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는 마치 황금의 새처럼 너무나 멋진 소년이 자기한테로 날아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군계일학처럼 외로운 존재였던 나르치스는 골드문트가 모든 면에서 자기와 상반된 존재인 듯하면서도 닮은 데가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나르치스가 어두운 성격에 깡마른 체격이었다면 골드문트는 눈부시게 화사한 존재였다. 또 나르치스가 사변가요 분석가였다면 골드문트는 몽상가로서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영혼의 소유자로 보였다. 그렇지만 두 사람 사이의 그러한 대립적 측면보다는 공통점이 더 컸다. 둘은 훌륭한 인격자였고 두 사람이 보여주는 재능과 개성은 다른 생도들에 비해 두드러졌으며, 또 둘은 숙명적으로 그 어떤 특별한 경고를 받으며 태어난 존재였던 것이다. 나르치스는 이 어린 영혼에 뜨겁게 빠져들었으며 그의 성격과 운명을 금세 간파하였다.
- 헤르만 헤세, 임홍배 옮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민음사, 31쪽.
우리 영혼은 처음부터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당신의 삶이 객관적으로는 나와 거리가 멀지라도. 당신의 처지와 성격, 관심사와 미래, 그 어느 것에서도 공통점이나 유사점을 찾을 없을지라도, 당신의 운명에 내 운명이 완전히 속하는 느낌. 융은 바로 이렇게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향해 느끼는 불가해한 일체감을 ‘신비적 참여’라 불렀다.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을 향한 의식적인 교감일 수도 있고, 집단무의식의 차원에서 신화적 인물의 원형적 삶에 대한 우리 자신의 무한한 일체감일 수도 있다. 예컨대 남편은 부인의 꿈을 대신 꾸고, 부인은 남편의 꿈을 마치 자기의 꿈처럼 생생하게 체험하는 것이 바로 신비적 참여다. 그리하여 융은 부부 사이에 심리적 갈등이 있을 때, 반드시 두 사람 모두를 마치 ‘한 사람’처럼 상담해야 한다고 말한다. 때로는 상대방이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고 있을 때가 있다. 때로는 내가 저 사람 자신보다 그를 더 많이 사랑하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바로 그런 순간, 우리는 저마다 이 아름다운 ‘신비적 참여’의 주인공이 된다.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와의 첫 만남에서 이미 둘 사이의 ‘신비적 참여’를 경험한다. 두 사람의 운명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면서도 좀처럼 골드문트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나르치스는 고귀한 정신적 수련에 집중하는 자신의 소임을 조금이라도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엄청난 자제력과 숭고한 이상을 겸비한 나르치스는 골드문트를 바라만 보면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른다. “그는 소년이 자신과 극단적으로 상반된 성격이면서도 자신을 보완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할 수만 있다면 소년을 가까이에 두고서 그를 이끌어주고 깨우쳐주고 끌어올려서 활짝 꽃피게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나르치스를 주저하게 만들었던 것은 선생들과 수도사들이 생도들에게 ‘호감’을 느끼는 경우를 혐오스럽게 바라봐왔기 때문이었다. “그 자신도 나이 든 선생들의 탐욕스런 눈길이 자기한테 머무는 것을 역겹게 느껴온 터였고 그들이 마치 응석받이 아이 다루듯이 다정스레 구는 것을 내심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묵묵히 응대하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르치스는 이제야 자신을 향해 찬탄의 시선을 보내던 나이 든 선생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자신도 골드문트의 미소를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으며, 그 환한 금발을 다정하게 쓰다듬고 싶은 유혹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나르치스는 엄청난 자제력으로 그 유혹을 극복했다. 골드문트가 마리아브론 수도원의 생도가 된 지 일 년이 넘도록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에게 ‘특별한 애정’을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르치스에게 골드문트와의 우정이 아무리 유혹적이라 해도 그것은 ‘위험한 조짐’으로 다가왔으며, 자기 생활의 핵심이 그런 위태로운 우정 때문에 흐려지는 것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그렇게 거리를 두고 있던 중 골드문트에게 ‘사건’이 일어난다. 친구들의 유혹에 빠져 수도원 밖으로 ‘밤 마실’을 다녀온 사이, 처음으로 여성과 입맞춤을 경험한 것이다. 평생 수도원에서 진리를 탐구할 결심을 했던 골드문트에게 이 사건은 너무도 치명적인 트라우마였다. ‘다시 오라’고 속삭이던 아름다운 소녀의 목소리와 다정한 입맞춤의 유혹은 너무도 강렬한 것이어서 골드문트는 수업 시간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그 모습을 단박에 알아본 나르치스는 아무 말 없이 골드문트를 보살펴준다. 미주알고주알 사연을 물어보지도 않고, 어떤 ‘고해성사’도 요구하지 않은 채, 그저 울고 싶다면 마음껏 울어도 좋다고 말해준다. 자신의 고통을 아무 조건없이 완전히 받아주는 존재를 만나자 골드문트는 그제야 마음껏 울음을 터뜨린다. 솟구쳐 오르는 감정을 표출할 감정의 비상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골드문트의 삶에는 이제 뭔가 새로운 것이 보태어졌다. 그것은 새로운 충격, 새로운 체험이었다. 나르치스가 자기를 친구로서 받아들인 것이다. 나르치스는 그를 좋아했으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서고자 노력했다. 섬세하고 뛰어나고 명석한 나르치스, 날씬한 체격에 가벼운 냉소를 띠고 있는 나르치스! 그런데 골드문트는 나르치스 앞에서 한심한 꼴을 보이고 말았다. 그는 부끄러워 말을 더듬었고, 마침내는 그의 앞에서 훌쩍거리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희랍어나 철학, 정신적인 기개나 기품 있는 금욕 정신과 같이 더없이 고상한 무기를 가지고서 이 뛰어난 친구의 마음을 사로잡기는커녕 그의 앞에서 나약하고 비참하게 무너져내리고 말았던 것이다!
- 헤르만 헤세, 임홍배 옮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민음사, 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