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편지를 읽고 내내 이 구절이 마음속에 맴돌았어요. “죽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믿어 보고 싶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할 만큼 과연 운이 나빴던 걸까?
믿는다는 건 나에 대한 그 사람의 정절, 혹은 세상의 모든 것을 같이 공유하는 그 많은 믿음들에 관한 수많은 정의들이겠지요. 혹시나 내 사랑하는 사람이 언젠가의 한때,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사랑했다면, 그래서 그들이 마음뿐이 아닌 몸을 한 번뿐이 아니라 오래도록 공유했다면, 그렇다면 그가 과연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 어쩌면 더 외로웠던 사람은 나 하나만이 아닌 두 사람을 사랑했던 바로 그 사람은 아닐까? 이 복잡한 생각의 한가운데서 사랑이란, 믿음이라기보다는 그냥 주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감기가 걸리면 감기약을, 따뜻한 이부자리와 먹음직한 빵과 고기를. 이 유물론의 한가운데서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음을 벗어날 수 없는 우리들 인간의 사랑입니다.
스톡홀름에 살던 사랑하는 언니가 미국으로 이사를 가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라고 제가 말했었나요? 그녀가 세상의 모든 소리가 다 들려오는 알 수 없는 병과 싸우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었던가요? 세상은 늘 전쟁 중이지만, 잠자리가 날개를 부비는 아주 작은 소리부터 무지하게 큰 소리까지 세상의 모든 소리가 아주 자세하게 들려오는 병을 앓으며 뼈만 남은 언니는 오늘도 자신의 병과 전쟁 중이죠. 뉴욕에서 당신과 스쳐 지났을 무렵, 남편과 헤어지고 뉴욕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언니가 사는 스톡홀름으로 가서 한참을 살았어요. 해 지는 감라스텐 거리의 선술집에서 혼자 와인 한 병을 다 비우고는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사람을 자처하던 그 시절이 그립지는 않네요.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저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 여전히 낮에는 월스트리트에 있는 금융회사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그림을 그리면서 세월을 보냈어요. 가끔은 그림이 팔리기도 해서 어느 날은 명품들이 죽 걸려있는 5번가에 가서 아주 비싼 코트를 사 입기도 했죠. 지금도 옷걸이에 걸려있는 그 코트는 제 뉴욕 시절의 흔적 중 하나로 남았어요. 그리고 무엇이 남았을까? 기억보다 오래가고 기억보다 빨리 사라지는 게 있을까?
그날은 날씨 좋은 초가을 아침이었어요. 그날따라 온몸에 열이 나고 감기기가 있어서 사무실에 쉬겠다는 전화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커피 한잔을 들고 창가로 나가 앉았어요. 갑자기 어마어마한 폭발음이 들리더니 거짓말처럼 비행기 한 대가 우리 아파트 강 건너편에 위치한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을 향해 와 부딪쳤어요. 제 눈을 의심했지만 그건 꿈이 아닌 현실이었어요. 얼마 안 있어 또 다른 폭발음이 들려왔고, 또 한 비행기가 남쪽 건물과 충돌했어요. 거대한 짐승 같던 쌍둥이 빌딩이 완전히 폭삭 주저앉는 데는 한참이 걸렸지만, 납치당한 항공기에 탑승했던 승객 266명이 전원 사망하고, 사망 또는 실종된 삼천여 명의 인명 피해가 나는 데는 찰나의 시간이 걸렸을 뿐이었죠. 이 거대한 테러의 주요 용의자는 물론 오사마 빈 라덴의 추종 조직인 알카에다와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산하 무장조직인 이슬람 테러조직들이 관여되어 있다고 텔레비전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어요. 텔레비전에 비치는 그 높은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처연했어요. 살기 위해 떨어지는지 죽기 위해 떨어지는지 그 아무도 알 수가 없는 막다른 생사의 길로 떨어지는 사람들의 환영이 아직도 가끔 꿈에 나타나요. 그 일이 일어나자마자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빈 라덴이 숨어있는 아프가니스탄에 보복전 쟁을 일으켜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함락한 뒤, 이년 뒤에는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 20일 만에 완전 함락시키고, 아직도 테러와의 전쟁은 계속 중이죠. 이 끝이 없는 보복의 역사는 과연 끝이 날까요? 이제 제한된 한 지역이 아니라 세상 모든 곳이 언제라도 전쟁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면서, 당신도 나도 살얼음판을 걸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합니다. 라디오에서 문득 이런 내용이 흘러나오는 군요.
“2000년 전에 유대인의 땅이었던 이스라엘은 이후 2000년 동안 팔레스타인의 땅이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팔레스타인의 땅을 유대인들에게 돌려주라는 결정을 내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생겼다. 제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2000년 동안 살았던 땅을 빼앗기고 오열과 증오로 세상을 대하기 시작했다. 증오는 증오를 낳고 끊임없이 상속된다. 하지만 이천년이 지난 뒤 팔레스타인 영토에 대한 유대인들의 땅의 권리를 돌려준 것은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
돈도 금도 지혜도 아닌 증오의 상속이라니, 옳은 건 과연 무엇일까요? 당신은 왜 그 고독한 바그람에서 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나요? 문득 이렇게 말하고 싶어져요.
“인간은 복수하는 존재다.”
언니가 라스베이거스로 이사를 한 건 실내 건축 디자이너인 스웨덴인 형부가 새로 짓는 라스베이거스의 어느 호텔 인테리어를 맡게 되면서부터였어요. 그 화려한 라스베이거스에 살면서부터 언니는 작은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옆집에서 들리는 작은 기침 소리나 숨소리까지 점점 크게 들리기 시작했대요. 병원에 가 봐도 아무런 병의 이름을 찾아낼 수 없었고, 아마도 언니가 그 병에 걸린 최초의 환자인지도 모른다고 하더래요. 얼핏 듣기보다 아주 심각한 증상들이 이어졌어요. 가족들은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 말을 건네야만 했는데, 가끔 들리는 웃음소리는 언니의 머리를 깨버릴 듯 크게 들려서 아무도 그녀 곁에서 웃지도 않고 말을 하지도 않게 되어버렸죠. 실내에서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스마트 폰도 켤 수 없었으니 언니는 점점 고립되어갔어요. 제가 서울에 돌아와 살기 시작한 즈음, 그때만 해도 남들이 듣지 못하는 작은 소리들이 들리는 정도였던 언니는 제게 라스베이거스에 와서 그림을 그리며 살면 안 되겠냐고 물었어요. 카지노에 관심도 없으면서 늘 라스베이거스의 낯선 우주 같은 분위기를 좋아하는 제겐 참 희소식이었지만, 헤어진 남편이 마카오와 라스베이거스를 오가며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뒤엔 왠지 그곳에 가기가 망설여졌어요. 그 사람의 연인이 마카오의 새로 생긴 최고급 호텔의 카지노 지배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지도 한참 되었네요. 그에게 또 다른 연인이 생겨서 그들이 헤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건 얼마 전이었어요.
언젠가의 익산 미륵사지 석탑 앞에서 “볼 것도 하나 없네.” 하는 내게 “너는 왜 저 여백을 보지 못하니?” 하던 그 여유 있는 언니가 그 많은 소리들이 다 들려 온 몸과 마음에 통증을 느끼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죠. 병원에 가면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데 온몸에 통증을 느끼는 병이란 아무에게도 동정조차 받기가 어렵기 마련이어요. 하루는 언니가 전화 속에서 말했어요. “모국어로 말한다는 건 행복이야. 나는 네가 모국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과 행복하기를 바라.” 그러면서 자신의 통증은 하고 싶은 모국어는커녕 말을 하지 못해서 오는 병이라고도 했어요. 왜냐하면 남의 말은 물론이고 자신의 말소리도 너무 크게 들리니까요. 언니는 갖가지 귀마개를 다 사들이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소리는 그치지 않았고 계속 새로운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문득 당신이 떠올랐어요. 언니는 스웨덴인 형부와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일이 그렇게 외로웠을까? 그들은 제2외국어로 대화를 나누어야 했으니까 그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둘 중의 한 사람은 모국어로 말해야 되지 않을지, 그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네요. 하지만 말이 그렇게 중요할까요? 누구와도 전화를 하지 않은 지 너무 오래되었어요. 문자를 쓰거나 카톡을 치거나 이메일을 보내거나, 편지형 인간이 된지 너무 오래되어버렸네요. 하긴 잘 통하는 사람과 모국어로 이야기하면 참 행복하죠. 잘 통하는 외국인과 이메일을 나누어도 행복한 건 마찬가지죠. 중요한 건 그들의 모국어는 둘만의 언어라는 거예요. 그 어느 나라의 말도 아닌 외계어, 하지만 사람들이 그러는데 그런 시간은 얼마 가지 않는대요. 하지만 내 친구, 앨런, 우리는 오래오래 우리만의 외계어로 이야기해요. 우리만의 언어, 우리만의 우정, 우리만의 사랑……
굿 나잇, 당신의 박경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