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와 두 번 이혼한 여자’ 1회
중고등학교 시절 그녀는 수학과목을 제일 싫어했다. 그녀 어머니의 권유로 대학생이던 친한 친구 오빠가 집에 와서 일주일에 두 번 그녀에게 수학을 가르쳤다. 이 세상에서 수학을 제일 싫어하던 그녀는 그 친구 오빠 덕분에 수학이 좋아졌다. 조금씩 수학 문제를 푸는 일이 캄캄한 밤에 별을 헤는 일처럼 아름답게 여겨질 무렵, 군대를 갔다 와 복학생이던 친구 오빠는 오래 사귄 여자 친구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날 이후 친구 오빠를 다시 보지 못했지만, 그녀는 이전처럼 수학이 싫지는 않았다. 수학뿐 아니라 모든 과목 성적이 썩 좋은 편은 아니던 그녀는 서울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전문사립대학, 안경학과에 입학했다.
사실 그녀는 누군가 장래 희망이 무어냐고 물을 때마다 곤혹스러웠다. 아무것도 되고 싶은 게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릴 적 처음 시력검사를 했을 때를 잊지 못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잘생긴 청년이 그녀에게 커다랗고 무거운 검안 안경을 씌우고 점점 조그매지는 숫자와 글씨들로 그득한 신비로운 시력검사 판을 막대기로 짚어가며 작은 글씨들이 보이냐고 묻던 그 장면이 그녀는 늘 잊히지 않았다. 그 이후 그녀는 하얀 가운을 입고 사람들의 시력을 재는 검안사가 되고 싶었다. 참 독특한 미래의 꿈이었다.
날 때부터 눈이 나빴던 그녀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안경을 썼다. 어릴 적부터 그녀는 안경점 쇼윈도를 들여다보길 좋아했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갖가지 모양과 색깔의 안경들을 들여다보는 일은 마치 낯선 나라의 신기한 나비들이 박제되어있는 채집 상자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날 때부터 한집에 같이 살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베개맡에 덩그마니 할머니의 돋보기안경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사람은 죽은 뒤 육신은 땅에 묻히고 이 지상에 한 개 혹은 여러 개의 안경을 남긴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하긴 사람이 남기는 게 안경뿐이랴? 옷도 구두도 치약도 화장품도 비누도 다 남기고, 그저 그 물건들을 한 때 소유했던 사람만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의 머릿속에 할머니의 유품은 안경 한 개로 남았다. 만일 안경에 관한 논문을 쓰라면 ‘유품으로서의 안경에 관한 연구’ 그런 제목을 붙이면 될 것 같았다.
사실 안경학과라는 과가 대학에 생긴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과 선택을 하느라 노심초사하다가 안경학과라는 과를 발견하고 그녀는 탄성을 질렀다. 안경학과는 안경에 관한 모든 것을 공부하는 과였다. 사실 안경에 관한 과학적인 접근 말고도 그녀가 늘 관심을 갖는 것은 안경의 디자인이었다. 얼마나 많은 모양의 안경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일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안경을 만들고 싶었던 그녀는 사실 안경학과가 아니라 디자인을 전공하는 미술대학에 갔어야 할지 모른다. 안경학과에서는 기하광학, 안경광학, 콘택트렌즈 가공 실습 등 안경원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깊이 있게 공부한 뒤 졸업 후 일선 안경원이나 안과 등에서 검안 테크니션으로 일하는 게 보통이었다.
만일 그녀가 친구 오빠가 가르쳐준 수학의 신비에 심취한 적이 없었다면 그 꿈을 접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안경사란 수학에서 아니 숫자에서부터 시작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안경사는 안경이나 콘택트렌즈, 선글라스를 납품할 때 착용자의 얼굴이나 눈에 맞게 제조하여 편안하게 착용할 수 있도록 착용자를 도와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정도는 안경학과에 들어간 학생이라면 모두 다 알고 있는 기초적인 사실이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피검사자로부터 얻은 개인의 신상 기록이나 데이터를 타인에게 누설하지 않을 의무가 있고, 이러한 모든 일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면허를 취득하여 국민의 시력 향상을 위해 일하는 사람― 그가 바로 안경사였다. 안경사 면허제도의 입법 취지는 국민의 눈 건강 향상을 위해 무자격자의 주먹구구식 무분별한 안경 조제 및 시력검사를 막아주고 정확하고 책임질 수 있는 안경 조제와 시력검사, 콘택트렌즈 공급을 위해 제정한 제도이며, 전문대학 안경광학과 졸업자만 국가고시의 응시자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녀는 사립전문대학 안경학과를 졸업한 뒤, 안경사 국가고시 시험에 합격, 꿈에도 그리던 안경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