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짧은 노래 4회
그는 그녀의 머리를 감겨주는 걸 좋아했다. 세상의 모든 형상을 만들어내는 그 섬세한 손길로 그녀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피아노 건반처럼 두드릴 때, 그녀는 행복했다.
게다가 그는 갖가지 종류의 스파게티 요리를 잘했다. 이탈리아 요리를 잘하는 이제는 세상에 없는 연인을 떠올리며 혼자 스파게티를 많이 만들어본 탓이었다. 하긴 스파게티처럼 쉬운 음식이 또 있을까?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한 숟갈 붓는다. 올리브유를 잠시 달궈 토마토를 잘게 썰어 넣고 잠시 볶은 뒤 새우나 오징어를 넣어서 같이 볶는다. 다음에는 꼬들꼬들하게 설익힌 스파게티 국수를 넣어 잠시 같이 볶는다. 뭐 그런 식으로 하얀 봉골레 스파게티도 오징어 먹물 스파게티도 그는 요리사 수준으로 만들었다. 하긴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조각을 빚는 손으로 무슨 음식인들 못 만들겠는가? 그가 해주는 음식을 먹으며 그녀는 정말 행복했다. 그녀 역시 사랑하는 그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은 그녀에게는 굉장히 쉬운 일이었다. 우선 어린아이 같은 심성을 지닌 그는 쇼핑을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그가 제일 좋아하는 쇼핑은 구두를 사는 일이었다. 그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구두, 그게 여의치 않다면 이 세상에 몇 켤레 없는 구두를 사는 걸 좋아했다. 그가 가진 구두들 중에서 제일 아끼는 구두는 그녀가 그를 처음 보았을 때 그녀의 눈길을 온통 사로잡았던, 신으면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듯 날렵하게 생긴 초록색 구두였다. 그런 구두는 도대체 그 누가 만드는 것일까? 그녀는 그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 신기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녀는 도통 멋을 낼 줄 몰랐다. 주로 명품을 사 입었지만 아무도 그 옷이 명품이라는 걸 알아보지 못했다. 그에 비해 그는 싸고도 멋진 옷을 고를 줄 알았다. 하지만 구두는 늘 비싼 구두를 신었다.
하긴 구두처럼 고르기 힘든 물건이 또 있을까? 발 앞꿈치가 편하면 뒤꿈치가 불편하고 모양이 좋으면 걷는 것이 심드렁하고 편하다 싶으면 본때가 없고. 그는 구두를 사는 일에 굉장히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마음에 딱 드는 구두가 없을 때는 해진 구두를 자꾸만 굽을 갈아 오래도록 신는 게 더 좋았다. 아무리 구두 쇼핑을 좋아한다지만, 맘에 딱 들지도 않는 구두를 이것저것 사서 신장 속에 죽 늘어놓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어쩌면 우정도 사랑도 그렇지 않을까? 나의 시간과 감성과 사랑과 열정, 그 귀한 것들을 엉뚱한 곳에 아무렇게나 풀어놓는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구두라면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신어보고 맘에 딱 들지 않으면 안 사면 그만이지만, 사람이야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언제부턴가 그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간호사 아가씨와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보리라고 생각했다. 가까이 다가가 아이쿠 이것도 아니군, 이건 정말 복잡하고 불편하군, 이런 식의 부담스런 감정들을 곱씹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는 고독처럼 숨쉬기 편안하고 아름다운 상태는 없다고 생각하는 지점이었다. 아픈 이에 바람이 들듯 그렇게 이물질이 섞여들까 겁이 났었다.
바로 그런 타이밍에 그는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그에게 구두를 선물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 세상에 얼마나 비싸고 멋진 구두들이 많은지 그녀는 처음 알았다. 아마도 그에게 있어 구두는 사치와 소비를 넘어선, 삶을 설명하는 상징적인 물건이었을지 모른다.
이 세상의 모든 땅들을 밟고 걸어가는 발에 대한 예의, 혹은 발에 달린 날개, 하지만 결코 날 수 없는 날개 같은 것이었다고 해두자, 그는 마음에 딱 드는 구두를 신고 저 세상에 있는 할머니를, 이탈리아 요리를 잘하는 연인을 만나러 가고 싶었다. 문득 그는 마음에 드는 구두를 보면 아무리 값이 비싸도 사고 마는 자신의 화려한 습성에 관해 어머니의 화류계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라고 제멋대로 생각해버리곤 했다. 어릴 적 친척 아주머니 한 분이 놀러 와 부엌에서 수군대는 소리를 들은 어렴풋한 기억이 남아있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는 화려하게 살다가 고독하게 죽고 싶었다. 도대체 그녀는 몇 켤레의 구두를 그에게 사준 것일까? 그의 집 현관에 있는 구두 진열장에는 갖가지 색깔의 멋진 구두들이 줄을 지어 놓였다. 언젠가 그는 그 구두들을 쌓아올려 작품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는 구두 선물을 받는 대신 그녀의 얼굴과 손과 발을, 반신상과 나신상을 조각해서 선물로 주었다. 그녀의 집은 머지않아 그의 조각들로 가득 찼다. 그녀는 그의 조각에 스며 있는 그녀에 대한 사랑과 땀과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절대적 가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의 남편은 왜 그렇게 한 사람의 작품을 아내가 계속 사들이는지 속으로 의아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단지 언젠가 큰돈으로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 그녀는 눈만 뜨면 부딪치는 조각들에 둘러싸인 자신을 발견했다. 갑자기 '턱'하고 숨이 막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그 조각들을 모두 포장해서 다 창고 안에 집어넣어 버렸다. 스무 살도 안 된 딸아이가 임신했다는 걸 알게 된 건 그 무렵이었다. 그 엄마에 그 딸처럼, 딸은 아이 아빠가 누구인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 당당함과 당돌함에 놀라며, 그녀는 자신이 어머니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절실하게 떠올렸다. 그녀는 갑자기 자신의 모든 사랑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공기 중에 흩어지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