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우리는 가까워질 수 없어. 마치 해와 달, 바다와 육지가 가까워질 수 없듯이 말이야. 이봐, 우리 두 사람은 해와 달, 바다와 육지처럼 떨어져 있는 거야. 우리의 목표는 상대방의 세계로 넘어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식하는 거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존중해야 한단 말이야. 그렇게 해서 서로가 대립하면서도 보완하는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지. (…) 너는 어린 시절을 잃어버렸지만, 네 영혼의 깊은 바닥에는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갈망이 꿈틀대고 있지. 너는 그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 영혼의 소리를 듣게 될 거야.
- 헤르만 헤세, 임홍배 옮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민음사, 70~73쪽.
누군가 나의 단점을 정확히 지적할 때, 내가 말하지 않은 나의 상처까지도 예리하게 꿰뚫어 볼 때. 입 밖으로 표현한 적 없던 그 모든 상처들을 한꺼번에 들킨 느낌이 들 때.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경험이 있는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느낌이 들 때, 그 첫 느낌은 반가움보다 공포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마치 영혼을 찍는 초고화질 카메라라도 가진 것처럼, 내 마음 구석구석을 엿보는 사람이 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일단 경계하게 된다. 그 사람은 내 상처를 치유하고, 내 안의 가장 밝은 빛을 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사람인데도, 우리는 그런 사람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저항Widerstand’이라고 한다. 무엇이 진정한 치료의 방향인지 환자 스스로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그 치료의 방향에 역행하는 모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정도 상담 치료가 무르익었을 때, 환자들이 치료에 오히려 반대되는 퇴행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일부러 치료 시간에 지각을 하거나, 치료시간에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든지, 의사가 중요한 질문을 해도 오랜 시간 침묵을 유지한다든가, 일부러 의사를 시험하듯 거짓말을 꾸며대기도 한다. 무엇이 내 ‘무의식과의 진정한 만남’을 위해 필요한지를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내 무의식과의 진정한 대면을 회피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만남, 그것은 위대한 타인과의 만남이 아니라 그토록 숨기고 싶었던 나 자신과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나르치스가 골드문트에게 ‘너와 나의 운명은 전혀 다르다’고 선언하는 순간도 그렇다.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와 자신이 결코 ‘비슷한 운명’이 아님을 직감한다. 자신은 학문의 길, 종교의 길을 걸어야 할 사람이지만, 골드문트는 결코 아니었다. 나르치스는 자신의 적성과 전혀 맞지 않는 수도사의 길을 택하고, 그 길을 어떻게 해서든지 완수하려는 골드문트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네가 늘 골드문트다운 것은 아냐. 제발 네가 순수하게 골드문트였으면 좋겠어. 너는 학자도 아니고 수도사도 아니란 말이야.” “문제는 네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나한테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이야.”
골드문트는 당혹스럽다. 자신은 하느님을 향한 길, 믿음을 향한 길을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의식적으로는’ 그랬다. 아버지의 권유로 수도사의 길에 접어들긴 했지만, 억지로 끌려온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르치스는 끊임없이 골드문트에게 ‘넌 나와 다른 길을 가야 해’라는 암시를 주고, 이제는 노골적으로 ‘너의 길은 이 길이 아니야’라고 단언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르치스는 결정적인 화살을 날린다. 넌 너의 어린 시절을 잃어버렸다고. 네 삶에는 뭔가 커다란 공백이 있다고. 그게 뭔진 나도 알 수 없지만, 언젠가 네 자신이 기억해 낼 거라고. 골드문트는 화살에 맞은 것처럼 움찔한다. 끔찍한 통증과 함께, 자기 인생의 치명적인 미스테리를 깨닫는 것이다.
너 같은 기질의 사람들, 그러니까 강렬하고도 섬세한 감성을 지녀서 영혼으로 느낄 줄 아는 몽상가나 시인들, 혹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우리 같은 정신적 인간보다는 거의 예외 없이 더 우월한 존재라고 할 수 있지. 그런 사람들은 말하자면 모성의 풍요로움을 타고난 존재들이야. 그들의 삶은 충만해 있고, 사랑의 힘과 체험의 능력을 부여받은 존재들이지. 그 반면 우리 같은 정신적 인간들은 너 같은 사람들을 곧잘 이끌어가고 다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충만된 삶을 전혀 모르고 메마른 삶을 살게 마련이야. 과일의 단물처럼 넘쳐흐르는 삶의 풍요로움, 사랑의 정원과 예술의 땅은 바로 너희들의 것이지. 너희들의 고향이 대지라면 우리네의 고향은 이념이야. 너희들이 감각의 세계에 익사할 위험이 있다면 우리는 진공상태의 대기에서 질식할 위험에 처해 있지. 너는 예술가고 나는 사상가야.
- 헤르만 헤세, 임홍배 옮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민음사, 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