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위 새가 난다 7회 (최종회)
마치 그의 마음속을 읽기라도 하듯 관광버스는 번지 점프로 유명한 오클랜드의 하버브릿지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푸른 강물이 넘실대고 있었다. 뉴질랜드는 번지점프의 본고장이었다. 그는 몇 해 전 어느 영화에서 번지점프를 하는 모습을 보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몇십 미터 높은 곳에서 허공을 향해 온몸을 묶고 뛰어내리는 엽기적인 스포츠라는 기본적인 상식 외에 그가 번지점프에 관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만 해도 번지점프 같은 걸 그가 해보리라고는 생각도 못해본 일이었다.
높은 곳에서 눈 딱 감고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있는 지금, 눈앞에 번지점프대가 있다는 사실이 마술처럼 느껴졌다. 그는 번지점프라는 스포츠를 발명한 ‘번지’라는 사람이 순간 존경스러웠다. 높은 곳에서 몸을 날려 버리고 싶은 사람은 우선 번지점프를 해보는 게 어떨까? 하지만 죽음이 연습이 되는 걸까? 그렇게 죽음 직전까지 가보고 난 뒤 갑자기 살고 싶은 생각이 물밀듯 밀려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번지점프에 낙을 붙이고 심심하면 뛰어내리는 거다. 죽고 싶을 때마다 그렇게 뛰어내리는 거다. 그는 자꾸만 혼잣말을 했다.
우리는 모두 혼자 뛰어내려야만 한다. 어느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번지점프의 외로움이 삶을, 죽음을 닮았다. 절벽에서 푸른 강물을 향해 뛰어내린 뒤 공중에서 몇 번씩 공중곡예를 하며 온몸을 거꾸로 휘돌리며 그 푸른 강물에 빠지기 직전까지 거꾸로 매달리는 스포츠, 번지 점프는 시작이 어렵지 일단 발만 앞으로 내디디면 발이 먼저 부드럽게 땅에 닿게 된다. 첫발을 내디딜 때는 아찔하지만 몸을 날리는 순간 쾌감과 스릴을 만끽하게 된다는 번지점프, 순간 그는 갑자기 미치도록 뛰어내리고 싶었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추락- 죽는 것도 아닌 죽음 직전까지 가보는 그런 순간- 그는 문득 번지점프를 하다가 죽어도 좋을 것 같았다. 아니 번지점프를 하다가 죽고 싶었다. 할아버지와 큰아버지와 아버지와 그들을 닮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의 한을 자신의 업으로 끝내고 싶었다. 그 잘난 의사 가운을 영원히 벗고 다음 생에는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었다.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 현생의 죄업을 다시는 짓고 싶지 않았다. 다음 생에도 의사가 되어야 한다면 엉뚱하게도 그는 수의사가 되고 싶었다. 모든 개들은 죽으면 천국으로 간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아무런 죄도 짓지 않고 생을 마감하는 개와 소와 닭과 말, 이 세상의 모든 동물들은 분명 죽으면 천국으로 갈 것이 분명했다. 하긴 그는 죽어서 천국에 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 옛날 그녀의 화실이 있던 그 시간과 공간, 그곳이 지옥이라면 그곳에 가고 싶었다. 스리랑카에 가서 거리의 집 없는 아픈 개들을 치료하고 예방 주사를 놓아주며 배고픈 개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살아가는 한국인 수의사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만 해도 참 실없는 사람이라고 비웃었다. 그런데 그는 지금 난생처음으로 그의 삶이 부러웠다. 그는 짧은 끈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불쌍한 한국의 토종 잡견들을 돌보며 사는 것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와 함께 불쌍한 백구들과 황구들을 돌보며, 틈이 나면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으면서 살고 싶었다.
유능하고 책임감 강하지만 차갑기 짝이 없는 지금의 아내와 다음 생에는 그저 스쳐 지나갔으면 싶었다. 꾸밈없고 마음 여린 그의 첫사랑 그녀와 다음 생에는 다시는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번지점프대 앞에서 갑자기 밀어닥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그의 터무니없는 감상적인 생각들이 그로 하여금 번지점프를 하라고 유혹했다. 저 푸른 물을 향해 뛰어들라고, 무서울 게 무어냐고. 그는 심장에 문제가 없다는 사인을 한 뒤 번호표를 받았다. 일곱 번째였다.
럭키 세븐, 평생 처음 해보는 번지점프의 순서를 기다리며 그는 처음 수술을 할 때처럼 온 신경이 곤두섰다. 차례를 기다리며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서있는데, 낯익은 여자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잠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온몸을 묶고 하늘을 향해 거꾸로 투신하는 여자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그녀는 거짓말처럼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 절벽을 향해 뛰어내렸다.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의 눈에 비친 번지점프를 하는 여자의 풍경은 그의 슬픈 첫사랑 그녀의 상반신과 그의 수술을 받은 뒤 영원히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여환자의 하반신을 합성한, 그가 가끔 꿈속에 보는 합성 사진을 현실에 옮겨 놓은 풍경이었다.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영어로인지 한국말로인지 분간이 가지는 않았지만 “마가렛 조다” 그렇게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건 날 수 없다는 키위 새 한 마리가 절벽에서 뛰어내려 푸른 강물을 향해 훨훨 날고 있는 믿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그는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날아라, 날아. 그래 날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