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마지막 남자 1회
나는 그녀를 엄마라고 불렀다. 여섯 살 때 부모님이 한꺼번에 자동차 사고로 다 돌아가신 뒤, 나는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인 그녀와 같이 살게 되었다. 그녀는 뚱뚱했지만 아름다웠다. 처녀였던 그녀는 나를 제대로 안아줄 줄도 몰랐고, 성냥불을 켤 줄도 몰랐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일이 어린 나의 일상이었다. 그녀는 가끔 취해서 돌아왔다. 오자마자 어린 나를 부둥켜안고 그녀는 울었다. “불쌍한 것.” 하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그녀가 더 불쌍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쌍의 불쌍한 동물처럼 엉켜서는 한참을 울었다.
그녀는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할 때까지도 그녀의 마지막 남자를 잊지 못했다.
“그 사람은 돌아올 거야.” 그녀는 늘 그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를 혼자 두고 나는 결혼을 했다. 어느 날 남편이 집을 나갔다. 나는 그녀를 찾아가 통곡을 했다. 그녀는 마치 자기 자신에게 말하듯 내게 속삭였다. “그 사람은 돌아올 거야.”
집을 나간 남편은 쪽지 한 장을 남겼다. “나를 찾지 마시오. 미안하오.”
회사에는 사표를 낸 지 석 달이 넘었다 했고, 수소문 끝에 남편을 찾아낸 곳은 제주도의 외딴 바닷가 마을이었다. 남편은 술집에서 만난 스무 살 갓 넘은 계집애와 함께 살림을 차리고 있었다. 하도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남편의 여자 화장대에 놓인 비싼 외제 화장품들 뚜껑을 열고 다 변기에 흘려버렸다. 정작 나 자신은 한 번도 써 보지 못한 비싼 외제 화장품들을 보니 피가 거꾸로 솟았다. 하지만 거기까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집을 나왔다. 그때 나와 함께 갔던 우리 엄마, 그녀는 한마디 말도 못하고 내 뒤에 숨어 사시나무 떨 듯 떨면서 그 뚱뚱한 몸을 내게 기댔다. 그녀는 언제나 내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여자가 되었다.
밥을 먹을 수도 없고,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나는 오래된 재건축 아파트인 우리 아파트의 길목을 걸어 나가다가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가만히 보니 할머니는 아파트를 점령하다시피 한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있었다. “할머니 고양이 밥 주면 안 돼요” 하니까 할머니가 답했다. “이 모진 사람아. 이 고양이들이 다 내 새끼들인 거여.”
그날 이후 나는 할머니와 함께 동네의 배고픈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러 다니기 시작했다.
어쩌면 우리 엄마, 그녀가 불쌍한 어린 내게 베푼 일이 바로 이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쯤 덜 외로웠다.
어느 날인가 매일 오던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날부터 나는 고양이 밥 주는 여자가 되었다. 오래된 우리 아파트 지하를 내려가면 배고픈 고양이들이 득실득실했다.
나는 밤이면 사료와 통조림 깡통을 들고 아파트 지하로 내려갔다. 아파트를 더럽힌다고 욕먹을까 봐 지하로 몰래 내려가 청소를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어느 날 나는 아파트의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아파트 현관에는 고양이 밥을 주지 말라고 씌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들의 서식처 입구를 시멘트로 막아버리자는 반상회 결정이 내려졌다. 그 결정에 힘을 모아준 건 걸식 아동 돕기 운동 회장이라나, 뭐 그런 인물이었다. 나는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휴머니티와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의 뿌리는 그렇게 다른 곳으로부터 기원하는 걸까?
그렇게 외로웠던 어느 날, 내게 애인이 생겼다. 혼자 노래방에 갔다가 화장실에 갔다 오는 길에 실수로 잘못 들어간 방에 그가 있었다. 친구들끼리 남자 셋이 온 그들과 합석한 나는 노래를 부르다 말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문세의 노래 <사랑이 지나가면>은 남편이 제일 좋아하던 노래였다. 나는 남편이 그 노래를 부를 때마다 짜증이 났었다. 도대체 사랑이 왜 지나가는 건데? 그 청승맞은 음률과 노랫말이 나는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그 노래를 부르다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때 그가 내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사랑이 지나가면 다른 사랑이 와요.”
나는 섬광처럼 아주 짧은 순간, 그가 나의 마지막 남자였으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