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박경아, 조곤조곤 들려주는 지나간 당신의 삶 이야기가 문득 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해줍니다. 이렇게 멀리서 주제넘지만, 그녀가 불행하다면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그녀의 수호천사가 되어주고 싶다, 그런 기분, 참 오래간만에 느껴보네요. 그중에서도 전생의 꿈처럼 느껴지던 그만둔 그림을 다시 시작했다는 얘기, 왜 그 말에 내 가슴이 벅차오를까요? 믿을 수 없겠지만, 난 생각도 할 수 없는 아주 낯선 곳에서 당신의 그림을 본 적이 있어요.
소호의 작은 화랑에서 벼락을 맞은 듯 한참을 홀려 그 앞에 서 있던 그 그림, 지금은 그 어디를 가든 내 머리맡에서 나를 보호해주는 그 그림, 그 그림의 분위기와 너무도 닮은 그 그림이 누가 그린 그림인지 난 단번에 알아보았어요. 우연히 맨해튼 소호에서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보고 난 몇 해 뒤, 어쩌면 그 세월의 간격은 먼지도 모르겠네요. 적십자 소속 의사로 이라크에 파견되어 바그다드로 가는 중,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팔미라를 거쳐 이라크의 바그다드까지 이어진 시리아 사막의 한가운데 정말 거짓말처럼, 진짜 바그다드와는 700㎞나 떨어진 엉뚱한 곳에 실제로 바그다드 카페가 있었어요. 너무 신기해서 목이라도 축일 겸 들어서자마자 당신이 그린 것과 똑같이 닮은, 아니 당신의 그림이 걸려있었죠.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사막 한가운데 떡하니 놓여있는 영화 속의 바그다드 카페가 실제인지 그곳이 실제인지 헛갈렸어요. 그곳에는 시리아 지도가 그려진 양가죽에 알레포, 팔미라, 하마, 홈스 등의 지명과 바그다드 카페의 지명까지 그려져 있어 마치 꿈을 꾸는 듯했어요. 그곳에서는 커피와 차와 지도, 낙타 인형 같은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어요. 유목민인 베두인의 이국적인 모습을 한 주인이 뜨거운 커피를 갖다 주며 시리아 말로 환영한다고 말했어요. 카페는 둥근 계란형의 흙집에다 지붕에 천막을 치고 있는 그런 형상이었죠. 아주 짧은 순간 나는 순간이동을 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로스앤젤레스와 라스베이거스를 잇는 모하비 사막과 시리아 사막 두 군데를 순간 이동하는 기분은 근사했지만 쓸쓸했어요. 모하비 사막 한가운데 솟아오른 환상의 관광도시 라스베이거스를 가보셨나요? 많은 사람들이 도박의 도시로만 알고 있는 그곳은 꿈속의 동화 같은 도시죠. 하룻밤에도 수많은 돈을 잃고 따기도 하는 도박사들의 잭팟 게임이 아니라도, 하루 밤새도록 구경만 해도 밑도 끝도 없이 숨이 막히는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사막 도시, 라스베이거스, 호텔마다 눈부신 무대 장식으로 사람들을 안데르센의 동화 속으로 유인하는 곳, 아- 나는 당신의 어깨를 감싸 안고 라스베이거스 밤거리를 걷는 꿈을 꿔 봐요.
영화 속의 쓸쓸한 바그다드 카페 근처에 그렇게 화려한 도시 라스베이거스가 존재한다는 걸 안 가본 사람은 상상할 수 없죠. 엉뚱하게도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처럼 시리아 사막에 솟아오른 환상의 도시 팔미라로 가는 사막 한가운데 사막의 쉼표, ‘바그다드 카페 66’이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 걸 보니 반가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당신의 그림을 처음 보고 그 영화를 처음 보았던 그 날 이후, 바그다드 카페는 내 영혼의 쉼표 같은 곳이었으니까.
내 삶의 한가운데 밑도 끝도 없는 사막의 쉼표라고 해두죠. 그곳에 바로 당신의 그림이 걸려있었다는 말을 아주 오래전부터, 당신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던 아득한 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전하고 싶었는데, 아- 당신의 얼굴을 단 한 번 밖에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가끔 나를 슬프게 해요. 언젠가 적십자 소속 친한 한국인 외과 의사에게 물은 적이 있었죠.
박경아라는 화가를 아느냐고. 그는 모른다며 찾아봐 줄 수 있다고 말했어요. 한 번 밖에 본 적 없는 사람이 잊히지 않는 수도 있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저 웃더군요. 내 방에 붙어있는 당신의 그림을 보더니, 한 번 밖에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사이가 아니라 매일 보는 사이라 말해주었답니다. 그 말이 위로가 될 만큼, 정말 많이 외로웠어요. 다시 한 번 말하고 싶어요. 그곳에 바로 당신의 그림이 걸려있었어요. 박경아,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당신의 그림이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그 밝은 감성의 결이 그대로 묻어나는 당신의 그림을 내가 몰라볼까요? 나는 그 그림을 사고 싶었어요. 얼마냐고 물으니 파는 그림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수년 동안 걸려있는 그림이라 말하더군요. 어느 날 일본이나 중국 사람으로 보이는 손님 하나가 이곳이 이 그림을 걸기 딱 어울리는 곳이라며 벽에 붙여놓고는 홀연히 사라졌다고 했어요. 그때만 해도 한국인을 잘 모를 때니까 어쩌면 한국 사람이었는지도 모르죠. 그렇게 매일 그림을 바라보며 왠지 그 그림이 그 장소를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줄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도요. 그 그림을 한없이 바라보며 앉아있었어요. 사막의 모래바람이 코끝을 간질이던 건조하고 뜨겁던 어느 해 여름, 나는 당신의 그림을 바라보며 스무 살 시절 좋아하던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이런 시를 떠올렸어요.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이 없어내 꿈을 그대 발밑에 깔았으니사뿐히 밟으소서.그대가 밟는 것은 내 꿈이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