을 뒤진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도둑고양이이라는 오명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인간에게는 통하지 않는 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슬프다. 덫에 걸린 고양이, 그물에 걸린 고양이, 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15년이라는데, 길고양이의 수명은 3년이라 한다.
그들은 날 때부터 쓰디쓴 전쟁 같은 절망을 배운다. 그게 섬에 사는 길고양이들의 영상을 담은 프로그램 내레이션의 내용이었다. 사람인들 뭐가 다르랴. 부모 없는 도둑고양이의 삶을 살지 않아도 되었던 건 내 눈에 늘 철부지 소녀 같았던 우리 엄마, 하지만 자기 새끼와 남의 새끼를 차별하지 않고 젖을 먹이는 길고양이를 닮은 우리 엄마 덕분이었다는 걸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