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똥개
우리들 대부분은 어린 시절 기르던 개를 통해 첫 이별을 경험한다.
어린 날, 개의 죽음으로 상처를 받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 다시는 개를 기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아파트에서 기르던 한 살 된 불독 ‘베티’를 북한산 내 작업실로 데려왔다. 그 큰 몸집으로 뒤뚱뒤뚱 걸으며 애교를 살살 부리는 사랑스런 베티에게 흠뻑 빠져 나는 세월 가는 줄 몰랐다. 단언하건대, 불독은 집 지키는 개로는 빵점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사랑스러운 개다. 주인이 나갔다 들어오면 막 달려오다 실망한 듯 멈춰 서고, 낯선 사람이 오면 ‘오늘은 누가 온 거지?’ 하는 호기심으로 빛나는 눈빛을 하고 뒤뚱거리며 끝까지 달려간다. 불독은 유난히 외로움을 타고 심심한 걸 못 참는 개다. 베티를 모델로 나는 수많은 그림을 그렸다. 아마 내 생애 개를 그리는 시기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른다. 베티는 그 표정이 마치 사람의 표정처럼 풍부한 회화적이고 희극적인 개다. 어느 봄날 베티는 원주인인 동생을 따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정을 주었는데도 그놈은 원래 주인은 동생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 뒤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마다, 갈 시간이 되면 저를 떼어놓고 갈까봐 두 발을 차에 올려놓고 기다리고 서 있다. 나는 그런 베티가 원망스러우면서도 웃음이 절로 났다.
어느덧 베티가 열 살이 되었다. 여행을 하다가 문득 떠오르던 세상에서 가장 보고 싶은 얼굴이 베티의 얼굴임을 깨달을 때, 나는 때로 절망했다. 이제 내 마음속에는 사람이 사라졌구나 하는 회한이 앞섰다. 그런데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그렇게 보고 싶던 베티를 요새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많다.
사실 명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우리 가족은 그럴 듯한 품종의 외국 개를 길러 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어릴 적에 길렀던 잊을 수 없는 기억 속의 개 ‘파미’도 누군가 가져다준 평범하고 흔한 잡종 강아지였다. 파미는 툇마루 구석 깊숙이 쥐약이 발린 음식을 집어먹고 기억 상실증에 걸려 집을 나갔다. 울며불며 찾아 헤매던 파미를 몇 달 뒤 학교 근처 공사장에서 만났을 때 파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이름을 수차례 부르는 것을 보고 인부 하나가 다가와 아는 개냐고 물었다. 영리한데 주인이 없는 개라고 했다. 데리고 집에 가면 엄마한테 혼날까 봐 그냥 돌아온 뒤 나는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이틀 뒤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개는 그곳에 없었다. 인부들은 개가 어디론가 가버렸다고 했다. 그곳을 제 발로 떠났는지, 인부 아저씨들의 한 끼 식사로 사라졌는지 알 길이 없었다.
개를 집으로 데리고 오지 않은 죄책감은 아주 오래갔다. 아니 아주 희미한 흔적의 형태로 아직도 내게 남아있다. 그 이후 내가 정을 준 유일한 개가 바로 불독 베티다.
마당이 넉넉한 내 작업실에는 베티 외에도, 어디선가 울타리를 넘어들어와 같이 살게 된 서너 마리의 터줏대감 똥개들이 함께 살았다. 정을 준 적도 별로 없는 그 똥개들은 우리 집을 지켜주는 영리한 충견들이었다. 무슨 일인지 몇 달 사이 그놈들이 차례로 죽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우리 집 근처 빈 땅에 쇠 철망 속에 갇혀 있는 어린 개 두 마리를 보았다. 그놈들은 추운 한겨울 꽝꽝 언 밥을 갉아먹고 있었다. 누군가 일주일에 한 번쯤 와서 남은 밥찌꺼기 한 통씩을 부어주고 갔다. 알고 보니 그렇게 키워서 사철탕 집에 팔려는 거였다. 팔려가는 순간에 나는 그 두 마리를 적지 않은 돈을 주고 샀다. 불쌍해서 데려가려 한다는데도 개 주인은 요즘 토종 똥개가 드물어서 값이 비싸다며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렀다. 사실 이 동네에는 집 없이 돌아다니는 비슷하게 생긴 백구들이 많았다. 어쨌든 그날 이후 백구 두 마리는 우리 식구가 되었다. 문제는 그놈들이 절대 짖지 않는다는 거였다. 무서운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낯선 남자만 나타나면 어디론가 재빨리 숨고 없었다.
그놈들은 오직 밥을 주고 보호해주는 나와 어머니만 따랐다. 식용 개가 따로 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정붙이면 애견이고, 정 안주고 밥만 먹여 키우면 식용이다. 아니 식용 개는 내가 모르는 개라고 함이 옳다.
이 땅의 흔하고 흔한 잡종견인 황구와 백구들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키워 본 사람은 안다. 그놈들을 하도 많이 잡아먹어서 어느 날 씨가 마를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늘 불독 ‘베티’를 그리워하면서 새 식구가 된 웅이와 순이에게 정을 붙였다.
그중에서도 수놈 웅이는 아주 심한 자폐 증세를 보였다. 세상과 소통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웅이는 다시 묶이거나 갇힐까 봐 겁이 나는지 집을 아무리 정성 들여 만들어주어도 집 속에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 추운 겨울에 겨울비를 맞으며 추운 벌판에서 잠이 드는 웅이는 우리를 향해 일별조차 하지 않았다. 아는 척하지도 않으면서 우리가 외출할 때면 늘 앞장을 서며 배웅을 하는 그놈의 속마음을 알 수 없었다. 독립 운동가를 닮은 웅이에 비해 그보다 한 살 어린 암놈 순이는 사람을 무척 따랐다. 문제는 한 달 두 달 지나면서 순이의 발정시기가 다가온다는 거였다. 벌써 동네의 수캐들이 냄새를 맡고 몰려들고 있었다. 새끼를 낳으면 기르지도 못하고, 그놈들 다 사철탕 집 신세가 될 게 뻔했다.
개의 출산을 막기 위해 우리 가족은 순이를 철조망에 가두고, 웅이의 거세를 결정했다.
얼마 안 가 우리의 결정이 얼마나 아둔한 인간의 생각이었는지 드러났다. 웅이와 순이의 교미를 두려워하던 우리가 가장 원치 않던 최악의 상태가 벌어졌다. 웅이는 병원에 가서 거세를 당하고, 순이는 동네를 돌아다니는 낯선 수캐의 새끼를 뱄다.
할 수 없이 순이의 출산을 기다려야 하는 우리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어리석은 인간이 하는 짓이란 어쩌면 다 이런 식이 아닐까? 자연을 훼손하고 유전자를 변형하며 자연의 섭리를 파괴하며 살아가는 위대한 인간의 종족, 그러나 자연은 그보다 훨씬 무섭고 힘이 세다. 나는 순이가 낳을 새끼를 어찌할 것인지 생각만 하면 슬퍼졌다. 다 기를 수도 없고 끓여 먹으라고 남을 줄 수도 없고 그냥 버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우리 동네에는 전부 형제인 듯 고만고만 닮은 여러 마리의 백구들이 어슬렁거린다. 어느 날 산책길에 보이지 않으면 그놈은 십중팔구 사철탕 집으로 간 거다. 우리 동네는 개들에게는 위험천만인 제5전선이다. 아직 보지 못한 순이의 새끼들을 생각하며 아무 죄 없는 순이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선하디선한 웅이의 겁 많은 눈동자도 들여다보았다. 웅이의 커다란 눈동자도 내 눈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사이좋은 놈들을 갈라놓고 그 꼴로 만든 게 너무 미안했다. 순이가 죽은 새끼들을 뱃속에 품고 세상을 떠난 날, 엄마와 나는 많이 울었다. 어린 순이의 마지막을 떠올리며, 나는 엉뚱하게도 베트남 전쟁이 떠올랐다. 베트남전은 그들에게는 생사가 걸린 내전이었으나 미국에게는 거대한 이데올로기 전쟁이었다. 결국 미국은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베트남 땅을 초토화시켰다. 거기에 한 몫을 거든 우리나라는 젊은 생명들을 담보로 초유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돈이란 얼마나 더럽고 무섭고 끔찍하며 위대한가?
베트남 전쟁, 쿠바 사태, 이라크 전쟁 등등에서 미국이 한 일의 의미는 마치 우리 가족이 웅이와 순이에게 그들을 위해 한 일이이랍시고 한 짓이나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자각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순이가 죽고 혼자가 된 웅이는 더욱 심한 자폐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불러도 꼭꼭 숨어서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웅이 에게 순이를 꼭 닮은 여자 친구가 생겼다. 옆집 개 똘똘이는 웅이를 따라 아예 우리 집으로 와서 제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거였다. 똘똘이는 순이를 많이 닮아 영리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데다가, 그 마르고 긴 몸매까지 참 비슷했다. 똘똘이 덕분에 웅이의 자폐증은 많이 나아졌다. 문제는 똘똘이의 발정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거였다. 머지않아 동네 수놈들이 몰려들 것이다. 게다가 내 작업실이 수용을 당해 내 후년 봄이면 이 땅을 떠나야 한다는 거다. 그러면 웅이와 똘똘이는 어디로 보내야 할까? 나의 새로운 걱정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내일의 해가 떠오르면, 그때 생각하자고 생각한다. 다른 모든 골치 아픈 일들도 그렇게 미뤄두자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한 생애는 그 끝없는 걱정의 축적일지니, 그 해결책을 연구하는 일을 취미로 삼아보자고 생각한다. 모든 일이 뜻대로는 되지 않으니 그저 최선을 다해 보자고 생각한다. 우리 동네 낯익은 개들이 하나씩 둘씩 삼복더위에 사라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