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 날 선생에게도 저에게도 대단한 승리가 찾아왔습니다. (…) 저는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독한 술병을 움켜쥐었습니다. 관중이 점점 저를 지켜보는 가운데, 저는 그동안 배운 대로 병마개를 다서 입에 대고 주저 없이, 입 한 번 비틀지 않고 단숨에,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마치 타고난 술꾼처럼 정말로 죄다 목구멍으로 들이부었습니다. 그런 다음 절망에 빠진 자가 아니라 예술가처럼 멋진 몸짓으로 술병을 휙 던져버렸습니다. 비록 그때 배를 쓰다듬는 것을 잊어버리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그 대신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뭔가 자꾸 몰아대는 기분이 든데다가, 머리가 핑 돌며 어지러웠기 때문에 짧고 분명하게 “안녕!”하고 외쳤습니다. 인간의 말을 터뜨린 이 한 마디 외침으로 제가 인간 사회로 뛰어들자 “들어봐, 저게 말을 하네!”라는 인간들의 메아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는 마치 온통 땀범벅이 된 제 몸뚱어리에 입을 맞추는 것 같았습니다.
- 프란츠 카프카, 송소민 옮김,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카프카 단편선》, 책만드는 집, 2008, 152쪽
카프카의 원숭이는 말한다. 모방, 그것은 유혹이었다고. 학술원의 지식인들을 쥐락펴락하는 이 총명한 원숭이에게도 인간을 모방하는 것은 달콤한 유혹이었다. 그가 원숭이의 본성을 마음껏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그 모방은 ‘유희’로서 족했을 것이다. 원숭이가 인간을 모방하는 것은 인간이 부러워서가 아니라, 그들의 자연스러운 놀이일 뿐이므로. 하지만 그는 지금 출구를 잃은 상태였다. 도망을 치더라도 바다로 추락할 수밖에 없는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원숭이는 아주 조그마한 ‘출구’를 만들기로 한다. 그가 이제 완전히 탈출의 의지를 잃고 인간세계에 동화되었다는 암호를 보낼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감시체계는 더욱 삼엄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인간 흉내를 내기 위해 ‘주정뱅이’의 모습을 따라했다는 것 또한 흥미롭다. 원숭이가 인간에 대해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가장 혐오스러웠던 모습이 바로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버린 인간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거창하고 추상적인 자유가 아니라 구체적이고도 소박한 출구가 필요했다. 자신의 몸을 놀릴 수 있는 작은 공간, 적어도 동물원의 철책 안에 갇히지 않을 만큼의 여유. 그에게는 그 작은 출구가 필요했다. 그는 술병을 용감하게 움켜쥐고 마치 타고난 술꾼인 양 스스럼없이 술 한 병을 ‘원샷’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마치 팬서비스라도 해주듯이 구경꾼들에게 “안녕!”하고 외쳐주었다. 그러자 객석은 광란의 도가니가 된다. “들어봐, 저게 말을 하네!” 그가 ‘저것’에서 ‘그’로 바뀌는 순간도 그때였다. 그는 사냥의 노획물에서 인격이 있는 존재, 대화가 가능한 존재로 격상된 것이다. 원숭이는 희열을 느낀다. 그들이 자신을 제대로 대접해주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계획이 의도대로 먹히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인간의 흉내를 내고 싶다는 유혹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라, 오직 출구를 찾느라 인간의 흉내를 냈을 뿐이라고 고백한다. 게다가 그 ‘승리’란 것도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고 자평한다. 그는 완전히 인간처럼 ‘알콜중독’이 된 것도 아니었기에, 술병을 원샷하는 퍼포먼스는 할 수 있었지만 진심으로 술을 좋아할 수는 없었다. 술병만 쳐다봐도 진저리가 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결정의 시간이 다가온다. 인간에게 사냥 당한 원숭이에게 남은 두 가지 길. 하나는 동물원행, 하나는 서커스행이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서커스행을 택한다. 서커스가 좋아서가 아니라, 동물원만은 반드시 피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동물원은 또 다른 창살 우리일 뿐, 동물원으로 가면 너는 끝장이다.” 그는 자신을 추스르며 다짐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필요한 작은 출구를 얻어내기 위해 투쟁한다. 이때부터 원숭이의 본성이 조금씩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그는 손톱만한 출구를 얻어내기 위해,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행동할 절실한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제가 함부르크에서 처음으로 조련사에게 넘겨졌을 때, 저는 저에게 두 가지 길이 있다는 것을 곧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동물원 아니면 버라이어티쇼 극장이었죠. 저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저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버라이어티쇼 극장에 가자. 그게 바로 출구다. 동물원은 또 다른 창살 우리일 뿐, 동물원으로 가면 너는 끝장이다.
존경하는 여러분, 그래서 저는 배웠습니다. 예!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은 어떻게든 배우게 되어 있습니다. 출구가 필요하면 배웁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배웁니다. 채찍으로 스스로를 감시합니다.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살이 찢어지도록 자신을 내리칩니다 .그렇게 해서 원숭이의 본성은 빙그르르 돌아 저에게서 빠져나가 버렸습니다. 그 때문에 첫 번째 선생이 도리어 원숭이처럼 되어버려, 곧 수업을 포기하고 정신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 프란츠 카프카, 송소민 옮김,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카프카 단편선》, 책만드는 집, 2008, 1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