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츠비, 당신은 멀리 있지 않아요. 문득 『위대한 개츠비』 영화 속의 화려한 저택에서 열리던 파티 장면이 떠오르네요. 파티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렇게 화려한 풍경 속으로 지금 당장 당신의 손을 이끌고 들어가고 싶어요. 때로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가 아니라 파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환한 불빛 아래서 춤을 추는 사람들, 와인 잔들이 부딪치는 소리, 여자들의 화려한 의상. 가끔은 영화 속에서라도 그런 장면을 보고 싶어져요.
위대한 개츠비, 몇 년 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은 영화의 영상이 훨씬 더 화려했는데도, 한창때의 로버트 레드포드가 개츠비로 나왔던 그 옛날 영화가 저는 좋아요. 이왕이면 꿈속에서라도 디즈니랜드 같은 파티에 함께 가고 싶어요. 난파선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둥둥 떠다니거나 폭탄 조끼를 입고 당신의 꿈속에 출몰하는 나는 누구일까요? 가끔 이 세상 전체가 침몰하는 배처럼 느껴져요. 위험한 건 나일까? 내 친구 당신일까?
뒤돌아보면 누구나처럼 늘 행복하지만도 불행하지만도 않았던 우리들의 과거는 영화 같기도 꿈같기도 해요. 남편과 처음 만났던 스웨덴 스톡홀름의 감라스텐 거리에서부터 신혼여행 비슷하게 떠났던 이탈리아의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동안만큼은 행복했어요. 지금도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바로 시칠리아예요. 영화 『말레나』가 생각나는 도시, 시라쿠사의 두오모 광장에 가보셨나요? 주인공으로 나오는 모니카 벨루치는 남편이 전쟁터에 나간 사이 독일군 장교들에게 몸을 팔며 살아가죠. 전쟁이 끝난 뒤 독일군에게 몸을 판 죄로 두오모 광장에 끌려 나와 마을 사람들에게 돌팔매질을 맞지만, 돌아온 남편의 품에 안겨 당당히 광장 위를 걸어가는 여자, 영화 『말레나』를 찍은 그곳에서 남편은 말했어요. 당신이 내가 전쟁터에 나간 사이 적군의 품에 안겨 생활고를 해결했다 해도 자기는 괜찮다고. 아니 지켜주지 못해 너무 미안해서 남은 생애 동안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하며 살 거라고. 아마 그 순간은 진실이었으리라 믿어요.
그는 생각 밖에 참 아는 게 많은 사람이었죠. 시칠리아의 중세도시 에리체에서의 밤, 유럽식의 고풍스러운 돌바닥이 흐린 불빛 사이로 신비롭게 빛나던 밤, 그 초현실주의 풍경 속에서 남편은 사랑한다고 다짐하듯 말했어요. 남편과의 여행이 그리 행복하지 않으면서 왠지 한기를 느끼기 시작했던 건, 팔레르모의 카타콤베 시체 박물관에 갔을 때부터였어요. 그곳은 몇백 년 전에 발굴된 공동묘지에서 썩지 않고 그대로 남은 수 없는 시신들이 전시된 곳으로, 세계의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였어요. 벽에 빼곡하게 걸려있는 박제된 시신들의 모습은 편안한 얼굴, 고통스러운 얼굴, 고개를 숙이거나 지친 얼굴 등, 뼈만 남은 시신들의 표정은 산사람들이 그렇듯 같은 표정이 하나도 없었어요. 수많은 시신들의 표정들을 스쳐 지나며 모골이 송연해지다가 어느새 그 풍경에 익숙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그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신은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죽은 아기의 것이었어요. 그 아버지의 극진한 열망으로 갖은 묘약을 다 써서, 죽은 그 순간 그대로 보존된 아기의 시신은 볼마저 발그레하게 보였어요. 참 믿을 수 없는 게 세상사죠. 석 달 된 아기는 그렇게 관광객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신으로 남아있어요. 한 치의 간격도 없이 다닥다닥 벽에 걸려, 편안히 누워 죽지도 못하는 시신들을 보며, 저는 죽음이란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족의 유골을 애틋해 하는 것도 잠시 잠깐, 모든 주검은 무관심하게 기억 속에서 잊히죠. 그를 둘러싼 동시대 사람들이 다 가고 나면, 그저 사라지거나 박제가 되어 이렇게 박물관에 다닥다닥 걸려 구경거리가 되거나 하는 거죠. 남편은 그곳에 들어가자마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이런 걸 전시하는 사람들은 미친 사람들이라고 욕을 퍼부었어요. 사실 그 말이 틀리는 것도 아니죠. 토할 것 같다며 먼저 나가버린 남편을 잊은 채 저는 하염없이 시신들을 구경했어요. 결국 우리 모두가 죽은 뒤엔 저렇게 옷걸이처럼 걸려있는 시신 말고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확신을 그때 갖게 되었을지도 몰라요. 그곳에 갔던 날 밤, 남편은 밤새 토했어요. 그때는 몰랐지만 분명 남편은 여러 가지 면에서 환자였어요. 나는 남편이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 좋았어요. 아니 어쩌면 열정밖에 없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의 몇 퍼센트나 우리가 알고 있을지 자신은 없어요. 그가 내가 누구인지 모르듯 나도 그가 누구인질 몰라요. 하지만 서로 잘 만난 사람들은 상대가 누군지 다는 몰라도 비교적 가깝게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 사람은 이런 짓은 할 수 없는 사람이라든지, 이럴 때는 이렇게 할 거라든지, 오차범위가 비교적 작은 그런 사람을 만나는 건 행운이죠.
어느 아침 눈을 뜨자 밤새 끄지 않고 켜둔 라디오에서 이런 목소리가 흘러나왔어요.
“만약 그런 게 가능하다면, 평생을 지키고 싶은 열정이라면, 머뭇거리면서도 결코 그 길 위에서 내려오지 않는 은은한 열정을 권유한다. 오래 걸으려면 천천히 걸어야 하는 것처럼.”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눈이 번쩍 뜨이고 귀가 멀리 열렸어요. 그리고 제 마음속엔 이런 생각들이 계속 출렁거렸어요. 만일 그 긴 기찻길에서 내려오지 않는 은은한 열정이 가능하다면, 평생에 걸려서 끝나지 않을 사랑이 가능하다면, 그런 사랑을, 아니 그게 굳이 사랑이 아니어도 좋은 사랑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다고. 그리고 그 사람이 당신일지도 모르겠다고.
─ 서울에서 당신의 친구, 박경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