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소년의 여윈 얼굴에 나타난 당혹스러운 미소 뒤에 물에 빠져 가라앉는 영혼이 아파하고 있으며, 그 영혼이 두려움과 절망에 차 죽어가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무도 아버지와 몇몇 교사의 야만적인 공명심과 학교가 이 연약한 존재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감수성이 가장 예민하고 가장 위태로운 소년 시절에 왜 한스는 날마다 밤늦게까지 공부해야 했을까? (…) 왜 하찮고 소모적인 명예욕을 추구하겠다는 공허하고 세속적인 이상을 그에게 심어주었을까? 왜 시험이 끝나고 힘들게 얻은 방학 때조차 푹 쉬게 하지 않았을까?
- 헤르만 헤세, 한미희 옮김, <수레바퀴 밑에서>, 문학동네, 2013,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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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는 지금까지 억압해왔던 모든 휴식과 놀이, 예술과 축제를 향한 뜨거운 열망을 하일너를 통해 보상받으려 한다. 자아가 진정으로 원하지만 차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충동이나 욕구를 외부로 돌려버리는 심리기제, 이것을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서는 ‘투사projection’라고 한다. 예컨대 평생 첫사랑의 쓰라림을 잊지 못하고, 만나는 여성마다 ‘첫사랑의 닮은 꼴, 또는 분신’으로 여기는 남성이 바로 이렇게 자신의 이상형을 현실의 여성에게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로버트 존슨은 ‘투사’의 위험성을 이렇게 지적한다. “남성은 대체로 내면세계의 이상을 상대 여성에게 투사하느라 바빠서 실제 자기와 함께 하는 여성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나 가치는 보지 못한다.”(로버트 존슨, 고혜경 옮김,
융은 투사를 신경증적 자기방어기제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투사야말로 무의식을 의식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는 것이다. 투사가 그저 내 욕망을 타인의 것으로 덮어씌우는 자기방어심리로 끝나지 않고, 투사를 통해 무의식의 간절한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을 때, 진정한 개성화는 시작될 수 있다. 오직 정해진 목표를 위해 자신을 엄격하게 단련하는 삶에만 자신을 던져온 한스는,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잃어버린 모든 삶을 우정을 통해 보상받으려 한다. 그러나 아무리 대단한 우정이라도 ‘내가 살지 못한 삶’을 친구에게 대신 짐 지울 수는 없다. 나에게 부족한 모든 것, 내가 살아내지 못한 모든 것을 타인을 통해 보상받을 수는 없다. 나만이 해결할 수 있는 삶의 화두가 있고, 그 화두를 풀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독 속에서 자신의 부끄러운 치부와 대면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급기야 하일너가 또 한 번 말썽을 부려 강제 퇴학을 당하게 되자 한스는 완전히 고립무원의 상태가 된다. 한스는 점점 학교생활에서 어떤 의미도 찾지 못하게 된다. 한스는 점점 심각한 신경쇠약 증상을 보이게 되고, 이를 걱정한 교사들은 한스를 의사에게 보여준다. 그러나 교사와 의사는 한통속이 되어 한스를 ‘제거해야 할 문제’로 바라보고 한스에게 절실히 필요한 진심어린 애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한스의 신경증은 그를 향해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던 것일까. 로버트 존슨은 이러한 신경증을 ‘무의식’이 ‘의식’에게 요구하는 일종의 ‘조공’으로 본다. “무의식으로부터 나오는 강력한 잠재력을 의식적으로 통합하길 거부할 때 무의식은 어떻게든 조공을 바치게 만드는데 조공의 형태는 신경증이나 강박적 모드, 우울증, 강박관념, 상상의 각종 질병, 마비성 우울증 등으로 나타난다.” (
그다음 날, 수학시간에 교사가 한스를 불러내 칠판에 기하학 도형을 그리고 증명을 하라고 시켰다. 한스는 앞으로 나갔지만 칠판 앞에서 갑자기 어질어질 현기증이 났다. 그는 분필과 자를 칠판에 대고 마구 휘젓다가 둘 다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것들을 주우려고 몸을 숙인 한스는 그만 바닥에 무릎을 꿇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 의사는 한스가 요양을 위해서 당장 학교를 쉬어야 한다고 말하며 조심스럽게 신경과 의사를 부르라는 소견을 내놓았다. 그리고 교장에게 속삭였다.
“저 아이는 팔다리를 부들부들 떠는 무도병 증세까지 보일 겁니다.”
- 헤르만 헤세, 한미희 옮김, <수레바퀴 밑에서>, 문학동네, 2013, 1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