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까지 그분처럼 바라보고, 미소 짓고, 앉아 있고, 걷는 사람을 아무도 보지 못하였어.’
싯다르타는 생각하였다.
(…) ‘한 인간을, 그 사람 앞에 서면 시선을 떨구지 않을 수 없는 유일한 인간을 보았어. 앞으로는 다른 어느 누구 앞에서도 나의 시선을 떨구지 않아야지, 다른 어느 누구 앞에서도 말이야. 그의 가르침도 나를 유혹하지 못하였으므로, 어떤 가르침도 나를 유혹하지는 못할 거야.’
- 헤르만 헤세, 박병덕 옮김, <싯다르타>, 민음사, 57쪽.
싯다르타는 부처와의 만남을 통해 너무 커다란 것을 잃어버린다. 그것은 평생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소중한 벗 고빈다였다. 고빈다는 이제 싯다르타가 아니라 부처의 제자로 남길 바란다. 고빈다는 살아있는 부처를 통해 진정한 마음의 안식을 얻은 것이다. 그런데 싯다르타는 누군가의 가르침에 귀의함으로써 만족을 얻을 수 없었다. 부처가 뭔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부처가 최고의 가르침을 전해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더욱 그 가르침의 그늘 아래 투항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싯다르타는 남이 깨달은 지혜가 아니라 내가 깨달은 지혜를 향해 전력투구하기를 원했다. 그 과정에서 고빈다는 부처의 곁에 남기로 결정하고, 고빈다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곁에 없을 것임을 알자 자신에게 고빈다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알게 된다. 가족도 사회적 지위도 재산도 주변 사람들의 평판도, 모두 아낌없이 버린 싯다르타조차도 고빈다만은, 평생의 우정만은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떤 강렬한 상실감을 통해서만 깨달아지는 진실이 있다. 칼 융은 어린 시절 작문시간에 그런 뼈아픈 상실감을 경험한다. 스스로의 특이함을 어떻게든 숨기고 싶었던 소년 융은 선생님께 주목을 받을까봐 평소에는 평균점수로 슬그머니 통과하는 식으로 작문시간을 무사히 넘기곤 했다. 그런데 한 번은 아주 흥미로운 작문 주제를 받게 되었다. 그는 처음으로 열심히 글을 써갔다. 최고점수를 받으면 너무 주목을 받을 테니 2등 정도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우수학생’으로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융이 보기엔 너무나 형편없고 유치한 작문들이 1, 2, 3등을 차지하는 동안 그는 기이한 흥분에 휩싸였다. 이럴 수가. 내 작문이 저 형편없는 글들보다 못하단 말인가. 심한 모멸감을 느낄 때쯤, 작문 선생님은 융의 작문을 가리켰다. 그리고 황당하게도 융의 죄를 집중 추궁한다. 너의 작문은 훌륭하다. 그런데 이 작문은 거짓이다. 도대체 이것을 어디서 베꼈느냐? 당장 자백하라. 이렇게 말이다. 융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저항하지만, 선생님은 ‘너는 한 번도 이렇게 잘 쓴 적이 없다’면서 융을 추궁한다. 어디서 베꼈는지 알아내기만 하면, 당장 너를 퇴학시키겠다면서 말이다. 그때 융은 엄청난 상실감과 분노,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증오를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인격이 ‘제 1의 인격’과 ‘제 2의 인격’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그토록 어린 시절에 벌써 그는 미래의 무의식 연구의 단초를 자신의 체험을 통해 마련한 것이다.
소년의 마음 깊숙한 곳에 ‘나보다 더 나다운 제2의 인격’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제 1의인격이 우리가 항상 함께하는 일상적인 자아라면, 제 2의 인격은 우리가 어렴풋이 인지하는 마음 깊숙한 곳의 나, 차마 표현할 수는 없지만 더욱 진정한 나 자신에 가깝다고 느끼는 나이기도 하다. 융은 자서전 <기억, 꿈, 사상>에서 고백한다. 그 어린 시절에도 “나 자신 이외에 다른 무언가가 거기 있다는 의미심장한 느낌이 늘 있었다”고. “그것은 마치 별들과 끝없는 우주의 장엄한 세계의 숨결이 나에게 와 닿는 것 같았으며, 또한 오래 전에 죽었으나 아직도 영겁의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사람의 영혼이 보이지 않게 몰래 방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했다.”(카를 구스타프 융, A. 아페 편집, 조성기 옮김, <기억, 꿈, 사상>, 김영사, 2008, 128쪽.) 작문 시간의 사건을 통해 융은 뭔가 커다란 것을 잃었으나, 그보다 더 큰 것을 얻었다. 잃은 것은 선생님의 신뢰와 정상적인 학교생활이었고, 얻은 것은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호기심이었다. 그 깨달음은 그의 삶에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어준다. 싯다르타도 마찬가지였다. 고빈다라는 최고의 벗을 잃어버린 대신에, 그는 더 커다란 것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누구의 우정과 신뢰에도 기대지 않은, 오직 홀로인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었다.
‘그 부처가 나한테서 무언가를 빼앗아갔어’
싯다르타는 생각하였다.
‘그 분은 나한테서 무언가를 빼앗아갔지만, 빼앗아간 것 이상을 나에게 선사해 주셨어. 그 분은 나한테서 나의 친구를 빼앗아갔다. 그 친구는 예전에는 나를 믿었지만 지금은 그분을 믿으며, 예전에는 나의 그림자였지만 지금은 고타마의 그림자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분은 나에게 싯다르타를, 나 자신을 선사해주셨다.
- 헤르만 헤세, 박병덕 옮김, <싯다르타>, 민음사, 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