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 말할 수 없는 무엇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것은 뭔가 끔찍하면서도 소중한 것, 깊이 가라앉아 있으면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것, 혀 끝에 와닿는 입맛이나 소중한 반지 같은 그 어떤 체험이었다. 2년이 채 못 되어 그는 집 없이 떠도는 생활의 애환을 거의 밑바닥까지 알게 되었다. 홀로 있다는 것, 자유롭다는 것, 숲과 짐승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것, 방탕하고 불성실한 사랑, 죽을 것만 같은 쓰디쓴 궁핍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다. (…) 며칠씩 죽음의 불안에 시달리고 죽음 언저리까지 가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죽음에 맞서 저항했던 것이야말로 가장 강렬하고 기묘한 체험이었다. 자기 자신이 왜소하고 비참하며 위협 당하고 있따는 것을 알며서도 막상 죽음에 맞서 최후의 각오로 절망적인 싸움을 벌일 때면 생명의 아름답고도 놀라운 힘과 끈질김이 몸속에서 느껴졌던 것이다. 그 체험은 여운을 남겼다. 그 체험은 쾌락의 몸짓이나 표정과 마찬가지로 그의 가슴 속에 새겨졌다.
- 헤르만 헤세, 임홍배 옮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민음사, 221~222쪽.
진정한 나다움의 실체를 깨닫는 것. 그것이 바로 개성화라면, 개성화의 절정은 자기 안에 잠자고 있는 불가해한 힘을 깨닫는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줄도 몰랐던 엄청난 힘의 존재를 깨닫는 일. 그리하여 누구도 함부로 나를 상처주거나 내 영혼을 파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닫는 일. 그 깨달음의 순간 개성화의 과정은 최고의 클라이막스를 맞는다. 자기 안의 엄청난 힘의 존재를 깨달으면 그 힘을 어떻게 어디에 무엇을 위해 써야할 지를 고민하게 된다. 힘의 존재를 깨닫는 것만으로 개성화가 완성될 수는 없다. 내가 지닌 힘을 어디에 누구를 위해 어떤 방법으로 쓰느냐에 따라 그 무의식의 놀라운 힘은 무서운 독재자나 기상천외한 사기꾼을 만들 수도 있고, 위대한 예술가나 지혜로운 철학자를 만들 수도 있다. 무의식이 지닌 힘의 세기보다 중요한 것은 이 힘을 진정 어디에 쓸지를 결정할 수 있는 지혜와 통찰이다.
골드문트는 불의의 사고로 사람을 죽이고 난 후, 어딘지도 알 수 없는 황야를 미친 듯이 헤매는 과정에서 ‘자기 안의 힘’을 깨닫는다. 죄책감 때문에 죽을 것만 같은 시간을 지나, 정작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상황에 처하자 골드문트는 온 힘을 다해 ‘살고 싶어하는 자신’의 무의식과 만난다. ‘차라리 죽고 싶다’는 것은 의식의 목소리였고,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라는 안간힘은 무의식의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살고 싶다’는 단순명료하고도 강력한 무의식의 목소리가 골드문트의 잠재력을 폭발시킨다. 살인적인 추위와 배고픔, ‘나는 이 세상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는 절망감. 그 모든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자 골드문트는 비로소 자신의 놀라운 힘을 발견한다. 골드문트는 부모보다도 자신에게 더 큰 깨달음을 준 사람, 이 세상 누구보다도 자신이 의지하던 나르치스를 생각하며 고통을 견딘다. 그러나 그 견딤은 이전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는 이제 나르치스를 ‘기댈 곳’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임을 인정하기 시작한다. 나르치스를 ‘기대어 울 수 있는 어깨’가 아니라, 똑같은 힘으로 맞서고 있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로서, 영혼의 파트너로서 인정하게 된 것이다.
골드문트는 자신이 지금 견디고 있는 방랑의 고통이 나르치스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또 다른 세계임을 깨닫는다. 나르치스에 대한 우월감이 아니라 ‘너와 나의 다름’을 투명하게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수도사는 나의 사명이 아니다’라는 깨달음에서 시작된 목적 없는 여행을 뛰어넘어, 이제는 ‘내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가’를 긍정적으로 고민하는 단계로 접어든다. ‘아니오, 그건 싫어요!’가 아니라 ‘예, 바로 그것을 제가 지금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싶은, 자기 운명의 부름을 찾게 된 것이다. 골드문트는 자신이 늘 ‘아름다움’에 매혹되었던 사실을 깨닫는다. 예전처럼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관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에 직접 참여하고 싶은 강렬한 열망, 아름다움 자체를 창조하고 싶은 엄청난 목마름을 느끼게 된다.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의 따스함과 사랑의 뜨거움을 표현할 수 있는, 진정한 예술가가 되고 싶어하는 자신의 잠재된 ‘힘’을 깨닫는 것이다.
그는 이 농장에서 저 농장으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떠돌면서 뭇 여자들을 편력하였다. 서늘한 저녁때면 어느 집 창문 아래에 답답하고 슬픈 심정으로 쪼그리고 앉아 있었던 적도 여러 날 되었다. 그럴 때면 이 지상에서 행복과 고향과 평화를 안겨줄지도 모르는 모든 것이 등불 뒤쪽에서 타올랐으며, 창문에 붉게 비치는 그 모든 것은 다정스러우면서도 골드문트에겐 다다를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 헤르만 헤세, 임홍배 옮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민음사, 2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