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와 함께 춤을…
드문드문 좌석이 비어 있는 지하철에 사람들이 들어온다. 금세 가득 찬 지하철 안, 나의 눈은 또 배회하기 시작한다. 지하철에서 할 일은 책을 읽거나, 허공을 바라보거나,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조는 일밖에 없지 않은가? 오늘도 책을 넣어오는 걸 잊어버렸다면,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우리가 지하철이든 택시든 버스든 탈것을 타고 여기서 저기로 어딘가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할 때, 그동안의 시간은 흘러가지 않는다면, 아무리 차가 밀려도 차 안의 시간은 흐르지 않고 정지한다면… 가끔 다른 나라로 비행기를 타고 갈 때, 시차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돈처럼 시간도 쓰지 않고 저금을 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차에 맞은편에 앉은 대머리 아저씨가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수수한 차림에 육십은 넘게 보이는 그가 읽고 있는 책은 뜻밖에도 릴케의 『말테의 수기』였다. 그 나이에, 아니 지금 이 시대에 아직도 『말테의 수기』를 읽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무조건 존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멈추고 앞을 보니, 등이 굽은 젊은 남자 하나가 책을 보며 서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는데, 그 옆에 선 술을 좀 마신 것 같은 중년 남자 하나가 내게 시비를 건다. “거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자리 좀 양보합시다.” 나는 얼떨결에 일어나 등이 굽은 젊은이에게 앉으라고 말한다. 책을 읽고 서 있던 그 등이 굽은 청년은 방해를 받은 듯 불쾌한 표정을 잠시 짓더니 퉁명스럽게 “괜찮아요.” 한다. 나는 무색한 얼굴로 다시 앉았다. 아무래도 내 눈엔 그가 등이 굽었다 뿐이지, 그 칸에 탄 사람들 중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제일 건강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가 읽고 있는 책은 공교롭게도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라는 책이었다. 그날따라 지하철 안은 움직이는 도서관 같았다. 술 취한 코끼리를 무슨 수로 길을 들이나? 나는 문득 그 주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나 술 취한 코끼리가 숨어 있는 법이다. 코끼리가 화가 나서 술주정을 하는 순간이면, 자신을 주체하기 힘들어지는 거다.
문득 검은 안경을 쓴, 얼굴이 하얀 젊은 시각 장애인 한 사람이 돈 걷는 상자를 내밀며 내 앞에 선다. 나는 천 원짜리 한 장을 상자에 넣었다. “저는 음악을 하는 사람입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선생님은 예술을 하는 분으로 느껴집니다.” 그는 도대체 그런 느낌을 어떻게 갖는 걸까? 그는 실은 사람의 발의 느낌으로 작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런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될까요? 어디서 내리시든 제가 따라 내려서 제게 선생님의 발의 느낌을 느끼도록 5분만 허락해 주십사 하는 겁니다.” 갸우뚱하는 내 마음을 읽은 듯이 그는 전단지 비슷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꽤 알만한 음악인의 추천사도 씌어 있었고, 오래전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모습도 실려 있었다. 나만 모른다 뿐이지 옆에 앉아있던 아주머니 하나는 그 얼굴을 알아보며 열심히 살라고 격려까지 해주는 것이었다. 의심 많은 나는 그를 안다는 증인이 나타나자, 그때야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다. 아니 그 모습이 하도 가냘프고 처량해서 그러자고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사람을 잘 믿는 탓에 이상한 일들에 휘말리기 일쑤였다.
알면서도 속아주면 왜 안 되는가? 이것이 내 어리석은 행동들에 대한 자기 합리화였다.
이빨들이 다 조립식 의치인 듯 말을 할 때마다 그의 입속 이빨들이 덜거덕거렸다. 그는 내 목소리가 자기에게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나인가?
발의 느낌으로 작곡을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석연치 않은 찜찜한 느낌을 머릿속에 남겨둔 채 나는 을지로입구 역에서 내렸다. 그도 따라 내렸다. 그리고 그는 지하철 앞의 빈 의자에 잠시 앉으라는 주문을 했다. 그날 오후 따라 지하철 앞 의자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는 내 발을 가슴에 품고 내 앞에 꿇어앉았다. 가슴으로 발을 꼭 끌어안고 마치 그는 그리운 여자의 체온을 느끼려고 몸부림치는 고독한 영혼으로 보였다. 그리고 나의 발은 그의 가슴에서 점점 아래로 내려가 꿇어앉은 그의 다리 가랑이 사이에 놓였다.
그는 정말 내 발의 느낌으로 작곡의 영감을 스케치하고 있는 걸까? 나는 또 알면서도 속아주고 있는 것일까? 이 난감한 상황은 또 무어란 말인가? 그냥 가만히 있어주는 게 잘하는 일일까? 이 젊은 시각 장애인과 이 짧은 순간 동안 춤 한 번 춘다 한들 또 뭐가 어떻겠는가? 애석하게도 그 정도로 득도한 경지는 못되는지라 나는 순간 뿌리치고 일어나 이제 그만하자고 말한다. 그는 상처받은 얼굴로 이빨을 덜거덕거리며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그를 돌아보지도 않고 제 갈 길로 사라졌다. 행여 다시 지하철에서 그를 또 보게 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어떤 일이든 알면서도 조금은 속아주되 깊게 끌려들어 가서는 절대 안 된다. 끌려 들어가면 인생은 피곤해지는 거다. 나 같은 바보도 이 나이쯤엔 이런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누군가 “너 잘 났다”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지하철 밖은 기막히게 날씨 좋은 가을인데, 내 머릿속에는 이런 노래 구절이 계속 맴돌았다. “한 많은 이 세상 냉정한 세상, 동정심 없어서 못살겠네,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