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반드시 동급생들을 앞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대체 왜 그래야 할까? 그 이유는 한스 자신도 알지 못했다. 3년 전부터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아왔다. 교사들, 목사, 아버지, 특히 교장이 그를 격려하고 닦달하고 잠시도 가만두지 않았다. 학년에서 학년으로 올라갈 때마다 그는 오랫동안 반박할 수 없는 1등이었다. 그는 점점 1등이라는 데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고 누가 자신과 감히 겨루는 것을 못 참았다.
-헤르만 헤세, 한미희 옮김, <수레바퀴 아래서>, 문학동네, 2013, 53쪽.
모두가 이 아이를 ‘대단한 존재’로 바라본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10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소년 한스. 한스는 아버지에게만 자랑거리가 아니라 온 마을의 귀감이다. 당시 독일에서 가난한 지방 출신의 머리 좋은 소년에게 주어진 최선의 길은 ‘신학생’이 되는 것이었다. 국가의 지원을 받으면서 공부할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신학공부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한스는 이제 곧 슈투트가르트에서 치러질 신학교 입학시험 준비에 한창이다. 틈만 나면 공부에 열을 올리는 한스지만, 그에게도 자기만의 내밀한 기쁨이 있다. 바로 낚시다. 한가롭게 흘러가는 강물 위로 익숙한 물냄새가 피어오르고 하얀 구름 몇 조각이 푸른 수면에 비칠 때, 물레방아가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낚시에 열중하는 시간. 마음껏 뛰놀며 신나게 놀이에 열중하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한스에게 아버지와 교사들은 ‘오직 공부만이 살 길이다’라고 가르친다. 이제 신학교 입학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낚시 따위는 그만두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날 한스는 눈물을 철철 흘리며 분노한다. 그의 아름답고 찬란했던 어린 시절이 종말을 고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밤늦게까지 카이사르, 크세노폰, 문법, 사전, 수학문제와 씨름하는 한스. 그는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성품 때문에 아무리 주변에서 칭찬을 해도 ‘나는 항상 모자라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가 학문에서 느끼는 진정한 기쁨은 학교나 시험 따위를 모두 뛰어넘어 ‘더 높고, 더 깊은 영역’을 향한 아득한 그리움을 느낄 때 찾아온다. “자신이 볼이 통통하고 온순한 학교 친구들과는 정말 다른 더 훌륭한 인물이며, 언젠가 아득히 높은 곳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리라는 대담하고 행복한 예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꿈을 키워왔고, 이제 그 꿈이 막 이뤄지기 시작하려는 찰나였다. 모두가 그의 신학교 입학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남모르는 불안이 소년의 목을 조르고 있다. 입학시험을 보러 슈튜트가르트 행 기차를 탈 때 교장까지 나와서 그를 배웅하러 오지만, 처음 떠나는 여행에서 한스는 기이한 불안에 시달린다. 특히 구두면접시험이 가장 불안했다. 낯선 시험관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두렵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혹시 내가 입학시험에서 떨어지지는 않을까. 스스로 ‘시험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한스는 깊은 절망에 빠져 집으로 돌아온다.
실패하기도 전에 절망부터 바닥까지 미리 체험하는 연약한 소년. 하지만 사실 이런 두려움은 매우 인간적이고 정상적인 것이다. 방학만 하면 다시 낚시를 하고 싶다는 것이 유일한 소원인 한스는 어른들도 따라가기 힘든 막대한 학습량을 자랑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어린 소년이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아직 마음껏 뛰놀고 수다 떨고 신나게 놀 수 있는, 지극히 어린 아이다운 자유가 좀 더 필요했다. 한스는 두려움에 떨며 아버지에게 묻는다. 만약에 시험에 떨어지면 김나지움으로 가도 되냐고. 아버지의 입에서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뭐? 김나지움? 김나지움에 간다고? 대체 어느 놈이 그런 생각을 네 머리통에 심었어?” 아버지에게는 아들의 미래가 이미 결정되어 있었고 ‘다른 길’이란 없었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한스를 숨 막히게 한다. 정말 입학시험에서 떨어지면, 게다가 김나지움도 갈 수 없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평생 평범하고 시시한 사람으로 살겠지. 그런 사람들을 경멸했고, 어떻게든 그들보다 나은 인물이 되려고 했는데. 귀엽고 영리해보이는 앳된 그의 얼굴이 분노와 슬픔으로 무섭게 일그러졌다.” 신학생이 되지 못한다면 ‘평범하고 시시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는 끔찍한 이분법이 소년의 조그만 머리를 꽉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좀 더 넓은 세상이 있다고 말해줄 사람, 어떤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리게 마련이라고 이야기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예전에 그는 저녁이면 나숄트씨네 대문간에 앉아 리제가 감자 껍질을 벗기면서 해주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일요일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꼭두새벽부터 아래 방죽에서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가재나 피라미를 잡았다. 그러다가 나들이옷을 흠뻑 적셔서 아버지한테 흠씬 두들겨 맞기도 했다! 그때는 수수께끼 같은 이상한 일들과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런 것들을 이토록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이를테면 목이 구부정한 구두장이 슈트로마이어가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슈트로마이어가 아내를 독살했다고 굳게 믿었었다. 모험을 좋아하는 ‘베크 씨’도 있었다. 사람들은 지팡이에 배낭을 메르고 뷔르템베르크 주 구석구석을 헤매고 다니는 그를 ‘베크 씨’라고 불렀다. 그가 예전에 말네 마리와 마차까지 소유했던 큰 부자였기 때문이다. 이제 한스는 그들의 이름 말고는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평판이 좋지 않은 그 작은 골목 세계를 잃어버렸지만 대신 생동감 있고 경험할 가치가 있는 다른 일이 생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 헤르만 헤세, 한미희 옮김, <수레바퀴 아래서>, 문학동네, 2013, 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