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에 관한 명상 10회 (최종회)
12월이 시작되고 있었다. 12월의 첫날 나는 홍대 앞에 있는 삼촌의 아내가 운영하는 떡볶이집에나 가보려고 집을 나섰다. 정말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와 숨 가쁘게 만날 사람을 다 만나고 나니 이제는 나 자신을 만날 차례였다. 새 학기는 새해 봄에나 시작될 것이다.
내게는 무한한 시간이 널려 있는 듯 포근함과 불안감이 교차했다.
서른이 넘도록 반복해서 꿈에 나타나던 풍경이 있었다. 꿀 때마다 약간의 변주를 가미한 어수선한 꿈이었다. 전날 밤도 그 비슷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학교에 가는 중이다. 학교에 가려고 넓은 길을 한참 걷다 보면 갑자기 아주 좁은 골목길이 나타난다. 그 좁은 골목길 안쪽에 군고구마를 파는 할머니 한 분이 앉아계셨다. 학교 가는 길에 꼭 그 골목을 지나가야 했고, 할머니의 군고구마를 사지 않으면 골목길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누군가 지키고 서서 억지로 군고구마를 사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군고구마를 사지 않으면 그 골목을 지나칠 수 없는 꿈속의 규칙 같은 게 있었다. 꿈속에서 좁디좁은 골목을 빠져나와 한참을 걸으면 학교 정문이 보였다. 그런데 어떤 날은 그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길이 사라지고 막다른 골목이 나왔다. 그 막다른 골목길 끝에 다 쓰러져가는 집이 한 채 있었고, 그곳은 자장면을 파는 조그만 중국음식점이었다. 하는 수 없이 음식점으로 들어가면 뚱뚱한 주방장 아저씨가 “군고구마 하나 주면 자장면 한 그릇 주지” 하는 것이다. 군고구마로 자장면을 바꾸어 먹으면 나는 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눈을 질끈 감고 자장면의 유혹을 물리치면 그 자리에 있던 자장면집은 없어지고 길이 뚫리면서 학교 정문으로 향하는 반듯한 길이 이어졌다. 나는 자장면을 군고구마와 바꿔먹고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은 건지, 그 뚱뚱한 주방장 아저씨의 유혹을 물리치고 학교에 가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꿈속에서 할머니에게서 산 군고구마를 담임선생님께 전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전날 밤 꿈속에서 나는 군고구마를 한 봉지 사서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니 길은 사라지고 막다른 골목 끝자락에 예의 중국음식점이 나타났다. 뚱뚱한 주방장 아저씨의 유혹도 물리치고 군고구마 봉지를 가슴에 품고 학교를 향해 걸어가는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학교가 사라지고 없었다. 따뜻한 군고구마는 온기를 잃어가고 나는 사라진 학교를 찾아 안개 속을 헤매는 것이다. 내가 군고구마를 사오기를 기다리는 선생님은 어디에 계신 걸까?
오던 길로 다시 돌아오는데 막다른 골목이 열리고 예의 그 중국음식점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곳에서 선생님이 자장면을 드시고 계셨다. 그런데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선생님의 얼굴은 삼촌의 얼굴이었다. 아니 H의 얼굴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낯선 서울의 길목들을 서성이며 지남 밤에 꾼 꿈 풍경을 더듬어보았다. 학교는 어디에 있을까? 아닌 게 아니라 어릴 적에 다니던 학교도, 살던 집도, 삼촌이 자주 데리고 가던 자장면집도 다 사라지고 없었다. 시원 쌉쌀한 바람결에 길에서 파는 군고구마 냄새가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왔다. 뉴욕의 거리에서 볼 수 없었던 군고구마를 파는 겨울 풍경 속에서, 나는 정말 군고구마 한 봉지를 사 들고 학교 가는 길이 어딘지 몰라 헤매는 꿈속의 어린 아이처럼 낯선 길 위에 서 있었다. 길 위에서 나는 수없이 길을 잃었다.
한국인지 미국인지, 강남인지 강북인지, 옛날인지 지금인지, 그렇게 길을 잃어버리며 온 거리를 헤매는 일이 나는 많이 행복했다. 그렇게 길을 헤매고 다니다가 지하철을 타고 홍대입구 역에서 내려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데 주머니 속의 핸드폰이 목메는 소리로 울어댔다. K였다. H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K의 목소리에는 올 것이 왔다는 걸 알리는 사람의 차분함이 깔려있었다. 소주 한 병에다 수면제 알약 한 통을 다 먹고 H는 겨울바다로 걸어 들어갔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의 얼굴을 본 지 일주일 만이었다. 벗어놓고 들어간 옷 호주머니 속에 수첩이 들어 있었고, 우연히도 제일 첫 번째로 K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던 모양이었다. 파도에 떠밀려온 그의 시신을 K가 급하게 달려가 수습하는 중이었다.
내게 H의 마지막 기억은 또다시 자장면 한 그릇의 기억으로 남았다.
K와 나는 화장터에 가서 번호표를 받아 H의 화장 차례를 기다리고 앉아있었다.
사람이 많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화장이 시작되기 전, 직원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물었다. “뿌리실 건가요? 그러면 곱게 갈아 드리고요. 납골당에 넣으실 거면 보통으로 갈아 드려요.”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같았다. 커피를 사러 가서 갈아달라고 하면 “머신용으로 거칠게 갈아 드릴까요? 아니면 에스프레스 용으로 곱게 갈아 드릴까요?” 하는 말이나 거의 똑같은 소리로 들렸다. 목숨이 떠난 유골은 그때부터 사물의 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커피 가루나 사람의 뼈의 가루나 무엇이 다르랴? 바다로 걸어 들어가면 H는 아마도 고래나 그 비슷한 바다 생물에게 먹혀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리라고 생각했을까?
이렇게 다시 파도에 떠밀려올 줄 알았다면, 성격상 남에게 누를 끼치는 일을 제일 싫어했던 그는 바다로 걸어 들어가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니면 별도 없는 비 오는 밤하늘에 젖어 술과 수면제에 취해 바다 속으로 자러 들어갔을까?
도대체 육신을 지닌 우리의 죽음은 그 누구도 남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세상을 떠나는 일이 불가능한 모양이다. 어쨌든 그는 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강도 호수도 목욕탕도 어항도, 컵 속에 담긴 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까지도 다 좋아했다. 우리는 또다시 H의 재를 물 위에 뿌려주러 떠났다. 유골을 강이나 바다에 뿌리는 일이 금지된 터라 알맞은 장소를 찾기가 무척 어려웠다. 마침 K의 친한 친구가 근처에 집을 짓고 사는 외딴 호숫가에 가서 우리는 배를 빌려 타고 먼 호수 한가운데로 나갔다. 초겨울 날씨치고는 따뜻했고, 바람 한 점 없었다. H의 유골은 잔잔한 호수의 물결에 보태졌다. 우리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잠시 할 일이 무엇인지 잊은 사람들처럼 배를 타고 호수 위에 떠있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뭍으로 돌아와 밥이나 먹자는 K를 따라 호젓한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외딴곳이지만 세련된 조명과 실내장식으로 분위기가 꽤 그럴듯한 곳이었다. 시골에 이런 곳이 있다니 한국이 무척 잘살게 된 것 같다는 K의 말에 나는 맞장구를 쳤다. H에 관해서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메뉴를 훑어 내리면서 그는 “오징어 먹물 스파게티도 있네.” 했다.
그러면서 정작 시킨 건 토마토소스의 해산물 스파게티였다. 시커먼 오징어먹물 스파게티는 혹시 오징어랑 새우가 가득 든 삼선 자장면을 흉내 낸 음식이 아니었을까?
우리들 사이엔 그렇게 쓸데없는 말들만 오갔다. 포크로 스파게티를 둥글게 말아 올리며 K는 한동안 허공의 한 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가 제 앞으로 물려주신 시골 산에 작은 동굴이 하나 있어요. 동굴 깊숙이 땅을 파고 들어가면 엄청난 양의 주석이 매장되어 있다는 시골 친척 아저씨의 말을 듣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았지요. 일제 때 일본인들이 주석을 발견하고 파가려다가 해방이 되는 바람에 그냥 돌아갔다는 겁니다. 잘만하면 큰 부자가 되는 일이라 가슴을 두근거리며 동굴 안 깊숙이 들어갔지요. 그러다가 높이가 낮아서 손바닥을 뻗치면 닿을만한 동굴 천정에 붉은빛을 띠는 생명체 세 마리가 붙어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손전등을 켜고 보니 박쥐같기도 하고, 뭐가 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다음날 전문가를 대동하고 다시 들어갔더니 그놈들은 죽은 듯이 거꾸로 천정에 매달려 있었어요. 알고 보니 그놈들이 멸종위기에 놓인 황금박쥐라는 겁니다. 그러니 땅속에 매장되어있는 주석을 캐내는 일은 다 틀린 거지요. 멸종 희귀동물의 서식처는 이제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세상이거든요. 좋다 만 거지요.”
쥐도 새도 모르게 황금박쥐 세 마리쯤 없애버리면 그뿐이 아닐까 하는 별로 착하지 못한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큰 부자가 되나 보다 했는데 말입니다.” 그는 세상을 통달한 듯한 쾌활한 웃음을 웃었다.
“으하- 황금박쥐라니.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나는 동굴에 내려가 그놈들을 살펴보았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 세 마리가 꼭 세상 떠난 H선생과 나, 그리고 당신을 닮았더란 말입니다. 우리가 1990년도 초에 뉴욕의 그 심리치료실에서 처음 만났던 그 모습 그대로더란 말입니다. 발그스름한 그 멸종 위기의 생명체들은 같이 있어도 굉장히 외로워 보였어요.”
아마도 그 시절 내가 같이 있어도 다 따로따로인 외로운 요괴인간 세 사람을 연상했듯이, K는 황금박쥐 세 마리를 보면서 그때의 우리를 떠올렸던 모양이었다.
주석을 캐서 큰돈을 벌려던 꿈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왠지 자신의 동굴에 황금박쥐 세 마리를 보호하고 있다는 그의 표정은 그리 우울하게만 보이지는 않았고, 약간은 자랑스러운 듯한 수줍음이 섞여 있었다. 나는 황금박쥐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어릴 적 만화 속에 등장하는 ‘정의의 사도, 황금박쥐’가 떠올랐다. 하지만 멸종 희귀 동물인 황금박쥐는 현실 속에서는 더 이상 용감한 정의의 사도가 아니다. 사람의 보호가 필요한, 어떤 강렬한 빛이나 조그만 소리에도 생명을 위협받는 약하디약한 존재들인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내 멋대로 머릿속에 황금박쥐 세 마리를 그려보았다. 몇 년 전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의 어느 동굴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뚫린 동굴 천정의 구멍 사이로 박쥐들이 날아다니던 풍경은 내 머릿속에서 계속 지워지지 않고 각인된, 잊을 수 없는 풍경들 중의 하나였다.
문득 동굴의 뚫린 구멍 사이로 별들이 가득한 밤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르는 황금박쥐 세 마리가 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한 마리는 분명 나였고, 또 한 마리는 K, 앞질러 더 높은 밤하늘을 향해 올라가 원을 그리며 비행하는 다른 한 마리는 H였을까? 아니 어쩌면 삼촌이었다.
문득 현실로 돌아와 스파게티 국수를 포크로 감아올리며, “왜 스파게티는 자장면보다 비쌀까?” 하는 오래된 생각이 떠올랐다. K의 포크가 접시에 닿는, 조용하게 달가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들어 창밖을 보니 눈송이가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다. 첫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