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짧은 노래 5회
그녀는 딸 아이리스의 배가 불러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너무 이른 나이에 자신이 할머니가 되는 것이 두려웠다. 자신이 그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는 것에 그렇게 용감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딸아이가 곧 엄마가 될 거라는 사실도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마음에 커다란 변화가 다가오는 걸 느꼈다.
우선 그녀는 조각가 선생과의 만남을 뜸하게 가졌다. 그 신기하고 아름답던 그의 열정과 사랑이 부담스럽기 시작했다. 그녀는 생각을 곧 행동으로 옮기는 무모한 용기를 지녔지만, 동시에 굉장히 현실적인 여자였다. 현실과 똑같은 부피로 그녀의 내면에 공존하는 비현실의 영역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녀는 남편을 포함해서 자신이 한때는 사랑했다고 믿었던 그 어떤 사람과도 공유할 수 없었던 그 무엇을 조각가 선생과는 나눌 수 있었다.
그 무엇이 그녀의 선천성 외로움이었던지, 자신도 모르게 자신 속에 내재해온 예술적 감성이었던지 잘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는 그녀가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지루하지 않은, 내용과 그 표현 양식이 다양하고 세련된 두꺼운 책과 같은 존재였다. 이제 그녀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같은 그 길고도 방대한 책장의 삼분의 일도 다 읽지 않은 채 덮으려 하고 있었다. 그즈음 그녀는 이제나저제나 별 재미는 없지만 늘 한결같은 심성을 지닌 남편을 따라 골프를 치러 다니기 시작했다. 왜 남편과 함께하는 시간은 그렇게 지루하고 고독했는지 자신도 잘 알 수가 없었다. 읽을 내용이 하나도 없는 부피 없는 책이라고 생각해온 남편은 자신과 딸을 변함없이 지켜준 추운 날의 겨울나무 같은 존재였다.
어쩌면 그가 있었기에 그녀는 내면에 존재하는 비현실의 장소에서 조각가 선생과의 밀회를 즐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주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따라갔던 교회를 그녀는 철이 들어서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그 지루하고 따분한 장소에 자신의 젊음을 잠시 내려놓기도 시간이 아까웠다. 예전과 달리 그들 부부는 주말이면 같이 교회를 가고, 골프를 치러 다니는 편안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남의 눈에 띄었다. 만일 하느님이 존재한다면, 하느님이 가장 머물기 싫어하는 장소가 바로 교회일 거라고 말하던 매력적인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은 여전히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렇게 좋은 친구를 갖게 해준 하느님과 그녀는 연애를 시작했다. 이 세상의 모든 식량과 대지와 공기와 산과 들과 바다와 강이 다 주님의 뜻이어서, 따스한 햇볕 아래 기도를 하다 눈을 뜨면 살아있음에 마음이 충만하여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왜 우리는 한 사람에 관한 책의 내용과 형식에 관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른 느낌을 갖게 되는 걸까? 그녀는 조각가 선생의 초록색 구두를 멀리서 보기만 해도 싫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저런 구두를 신고 다니는 사람이 왜 좋았을까? 왜 그는 그렇게 구두에 집착하는 것일까? 사실 구두에 집착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집중력으로 그는 그녀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그들이 처음 만났던 샌드위치를 파는 식당에서 이별을 선언했다.
그 선언은 그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자신을 무조건적 사랑으로 길러준 할머니와 죽은 요리사 연인 다음으로, 어쩌면 그녀는 그의 세 번째 진짜 사랑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그를 멀리하자 그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이제 그는 그녀가 다니는 길목 어디에서나 그녀를 기다리고 서 있기 일쑤였다. 샌드위치 가게에서 주유소에서 심지어는 그녀의 집 앞 건너편에서 그녀를 기다리며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보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남편과 함께 골프를 치는 그녀의 모습을 하루 종일 멀리서 지켜보거나 교회 앞을 서성이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띄었다. 그녀는 참다 참다 경찰에 전화를 걸어 접근 금지 조치를 부탁했다. 그렇게 그녀는 사랑하던 그를 자신의 삶으로부터 떼버렸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의 끝을 우리는 안다. 텔레비전 정규 방송이 끝난 뒤 빈 화면의 침묵, 그 지지직하는 고요하지만 견딜 수 없는 소음, 산다는 일은 어쩌면 서로에게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아주 짧은 순간 마주친 사람들끼리조차 깨알 같은 흔적 하나씩을 남기고 돌아선다. 너무 많이 사랑하고 사랑하다 그 사랑의 끝 무대 뒤까지 가본 사람에게는 그 작은 흔적들이 모여서 커다란 흉터나 상처 같은 것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 우리의 상처는 거의 스스로 만든 것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저 가장 가까이 곁에 있던 타인이 그 상처를 만드는 일에 잠시 혹은 오랫동안 동참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이 아주 깊게 상처받았다고 생각했다. 사랑이란 날카로운 칼을 상대에게 쥐여주고 자신을 찌르지 않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마음이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런 시간들 사이 바로 얼마 전까지 그의 충실하고 열정적인 연인이던 그녀는 할머니가 되었다. 한국이름이기도 하고 미국 이름이기도 한 이름 한나, 그녀는 손녀딸 한나와 또다시 사랑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