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3회
날씨가 제법 선선해진 어느 날 오후, 제리는 낡은 회색 트렁크 한 개를 들고 그녀의 집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그들은 같이 살게 되었다. 노래 속의 일곱 송이 수선화의 주인공을 닮은 제리는 매일 저녁 한 다발의 꽃을 사 들고 귀가했다. 그래서 언제나 집안에 꽃이 시들 날이 없었다. 수선화든 장미든 해바라기든 백합이든, 이후로 그녀는 꽃을 선물하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일곱 송이가 아니라 백송이라 해도, 차라리 사과 한 봉지나 바나나 한 다발이 나았을 것이다. 문제는 제리가 한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한다는 거였다. 길어야 1년, 6개월, 심지어는 한 달도 길었다. 제리의 사랑은 벽에 걸려 있는 보기 좋은 그림처럼 그녀를 바라만 볼 뿐, 그녀의 무거운 짐을 조금도 같이 들어주지 못했다. 사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 가끔 그녀의 머릿속에는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우리들은 호숫가에 앉았지.” 그 구절이 맴돌았다. 이상한 건 그 구절 외에는 다른 가사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때 그 지루하던 젊은 날에 그녀 곁에 있어 주었던 그 물색없는 사내도 아주 가끔 생각이 났다. 그녀가 기억하는 그 노래 분위기 속에는 ‘너무나 사랑해서'라든지 ‘영원히 잊을 수 없는'이라든지. ‘목이 메어' 같은 처절하게 촌스런 정서가 없어서, 그녀는 그 노래를 좋아했다. 어쩌면 그녀는 지독한 사랑 같은 걸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녀는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선택해 본 적이 없었다. 마치 다가오는 계절처럼 누군가 다가왔고, 지나가는 계절처럼 그냥 슬며시 떠나갔다. 하지만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
누가 남고 누가 떠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은 그 인연의 길이만큼 머무르다 떠나가는 것일 뿐이다. 아니 떠날 때를 알고 우리 곁을 슬며시 떠나주었던 그들은 얼마나 고마운 사람들이었을까? 그녀는 이별의 슬픔에 관한 정의를 이런 식으로 내렸다.
군대 간 뒤 소식이 끊겼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의 주인공 이후, 그녀의 없는 팔을 더 이상 아프게 하는 사람은 없었다.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아무도 그녀의 손을 유심히 보는 사람은 없었고, 그녀가 떠났던 시절의 한국과 비교하면, 적어도 미국은 장애인을 위한 나라였다. 그리고 팔 하나 없는 것쯤은 별로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고 그녀는 매일 아침 되뇌었다. 어쩌면 늦은 여름은 모두들 가는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젊음의 그래프 맨 꼭대기 지점일 것이었다. 그 여름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제리는 미안하다는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들고 왔던 낡은 회색 트렁크를 들고 들어왔던 문을 통해 총총 떠나갔다. 그는 빌의 아버지인 형의 도움을 받아 이스라엘로 떠났다. 그곳의 사회봉사 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고, 꽤 보람이 있는 일이며, 행복하다는 내용이 적힌 몇 장의 엽서가 왔었고, 자연스럽게 소식이 끊겼다. 그녀의 집안에 제리의 흔적은 한 묶음의 잘 말린 장미 꽃다발로 남았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러갔을까?
어쨌든 어느 날씨 좋은 초가을날, 그녀는 결혼했다. 시청에서 단둘이 간단히 결혼식을 올린 뒤, 그녀는 남편의 집으로 이사했다. 그녀의 남편이 된 피셔 박사는 자폐 어린이 병동을 맡고 있는 의사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 상처를 한 지 오랜 그에게는 정신지체 장애를 앓는 딸이 하나 있었다. 그 딸이 바로 그 요양원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딸을 따뜻하게 보살펴주는 그녀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박사의 딸 ‘킴'은 정신지체 장애 정도가 심한 편이었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했고, 한 자리에 오래 앉아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기도 힘들었다. 열여섯 살이 된 킴은 처녀 태가 났지만, 하루 종일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대며 요양원 주위를 걸어 다녔다. 그녀는 킴이 중얼대는 소리가 “빙글빙글 돌아. 자꾸만 돌아.” 그런 뜻으로 들렸다. 주말이면 부부는 킴을 차에 태우고 온 세상을 빙빙 돌았다. 킴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드라이브와 아이스크림이었다. 밥을 먹이려면 간호사가 붙어서 같이 빙빙 돌며 먹여야 했다. 킴은 피셔 박사의 커다란 슬픔이며, 지울 수 없는 상처였다. 그녀는 남편의 상처를 제 것처럼 꼭 감싸 안고, 자신에게 하듯 매일 마음의 약을 발라주었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고, 그녀의 상처인 없는 왼팔을 다 드러내 보여주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삶은 대체로 평온했다. 실로 오랜만에 그녀는 그녀가 바라던 삶의 내용과 형식을 갖추었다. 어릴 적 먹고 살 만했던 그녀의 집은 가난한 친척들로 들끓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겉으로는 문제가 없는 듯 보였지만, 속으로는 결코 소통할 수 없는 겉도는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하면 그녀의 없는 팔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가난한 친척들의 학비를 대주고 무기한으로 재워주고 입혀주고 먹여주었다. 그녀는 늘 소란한 집이 싫었다. 네 명이나 되는 형제들과 들끓는 사촌들 사이에서 그녀는 늘 숨을 곳이 필요하다고 혼자 되뇌었다. 단 한 순간도 조용히 있어보지 못했던 기억으로 남는 그녀의 성장기는 마치 장애가 있는 딸의 존재를 잊기라도 하듯 교회에 열광하는 어머니와 남들의 구제 사업에 열을 올리면서 정작 가족들에게는 무심한 아버지와 각자 겉도는 형제들 사이에서 늘 고독했다.
오히려 한 낯선 미국인과의 결혼은 그녀의 고독의 무게를 새처럼 가볍게 덜어주었다. 그녀는 병원과 요양소 일을 그만두었다. 남편은 그녀에게 늘 다시 그림을 그리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킴을 생각하면 그녀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같이 살지는 않아도, 그녀는 주말마다 벌어지는 킴과의 해프닝에 대비해 매 순간 긴장했다. 그런대로 무사한 날들 사이로,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정말 십여 년 만에 그녀는 서울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왜 그렇게 가기 힘들었을까? 그 이유를 그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잠시 잠이 든 그녀의 눈 아래 하얀 구름이 펼쳐졌다. 생각해보니 그녀는 대학 시절 파란 하늘 속의 구름을 그리는 구름 전문가였다. 구름에는 또 얼마나 많은 종류가 있는 것일까? 그녀는 미국에 온 이후 한 번도 떠올려본 적 없는 뭉게구름, 새털구름 같은 구름의 이름들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엉뚱하게도 그녀가 좋아하는 노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의 시작이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가 아니라 “꼭 그렇진 않았지만, 구름 위에 뜬 기분이었어.”로 시작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하려 해도 생각나지 않던 구절이 서울 가는 비행기 속에서 불현듯 떠올랐다는 사실이 그녀는 신기했다.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파란 하늘에 눈이 부셨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