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위 새가 난다 2회
수국을 바라보다가 그녀를 떠올린 찰나, 가이드의 목소리가 그를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이제 19세기 중반 황금기를 누린 아름다운 퀸즈 타운으로 이동합니다."
학회를 핑계 삼아 뉴질랜드로 날아온 지 며칠이나 되었을까? 그는 휴직계를 내고 당분간 돌아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마침 동행한 다른 한국인 의사들과 짬을 내서 관광하는 길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은 천국처럼 아름다웠다. 대평원을 가로질러 꼬물대는 양들을 세며 그는 잠을 청했다. 그의 평온한 잠 사이로 가이드의 목소리가 섞여들었다.
"양은 눈이 나쁩니다. 그래서 먼 곳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한 줄로 죽 서서 앞의 양 엉덩이만 쳐다보며 걷습니다." 잠이 살포시 들다가 그는 갑자기 웃음이 터지는 걸 억지로 참았다. 관광을 나온 의사들 일행이 앞의 사람 엉덩이만 바라보며 쫓아가는 양떼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긴 누군들 양떼들 중의 양 한 마리가 아니랴?
뉴질랜드는 양으로 돈을 버는 나라였다. 양은 버릴 게 하나도 없는 동물이다.
고기를 먹고, 털과 가죽으로 스웨터와 양탄자와 이불을 만들고, 창자로는 테니스 라켓의 줄을 만들 뿐 아니라, 수술용 봉합 사를 만든다. 환자의 환부를 꿰매는 실이 양의 창자에서 얻어진다는 엉뚱한 사실을 실감하며, 그는 버스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양들의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는 양들이 꼬물대는 풍경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다. 몇 년 전 아일랜드로 학회를 갔을 때도, 그는 파란 하늘 아래 꼬물대는 수백 마리의 양 떼들을 바라보며 행복했다. 그는 창문을 사이에 두고 부지런히 양떼를 향해 셔터를 눌러댔다. 한 마리도 찍고 두 마리도 찍고 수백 마리도 찍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평지에서 사는 양보다 열악한 산꼭대기 절벽에 사는 산양의 양분이 더 좋아 솜털의 길이가 일곱 배나 길다고 했다.
마치 어릴 적 아무 걱정 없이 부유하게 자란 사람보다 가난을 경험하고 자란 사람이 험한 세상에서 혼자 삶을 영위해 가는 저항력이 훨씬 높다는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는 듯했다. 어디선가 들리는 일행의 가는 코 고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가이드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뉴질랜드의 야생 새들에는 먹이를 주는 일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새들에게 먹이를 주면 먹이를 구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그녀도 그랬다. 부잣집 딸내미였던 그녀도 혼자 살아내기엔 그 새들처럼 자신을 보호할 아무런 힘도 없었다.
그림 같은 호수로 둘러싸인 퀸즈 타운의 호텔에 짐을 풀고 그는 맥주 두어 병을 사 들고 호숫가에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해질 무렵의 호숫가는 정말 아름다웠다. 언젠가 그녀와 함께 앉았던 청평 호숫가가 떠올랐다. 그때 그녀가 물었다. "나 사랑해?"
그는 사랑보다 더 풍요로운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마음이 답답했다. 그의 마음속을 꽉 채우고도 남는 그녀를 향한 사랑을 그는 어디에 저장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왜 그 사랑이 변했을까?
다음날 새벽 일행은 일만 이천 년 전 빙하에 의해 형성되어 태곳적 웅장한 원시림을 간직한 ‘밀포드 사운드’를 향해 떠났다. 유람선에 탑승해서 기암괴석들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호수와 낙하하는 폭포수와 피오르드 해안의 비경을 두루 감상하며 그는 많은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그 아름다운 풍경들을 제치고 자꾸만 떠오르는 건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었다. ‘그녀가 여기 뉴질랜드에 있다.’ 그런 생각에 이르면 그는 갑자기 온몸에 기운이 빠졌다. 그것이 그리움인지 죄의식인지 조차 알 수 없었다.
퀸즈 타운으로 돌아와 일행은 저녁을 먹으러 한국 음식점으로 들어섰다.
칠팔십 년대의 낡은 노래들이 낡은 실내 장식들과 어우러져 조용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 어떡해- 너 갑자기 떠나가면-"
"화- 안 된다. 떠나지 마." 언젠가 분명히 실재했던, 지금은 없는 그 정지된 시간이 한순간 그를 덮쳤다. 낯선 외국 어느 나라에나 거의 다 있는 한국 음식점들의 느낌은 비슷했다.
텔레비전의 7080 프로그램에서나 들을 수 있는 옛날 노래들이 흘러나오고, 약간 어두운 실내에 빛과 공기가 고여 그대로 정지한 듯했다. 옛날 옛적 그 시간대에 그대로 머물러있는 시간 속에 다시 둘러싸인 기분은 묘하고 외로웠다. 외국에 있는 한국 음식점들에서는 유독 5060도 아니고 7080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아마 음식점을 경영하는 세대의 나이들이 그만그만한 건지도 모른다. 그는 뉴질랜드 퀸즈 타운의 한국 음식점에서 흘러나오는 그 오래된 노래들을 들으며 갑자기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듯, 또 한 번 그 초라하게 늙어가는 빛바랜 수국을 닮은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녀와 가까웠던 대학 동창들에게서 들은 풍문으로는 그녀가 한국음식점을 경영하는 오빠를 따라 여기 뉴질랜드로 와서 음식점 뒤뜰에서 매일 수백 개의 양파를 까고 있다는 설과 장애인들의 천국인 뉴질랜드의 좋은 시설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두 가지 설이 분분했다. 그는 화장실을 다녀오다 음식점 주방 쪽을 기웃거려보았다.
여기서 그녀를 부딪친다면- 소문처럼 양파를 까고 있는, 팔십 할머니처럼 늙어버린 그녀와 마주친다면- 그의 온몸에 한기가 들었다. 다시 한 번 그는 자신을 향해 중얼거렸다.
"나쁜 놈"
음식점의 컴컴한 실내에서는 같은 노래가 자꾸만 반복되어 흘러나왔다.
"나 어떡해- 너 갑자기 떠나가면- 그건 안 돼- 정말 안 돼- 가지 마라- 다정했던 네가 상냥했던 네가 그럴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