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한다
인사동이나 삼청동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을 때, 가끔은 이런 일이 일어난다. 아줌마 한 분이 전시장 문 앞을 지나치며 동행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다.
"난 안 들어가. 저 여자 그림 안 좋아하거든."
마침 화랑 문 앞에 서있던 나는 그녀에게 묻는다.
"어머 제 그림 안 좋아하세요?"
그녀는 "어머머" 하면서 종종걸음으로 사라진다. 내 짓궂은 행동에 웃음이 피식 나온다.
하지만 그런 일만 있는 건 아니다.
화랑들이 줄지어 있는 삼청동 길목을 걷는데, 여인들 몇이 내 앞을 지나쳐간다. 그 중 한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내 뒤통수에 부딪친다.
"나는 황주리 그림이 너무 좋아서 이번 개인전 때 세 번이나 갔었어. 볼수록 더 좋더라. 정말 강렬하고 인상적이었어.
"아- 얼마나 그녀들이 예쁜지 껴안고 입 맞추고 싶다. 고마워라. 내 그림과 교감하는 당신을 사랑한다. 나는 또 사랑한다. 전시장에서 "아줌마랑 저랑 이름이 똑 같아요. 신기하죠?" 하면서 사인을 해달라고 화집을 내밀던, 초등학생 황주리를.
나는 사랑한다. 전쟁으로 유년을 잃어버린 보스니아의 사라예보 어린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장난감 등이 가득 들은 선물 십 만개를 공중에다 뿌린 고 마이클 잭슨을. 남들이 죽고 사는 권력을 뒤로 하고, 새로운 세상의 가능성에 끝없이 도전하다 길 위에서 죽은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의 주인공 '체 게바라'를. 나는 또 사랑한다. 아직 사랑을 시작하기 전의 두 남녀가 자신들도 모르게 자꾸만 거리를 좁히며 걸어가는 여름밤의 조용한 수런거림을. 비 오는 날에는 헤어지지말자고 노래하는 '가제보'의 노래 '아이 라이크 쇼팽'을. 하루키의 긴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오늘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높은 곳에서 확 뛰어내리고 싶은 기분이 드는 당신, 공백의 노트에다 사랑하는 것들의 목록을 차근차근 적어보라. 쓸 내용이 하나도 없다면 뛰어내려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