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짧은 노래 6회
어쩌면 그녀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사랑한 존재가 한나였을 것이다. 정작 자신이 딸을 낳았을 때는 너무 어려서 예쁜지도 몰랐다. 눈을 떠서 처음 아기를 보았을 때, 신기함과 더불어 아득한 삶의 무게가 앞섰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느님과 바꾸라 해도, 아니 자신의 목숨과 바꾸라 해도 하나도 아깝지 않을 존재, 드디어 그런 존재가 그녀 앞에 나타난 것이다.
한나에게 그녀는 열중했다.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은 사랑하는 대상이 있을 때, 그녀가 얼마나 행복한지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녀의 사랑스런 손녀 딸 한나는 보통 아이들보다 석 달 미리 세상에 나왔다. 인큐베이터 속에서 갖은 고생을 다 하고 나온 뒤에도 한나는 자라는 속도가 느렸다. 옹알이를 하는 것도 걸음마를 하는 것도 말을 배우는 것도 다 늦었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찍은 초음파 촬영으로는 아무 이상도 없었다. 그녀는 뭔가 잘못된 건 아닐 거라고 혼자 머리를 저어댔다. 그녀는 한나가 자라지 않는 아이가 될까 봐 겁이 더럭 났다. 설마 그런 건 아닐 거라고 그들 부부는 서로를 위로했다.
딸은 한나를 그들 부부에게 맡겨놓고 패션 공부를 한답시고 뉴욕으로 떠났다. 한나를 도맡아 기르게 된 그녀는 퇴근하기가 무섭게 손녀딸을 보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근무 시간 중에도 한나의 얼굴이 어른거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제껏 경험한 어떤 것보다 중증 사랑 중독이었다. 성장이 더딘 한나는 그래서 더욱 사랑스러웠다. 아이가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을 잘하기 전까지가 가장 예쁜 법이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무런 조건 없이 개를 사랑하는 이유는 어쩌면 개의 언어와 사람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인지 모른다.
어쩌면 한나가 그렇게 오래도록 어린아이로 남아있어 주면 좋겠다는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을 훔쳐보며 그녀는 흠칫 놀랐다. 다행히도 아이는 발육이 늦을 뿐 자라지 않는 아이는 아니었다. 그녀는 언젠가 한나가 에디슨 같은 천재가 될 거라고 자신을 안심시켰다. 그게 사실이라도 되듯이 어린 한나는 이상하게도 자꾸만 머리가 커졌다. 한나에게 열중하느라 그녀는 정말 오래도록 조각가 선생에 관해서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경찰에 전화해서 접근금지처분을 선포한 뒤 그녀는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었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시간이 지날수록 미안함이 서서히 마음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는 없었던 일이라고 그녀는 애써 미안한 마음을 따돌렸다.
그녀로부터 깊은 상처를 받은 조각가 선생은 이 쓸쓸하기 짝이 없는 삶을 끝내고 싶었다.
꼭 그녀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자살을 결심할 때, 단 한 가지 이유만이 동기가 되지는 않는 법이다. 그즈음 그는 자신의 작품에도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하나도 새로울 것 없는 끝없는 자기복제, 예술가로서 자신이 제일 혐오하는 현상이 자신에게도 일어나고 있었다. 경제적으로도 파산상태였고, 단 하나의 삶의 즐거움이며 살아갈 목적 자체인 작품에 대한 열정도 사그라져가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진짜 사랑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그녀를 잃었다. 아무리 그녀가 남편이 있는 사람이라 해도 그렇게 현실적인 장애는 애초부터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어쩌면 그녀의 변심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오래도록 품어온 죽음에의 유혹에 불을 붙였던 건지도 몰랐다. 일단 결심을 굳히고 나자 그의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평안해졌다. 우선 그는 미완성된 것들을 포함해서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작품들을 한국에 있는 가장 친한 후배에게 보내기로 결정했다. 소식이 끊긴 지 오랜 첫 번째 아내와 딸들을 찾아 그 작품들을 돌려줄 것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자신이 잘못한 게 많은 대상은 바로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았던 두 딸들이었다. 그는 그런저런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일들을 정리하고 나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차를 몰고 애리조나를 향해 달렸다.
선인장이 빼곡하게 들어선 애리조나의 초원에서 아무도 모르게 '거대한 고독'답게 죽고 싶었다. 오랜 시간을 달려 키 큰 선인장들이 빼곡한 애리조나에 도착한 그는 우선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불살랐다. 그의 존재를 증명할 물건은 이제 초록색 구두 밖에는 남지 않았다. 그는 주머니에 보드카 한 병과 수면제를 지니고 선인장이 가득한 초원에 드러누웠다. 보드카 한 모금에 수면제 한 알씩을 천천히 삼켰다. 하늘을 향해 똑바로 누운 그의 얼굴 위로 별들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