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예술작품은 모두 미소처럼 알다가도 모를 위태로운 양면성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엔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충동적인 것과 순수한 정신성이 공존했다. 하지만 언젠가 어머니 이브의 상을 형상화하는데 성공한다면 그것은 이러한 이중성을 무엇보다 잘 드러낼 것이다. 골드문트에게는 예술과 예술가의 존재야말로 자신의 가장 깊은 갈등이 화해할 가능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 헤르만 헤세, 임홍배 옮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민음사, 266쪽.
인간의 본능적인 사악함을 이해한다는 것은 예술가의 창조적 영감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골드문트의 경우 방랑생활을 통해 터득한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 대한 이해는 궁극적으로 그의 예술세계를 풍요롭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행위는 끝나지 않는 죄의식의 기원이 되었지만, 어떤 악의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믿었던 자신의 무의식 어딘가에서 솟아나온 뜻밖의 악행은 뼈아픈 깨달음을 준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그 무엇에만 매혹된다고 믿었던 자신의 해맑은 천성 어딘가에도 어두운 욕망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은 융이 말한 인간 욕망의 대극, 즉 대립적인 본성의 양면성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했다. 사랑의 쾌락을 느끼는 여성의 표정과 출산의 고통을 느끼는 여성의 표정이 같다는 것에서 쾌락과 고통이 동전의 양면처럼 결국 하나임을 깨달은 골드문트. 그는 여성의 표정 뿐 아니라 위대한 예술작품 또한 저마다 위태로운 양면성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는다.
인간이 이런 짓들을 저질렀다. 나도 한 사람의 인간이다. 인간 본성을 갖고 있는 인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도 죄의식을 느끼고 있으며, 나의 내면에 그런 짓들을 언제든 다시 저지를 수 있는 능력과 성향이 있다. 법학적으로 말하면, 비록 우리가 종범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언제나 잠재적 범죄자들이다. 다만 비인간적인 난투에 끌려들어갈 적절한 기회를 갖지 않았을 뿐이다.
- 융, <무엇이 개인을 이렇게 만드는가>(부글북스, 2013) 중에서.
융은 <무엇이 개인을 이렇게 만드는가>에서 그 누구도 악에 대한 상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악에 대한 상상은 악행과 달리 통제할 수가 없다. 그런데 악에 대한 상상에도 양면성이 있다. 악에 대한 상상은 악을 향한 지름길이기도 하지만, 악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도 함께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노에 사로잡혔을 때 복수나 악행을 상상하다가도 그 상상 속의 이미지가 지닌 끔찍함에 진저리치며 악행을 철회한다. 인간의 사악함을 다룬 수많은 예술작품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잔혹한 학살과 전쟁을 그려낸 피카소나 고야의 그림을 보며 우리는 ‘악의 충동’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악으로부터 인간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는 절실한 필요를 느낀다. 악에 대한 상상은 그 자체로 매혹적인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악에 대한 상상을 ‘악행을 향한 통로’가 아니라 ‘인간의 보이지 않는 악의를 통찰하는 힘’으로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지성의 힘이다. 골드문트는 이제 악에 대한 상상을 극복함으로써 오히려 선에 대한 굳건한 의지를 다지는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인간의 양면성을 작품 속에 녹여낸 그의 눈부신 성과가 바로 나르치스를 ‘요한’의 모델로 형상화해낸 첫 번째 작품이었다. 그는 나르치스의 실물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토록 눈물겹게 그리워하던 나르치스의 모습을 요한으로 형상화함으로써 두 사람의 영혼이 결국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골드문트는 일어서서 친구 나르치스를 바라보았다. 소년시절 그를 이끌어주었던 친구는 무가에 귀를 기울이듯 얼굴을 쳐들고 있었고, 준수한 용모에 그리스도가 아끼는 제자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이제 막 꽃봉오리처럼 피어날 듯한 미소에는 차분한 독실함과 외경심이 나타나 있었다. 경건하고 이지적인 아름다운 얼굴, 떠다닐 듯 호리호리한 모습, 우아하고도 경건하게 들어올린 갸름한 손에는 젊음과 내면적인 음악성이 넘쳐흘렀지만, 그러면서도 고통과 죽음의 그늘까지도 모르지 않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절망과 무질서와 거부를 모르는 모습이었다. 이 고귀한 용모 뒤에 감춰진 영혼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순수하게 조율되어 있었고, 그 어떤 불협화음에도 시달리지 않았다.
- 헤르만 헤세, 임홍배 옮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민음사, 2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