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나게 그리운 당신, 당신이 나를 알아볼까요?
주체사상탑 앞에서 만나자는 쪽지 한 장 쥐여주고 뒤돌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던 당신의 뒷모습, 그 뒤 제 인생이 어떻게 꼬여갔는지 당신은 아무 것도 모르시죠. 왜 제가 약속을 지키지 못했는지, 체, 모르는 게 좋아요.
지붕들이 고색창연한 쿠바의 도시들, 오래된 건물 꼭대기 카페에 앉아 맥주 한잔 마시며 아바나 시내를 내려다보네요. 마치 대동강과 주체사상탑이 내려다보이는 상상에 빠진 채, 저는 한 무리의 한국 사람들이 앉아있는 가운데 당신이 앉아 있는 걸 보았어요. 머리가 많이 빠져 대머리가 되고 살이 좀 찐 듯한 당신은 나이 들었지만, 목소리는 하나도 변하지 않아서 먼 거리에서도 그 목소리만 듣고도 당신인줄 알겠네요. 체. 왜 사람의 얼굴은 늙어도 목소리는 늙지 않는 건지 생각하면 정말 신기해요. 그렇게 우리들의 사랑도 늙지 않기를.
당신이 북조선 말투가 섞인 한국말로 ‘여러분’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잠시 제 눈과 귀를 의심했지만 내 사랑 체 게바라, 당신이 한국인 여행객들을 향해 가이드를 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내 사랑, 체, 나 하나의 사랑도 참 옛날 일이네요. 저는 문득 뒤돌아 가던 길을 가려해요. 어디로 갈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그냥 발길 닫는 데로 가려해요.
우리들의 이루지 못한 슬픈 사랑도, 이데올로기에 대한 허무한 신념도 이제는 안녕, 그냥 사람 좋아 보이는 인자한 할머니 할아버지로 늙어가기로 해요. 어느 날 우연히 한 번 더 운 좋게 어디에선가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꼭 고백할 거예요.
당신을 많이 사랑했다고.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