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여름 장마가 한창입니다. 눅눅한 실내에 제습기를 하루 종일 틀어놓아요. 몇 시간만 지나면 용기 안에 가득 찬 물을 버리면서, 공기 중에 그렇게 많은 습기가 스며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해요. 우리 안의 출렁이는 슬픔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래 전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에게 그림을 가르친 적이 있어요. 그중에는 불치병을 앓고 있거나 오랜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도 있었죠. 「사랑은 지는 게임」Love is a losing game이라는 노래를 좋아하던 간호사 아가씨랑 친하게 지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라는 처음 들어본 가수의 노래를 직접 불러주던 그녀는 환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어요. 바로 그녀가 당신과 가까이 있다니 믿어지지 않네요. 「Love is losing game」. 그녀를 생각하면 그 노래가 떠올라요.
“만일 내 남자가 잘못된 전쟁을 지지한다면 나는 그 전쟁을 지지할 거야.” 당신에게 들려주었다는 그 노래도 아직 귓속에 쟁쟁해요. 그러더니 정말 그런 남자를 만나고야 말았죠. 그는 저한테 그림 그리기를 배우던 환자 중 한 사람이었어요. 한국인 어머니에 아랍 쪽 혈통을 지닌 드문 혼혈로 크고 짙은 눈동자를 지닌 그 남자를 그녀는 많이 사랑했어요. 강박증이 심하던 그 남자의 병은 자신이 누군가를 죽였다고 생각하는 심각한 증세였죠. 좁은 골목길을 걸어가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면 자신이 죽인 시체가 있어야 하는데, 만일 없다면 자신이 어딘가에 파묻었을지도 모른다는 모호한 기억에 시달렸어요. 그림을 그리라면 그는 늘 뒤돌아보는 자신의 이미지를 그리곤 했죠. 생각해보니 헤어진 남편의 증세도 그와 비슷했어요. 어느 날은 새벽에 깨어 자고 있는 저를 깨우더니 “당신 살아있었네.” 하는 거예요. 누군가 아내를 죽여 산속에 파묻었다는 뉴스를 보면 그게 자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고 말했어요. 시칠리아의 팔레르모, 시체박물관에서 가슴에 통증을 느끼던 남편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그런 강박으로부터 도망치기라도 하듯 그는 카지노에 빠져 살았어요. 노래를 잘 부르던 간호사 아가씨와 저는 서로의 상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헤어진 남편 이야기를 하면 그녀는 귀를 쫑긋 세우고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이야기를 자꾸만 더 해달라고 졸랐어요. 하긴 들을수록 신기한 이야기이긴 하죠. 남편은 마카오 출신의 유명한 카지노딜러였던 남자와 사랑에 빠져 내 곁을 떠났다고. 남자라기보다는 트렌스젠더라 말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라고. 언젠가 뉴욕 소호에서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그 둘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고.
카지노에 미쳐서는 심심하면 돈을 달라고 조르던 남편에게 도박은 잘못된 전쟁이었다고. 결코 나는 그 잘못된 전쟁을 지지할 수 없었다고. 남편의 잘못된 전쟁을 늘 지지해주는 사람과 어디선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언젠가 고스란히 다 내주고 싶던 내 사랑은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언젠가 내게 다 주었다는 누군가의 사랑도 마찬가지이듯이. 사랑이 무엇인지 궁금했던 날들이 그립지는 않다고. 그저 사랑은 명멸하는 불꽃 같은 거라고. 그저 하나씩 둘씩 꺼져가다 드디어는 캄캄한 순간이 오고야 말 생의 불꽃 같은 거라고. 그러니 춤도 사랑도 삶도 캄캄해질 때까지, 더 이상 못할 때까지 계속하는 거라고. 긴 여행을 떠났을 때 ‘실컷 구경 잘 했다’ 그런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 죽음도 그렇게 맞을 수 있다면 최고가 아니겠냐고.
그 시절 사랑스러운 그녀는 제 말이라면 뭐든지 다 들어주었어요. “언니가 남자라면 난 그곳이 어디든 언니를 따라갈 거야.”라고 말하곤 했죠. 그 시절 저는 정말 그녀를 데리고 멀리 떠나고 싶었어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세상의 반대쪽으로. 남자거나 여자거나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죠. 그러던 중 그녀는 눈동자가 깊고 짙은 그 남자와 사랑에 빠져버렸어요. 그림을 가르치던 어느 날 저는 이제 미술은 각자 하고 마술을 해보자고 환자들에게 말했어요. 제가 배웠던 마술의 기초적인 수업을 그들에게 몇 번 가르쳐주었을 때, 사랑스러운 그녀가 사랑한 그 남자는 선생님 덕분에 마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며 병원을 떠났어요. 나중에 듣기로는 터키로 들어가 시리아 쪽으로 갔다고 하는데, 어쩌면 시리아 사막 한가운데 있다는 바그다드 카페에 걸려있는 제 그림은 사랑스러운 그녀에게 언젠가 제가 그려준 그림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녀는 사랑하는 그 남자에게 뭐든지 다 주고 싶어 했어요. 언제부터인가 그녀로부터 소식이 아주 끊겼어요. 가끔 그녀가 그리웠지만 소식이 끊긴 그녀가 섭섭하기도 했고요. 세월은 그렇게 급류에 휩쓸린 듯 마구 흘러갔어요. 나중에 들으니 그 남자를 찾으러 먼 길을 떠났다고 하더군요.
“만일 내 남자가 잘못된 전쟁을 지지한다면, 나는 그 전쟁을 지지할 거야.” 요즘도 그 노래가 가끔 기억 속에서 맴돌아요. 안부를 전하지는 말아주세요. 그냥 그렇게 잘 살길 빌어요.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중국의 인권 운동가 류사오보劉曉波가 아내 류샤劉霞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잘 사시오.”였대요. 중국혁명의 지도자 쑨원孫文은 아내 쑹칭링宋慶齡에게 “그대에게 준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우리가 같이한 집안의 추억과 집 밖의 꿈을 그대에게 주고 간다.” 그렇게 말했다 하네요. 정확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참 무거운 짐을 아내에게 남겨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 밖의 꿈이라니. 어쩌면 집 밖의 꿈을 꾸는 모든 남자들은 종류는 다 다르겠지만, 다 잘못된 전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문득 이런 시가 떠오르는 장마 속입니다.
걸어가는 사람이 제일 아름답더라
누구와 만나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제일 아름답더라
솜구름 널린 하늘이더라
-고은, 「순간의 꽃」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