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살아있어요. 이만 이천 명의 사람들이 〈루트 91 하베스트 뮤직 페스티벌〉에 음악을 즐기러 온 공연장에서 마침 제이슨 알딘이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노래를 부르는 중이었어요.
갑자기 어디선가 폭죽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어쩌면 슬롯머신에서 잭팟이 터지는 소리처럼도 들렸어요. 공연은 중단되었고, 맞은 편 높은 곳에서 섬광이 번쩍하는 걸 본 순간,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푹 꼬꾸라지며 쓰러졌죠. 폭죽 소리가 아니라 누군가 맞은편 호텔 고층에서 공연장을 내려다보며 자동기관총으로 마구 쏘아대는 거였어요. 발이 얼어붙어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기어가는 사람들, 소리를 지르며 여기저기로 총알을 피해 뛰어가는 사람들로 공연장은 아수라장이 되었어요. 독 안에 든 쥐들처럼 이리저리 뛰기 시작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몸을 낮추고 어디론가 뛰기 시작했어요. 바로 내 옆에서 누군가 푹 하고 쓰러졌지만 그를 돌볼 겨를은 없었어요. 누군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사람의 옆모습이 얼핏 헤어진 남편처럼 보이기도 했고,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뛰어가는 내 귓속에 빗발치듯 들리는 총소리는 언니의 귀에 매 순간 들려오는 바로 그 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 아닌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귀를 막고 마구 달리는 공포의 순간은 한 5분 이상 이어졌다는데, 그 시간은 한두 시간은 된 것처럼 길게 느껴졌어요. 아우성치는 사람들과 빗발치는 총소리 속을 정신없이 뛰어서 공연장 밖으로 겨우 빠져나와 계속 뛰었어요.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사람들은 끝없는 마라톤 경주를 하듯 계속 뛰었어요. 뛰다 보니 다른 호텔의 입구가 보였고, 안으로 들어서니 카지노장에서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카지노를 하고 있었죠. 미친 듯이 지옥을 벗어나 뛰어온 사람들은 모두 엘리베이터를 향해 몰려갔어요. 고층에서 범인이 총기 난사를 하고 있으니, 높은 곳에 올라가면 안전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죠. 범인이 어디 있는지 어디로 움직이는지도 모르는 채 사람들은 계속 뛰어서 엘리베이터 앞으로 몰려갔지만, 호텔 측에서 못 올라가게 막더라고요. 다 죽으면 책임질 거냐고 악을 쓰는 사람들로 엘리베이터 문은 열렸고, 고층으로 올라가 숨죽이며 숨어있는데, 누군가 겁먹은 소리로 범인이 쫓아오고 있다고 소리쳤어요. 범인이 어디에 있는지, 높은 곳에서 내려와 이제는 도망가는 사람들을 쫓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공포심은 낯익은 홀로코스트 영화를 연상케 했어요. 유대인 포로들이 노동을 하고 있는 운동장을 향해 건물 위층에서 무차별로 총을 쏘아대는, 나치 장교가 등장하는 영화장면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어요.
아무래도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이라는 생각도 스쳐 갔고요. 영화와 현실과 몽상이 섞여들어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피곤함이 몰려왔어요. 다 도망친 뒤에야 이제 죽어도 그리 억울할 것도 없다는 허무감이 스며들었고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다 내려가고 내가 숨어있던 복도에는 아무도 남지 않고 나만 혼자 멍하니 앉아있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범인은 경찰이 급습하기 바로 전 자살해버렸다는데, 그 뒤에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살기위한 본능으로 계속 뛰어다녔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어요. 죽으려면 혼자 조용히 죽을 일이지 혼자 죽는 게 그렇게 억울했을까요? 전과 하나 없는 은퇴한 회계사 출신인 범인의 아버지가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이코패스로, 은행 강도 전과가 있다 하더군요. 유전자처럼 무서운 것은 없죠, 어쩌면 위대한 예술가의 가계가 그렇듯, 끔찍하고 막대한 범죄도 특수한 가계에서 대를 물려 성사가 되곤 하니까요. 유람선에서 비디오 포커를 즐기는 넉넉한 삶을 살던 그는 한 번의 이혼 경력에 자녀는 없고,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있다고 했어요. 범인이 총기난사를 벌이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일은 어머니와 동생에게 문자 메시지로 안부를 묻고, 여자 친구인 필리핀계 호주 국적의 매릴루 댄리의 은행 구좌로 십만 달러를 송금한 일이었대요. 범인의 동생 에릭 패덕은 텔레비전 인터뷰를 통해 바로 그녀가 형 스티븐 패덕의 생애에서 형이 뭔가 해주려고 했던, 사랑했던 거의 유일한 사람일 거라고 말했어요. 그녀는 고액 베팅을 즐기는 고객들을 상대하는 카지노 종업원으로 일하며 범인을 알게 되었다 하더군요. 그녀는 중혼주의자에다가 동시에 두 사람과 결혼했고, 두 개의 사회보장제도를 갖고 있다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들이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왔어요. 중혼주의자라니, 어쩌면 힘들게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던 걸까요? 세상에는 별사람이 다 있고 별의별 주의가 다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다는 마음은 모든 생물이 지닌 공통의 감정이 아닐는지요. 어쩌면 인간은 선물을 하는 동물인지도 모르겠어요. 아니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물체가 그럴지도 모르죠. 언젠가 본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돌고래도 여자 친구에게 선물을 한다는 장면이 나와 혼자 웃었어요. 돌고래도 맘에 드는 암컷에게 해조류를 뜯어다 준다는군요. 인간뿐 아니라 동물도 선물을 한다는 걸 보면서, 산다는 건 그 자체가 선물이며, 그 선물 속의 선물은 사랑이라고, 아무리 주어도 아깝지 않은 상대가 있다는 건 행복이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던, 살아있는 날의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