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마지막 남자 2회
이 세상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부류와 첫 번째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부류가 있다. 마지막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물론 더 착한 사람일 것이다. 그 사람과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 버리지도 버림받지도 않으려는 애착.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왠지 사람을 안심시키는 구석이 있다. 마지막 사랑, 마지막 열차, 마지막 부탁, 등등. 하지만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슬프다. 어릴 적 나를 친한 친구에게 맡겨두고 여행을 떠나던 날 부모님이 남긴 마지막 인사, 남편의 마지막 뒷모습, 우리 엄마가 된 그녀의 마지막 남자가 내 등을 토닥이며 남긴 마지막 말. “불쌍한 것.”
이후 나는 불쌍하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 세상에는 나보다 불쌍한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날 때부터 버려진 장애인, 지하도에서 구걸하는 병들고 배고픈 사람, 눈이 보이지 않거나 귀가 들리지 않거나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된 사람, 하지만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의 순위를 매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멀쩡한 육체를 지닌 사람들이 쩍하면 자살을 해버리는 게 요즘 세상이니까.
우리 엄마의 마지막 남자는 그녀보다 일곱 살이나 적은 재능 있는 건축가였다. 그는 우리를 위해 유리창이 많은 빨간 벽돌집을 지었다. 따뜻한 마음과 잘 생긴 외모를 지닌 그는 부모 없는 불쌍한 나를 많이 사랑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십 년을 같이 살았다.
나는 그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아저씨라 불렀다. 아저씨는 우리 모녀의 든든한 보호자였고, 삶이 아름답다는 걸 눈앞에 보여주는 마술사였다. 엄마의 생일이나 내 생일이면 아저씨는 깜짝쇼를 해주었다. 종이로 화려한 궁전을 만들어 눈앞에 펼쳐주는 남자, 아름다운 보석 반지를 손수 만들어 엄마의 손에 끼워주는 남자, 갖가지 모양의 수많은 인형을 손수 만들어 내게 내미는 남자, 마술사, 아저씨,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기나 하는가?
그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로 나는 너무 잘해주는 남자를 믿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아저씨처럼 어느 날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리 잘해줄 줄도 모르는 남편과 결혼한 건 아마 아저씨 때문인지도 몰랐다. 잘해주지 않는 무덤덤한 남자에 대한 신뢰. 하지만 그것도 편견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저씨의 소문은 바람을 타고 우리의 외로운 귀에 도착했다. 스무 살쯤 많은 일본 점성술사와 사랑에 빠져 일본으로 갔다는 둥, 스무 살 쯤 어린 프랑스 여배우와 사랑에 빠져 파리에 살고 있다는 둥. 어느 날 아침 나는 수면제 한 통을 다 먹고 죽은 듯이 누워있는 우리 엄마, 그녀의 모습을 발견했다. 겨우 병원으로 옮겨 살려놓기는 했지만, 그날 이후 오래도록 엄마는 그림자만 남은 사람 같았다. 얇은 실크 잠옷을 입은 뚱뚱한 그녀의 축 늘어진 모습에 나는 공포를 느꼈다. 너무 어릴 적에 이미 목격해버린 죽음의 그림자가 얼마 되지도 않아 또다시 내 눈앞에 어른거리는 일이 도대체 말이나 되는 걸까?
도대체 왜 사람들은 모두 내 곁을 떠나가기 위해 애를 쓰는 걸까? 나는 얼굴도 그만하면 예쁜 편이고 공부도 잘했고 성실하고 착한 여자다. 내가 너무 착해서 사람들을 질리게 하는 걸까? 나는 혼자 노래방에 가서 우연히 잘못 들어간 방에서 만난 처음 보는 남자 곁에 앉아 하염없는 생각의 물결에 잠겼다.
사랑이 지나가면 다음 사랑이 온다고 말해준 그는 나와 함께 고양이 밥을 주는 일에 동참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는 아내가 있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생물선생님인 그는 길고양이들의 불임수술을 하는 일에도 동참했다. 틈만 나면 우리는 텅 빈 재건축 아파트단지에 가서 수많은 고양이들의 밥을 주고 그놈들의 불임수술을 했다. 수술한 놈을 구분하기 위해 상처 부분에 지워지지 않는 펜으로 표시를 하고 목에다 빨간 리본을 매어놓곤 했다.
단지 사람을 제외하고 이 세상의 동물들은 무서운 속도로 번식하고 있었다. 새끼들을 책임지지도 못하는 동물의 번식은 언제나 나를 슬프게 했다. 언제 끝장날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아이를 갖지 않으려는 나의 병적인 생각이 남편을 떠나가게 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등에 갓난아이를 업고 조금쯤 큰 아이의 손목을 잡고 걸어가는 남편과 마주친 건 백화점 지하 식품코너에서였다. 그들 앞에는 반찬거리를 고르느라 정신이 없는 젊은 여자가 보였다. 남편은 내 앞을 지나치며 고개를 숙여 묵례를 했다.
제주도의 바닷가 마을 어느 외딴 집에서 남편을 마지막으로 본 이후, 5년 만의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