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생활을 새로 시작한 처음 얼마동안 골드문트는 되찾은 자유를 게걸스럽게 만끽하면서 정처 없이 불규칙하게 살아가는 떠돌이 생활을 다시 익혀야만 했다. 누구한테도 순종하지 않고 오직 날씨와 계절에만 의존하며, 앞날에 어떤 목표도 없이 하늘을 지붕 삼아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그때그때 닥치는 온갖 우발적 상황에 자신을 내맡긴 채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들은 순진하고도 용감한, 가련하고도 굳센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그들은 낙원에서 추방된 아담의 후예들이며, 순진무구한 동물들의 형제인 것이다. (…) 거기엔 그 어떤 역사도 인위적 노력도 없으며 집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나 절망적으로 매달리는 발전과 진보라는 기이한 우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 헤르만 헤세, 임홍배 옮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민음사, 299~300쪽.
골드문트는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 스승을 떠나지만, ‘그저 방랑이 좋다’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대책이 없었다. 뭔가 대책이 있다는 것 자체가 정착민적 사고방식인지도 모른다. 헤르만 헤세는 말한다. 뭔가를 소유하면서 정착해있는 사람에게 방랑자는 적대자라고. 뭔가를 소유하면서 정착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방랑자를 미워하고 경멸하며 두려워한다고. 방랑자는 생의 덧없음을 상기시킨다. 무언가를 가진다는 것도, 돈과 명예를 위해 애쓴다는 것도, 일상의 온갖 대소사를 관리하는 것도. 모두가 덧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일깨우는 것이다. 방랑자는 모든 존재의 덧없음을, 생명의 무상성을 온몸으로 체현하는 사람들이다. 모든 것은 언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불편한 진실을 상기시키는 존재. 그런 방랑자들을 정착민들은, 특히 남성들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골드문트는 이런 ‘방랑자를 향한 적대감’을 한 마을에서 제대로 느끼게 된다. 이 마을 사람들은 골드문트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돌팔매질을 하고 온갖 위협과 욕설을 서슴지 않는다. 무슨 일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던 골드문트는 마을을 돌아보다가 온 가족이 흑사병으로 처참하게 죽어 있는 광경을 목도한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와 분노 때문에 사람들은 낯선 방랑자에게 마치 화풀이를 하듯 강한 적대감을 표시했던 것이다. 혹시 낯선 이방인이 전염병을 옮길 새라 사람들은 더욱 강한 반감을 보인다. 골드문트는 마을 이곳저곳을 조용히 탐색하다가 자신에게 적대감을 보이지 않는 유일한 처녀, 레네를 발견한다. 유혹의 화신 골드문트는 레네를 꾀어내어 방랑을 부추긴다. 언제 전염병에 걸릴지, 언제 죽게 될지, 공포에 휩싸여 살아가는 것보다는 나와 함께 길을 떠나 자유롭게 살아보지 않겠냐고. 레네는 흔쾌히 골드문트의 유혹에 몸을 맡기고 두 사람은 함께 살림을 차린다. 골드문트로서는 단순한 연애를 넘어서 살림을 차려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정착민에 가까운 삶을 경험하면서 잊고 있던 예술의 열정을 되살려보려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다. 레네가 임신 징후를 보이자 골드문트는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한 번의 유혹은 유희의 대상이 될 수 있었지만 여자와 함께 산다는 것은 그녀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임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골드문트는 일찍이 이러한 부담감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만약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의 자유로운 방랑은 물론 예술가로서의 삶마저 위협당할 수밖에 없었다. 극심한 압박감에 시달리던 골드문트가 이 소꿉놀이 같은 정착민 생활을 접어야하겠다는 생각을 하던 즈음, 그의 삶을 뒤흔드는 커다란 사건이 일어난다.
괴한이 레네를 겁탈하려는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하는 레네를 바라보면서 골드문트는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다. “골드문트는 펄쩍 내달려갔다. 그의 마음속에 잠복해있던 짜증과 불안과 슬픔이 낯선 불한당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폭발했다. 낯선 사내가 레네를 완전히 땅바닥에 뉘려던 참에 골드문트는 사내를 덮쳤다.” 골드문트는 미친 듯이 괴한을 후려쳐서 레네로부터 떼어놓은 후, 그것도 모자라 그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잔인한 쾌감을 느끼며 목을 조르고 만다. 이미 반쯤은 숨이 넘어간 사내를 골드문트는 계속 괴롭힌다. “골드문트는 사내의 머리를 모서리 진 바위에다 두 번 세 번 내리쳤다. 그러고는 목덜미가 부러진 몸뚱어리를 내던졌지만 아직도 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골드문트는 또 한 명의 사람을 살해한 것이다. 그것은 레네에 대한 사랑 때문만은 아니었다. 괴한의 강간과 폭력에 대한 증오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것은 순수한 악의 충동이었다. 레네는 골드문트가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전혀 말리지 않고 황홀한 표정으로 골드문트를 자랑스럽게 바라보기까지 한다. 레네의 황홀경도 ‘내 남자가 악당을 퇴치하는 멋진 모습’에 대한 자부심만이 아니었다. 순수한 악의 충동에서 두 사람은 완전한 일치에 도달한 것이다. 골드문트는 철없는 말괄량이인 줄로만 알았던 레네에게서 도저히 그런 표정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잔인하지만, 레네의 그 얼굴은 그가 진정으로 표현하고 싶던 예술의 오브제였다. 순수한 악의 충동에 완전히 몸을 맡긴, 이성 자체가 박탈된 황홀경의 표정. 그것은 예술혼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던 골드문트가 마침내 찾아낸 뮤즈의 얼굴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죄가 탄생하는 순간과 최고의 예술적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이 불행하게도 일치해버린 것이다.
죽은 녀석을 내던질 때 레네가 그를 바라보던 시선이 뇌리에 박혀 있었다. 그것은 기묘한 시선이었다. 그는 그 시선을 결코 잊지 못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경악과 황홀감이 뒤섞여 치켜뜬 눈에서 자부심과 승리감이 빛났고, 복수와 살인에 공감하는 깊은 열정적 쾌감의 빛이 떠올랐다. 여자의 얼굴에서 그런 표정은 일찍이 본 적이 없었고, 여자가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던 것이다. (…) 그 시선은 농부의 딸 같은 그녀의 얼굴을 크고 아름다우면서도 두려워보이게 만들었다.
- 헤르만 헤세, 임홍배 옮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민음사, 3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