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출구라고 하는 말을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까 걱정스럽습니다. 저는 이 말을 가장 일반적이고 완전한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저는 일부러 자유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방을 향한 자유라는 그 위대한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 저는 버라이어티쇼에 데뷔하기 전에 곡예사 한 쌍이 공중그네를 타는 것을 많이 구경했습니다. 그들은 공중을 훌쩍 날아오르고, 흔들어대고, 뛰어오르고, 팔짱을 낀 채 둥둥 떠다니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머리채를 입으로 물고 날랐습니다. 저는 ‘저것도 인간의 자유로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독단적인 동작이군.’ 신성한 본성을 비웃다니! 그 광경을 보는 원숭이의 폭소 앞에서는 어떤 건물도 버틸 수 없을 것입니다. (…) 아니요, 저는 자유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의 출구만을 원했을 뿐입니다.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상관없었습니다. 다른 것은 전혀 원하지 않았습니다. 출구도 또한 그저 기만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요구가 적은 만큼 기만도 그보다 크지는 않을 겁니다. ‘나아가자, 계속 나아가자! 궤짝 벽에 찌그러져 달라붙은 채 망연히 두 손을 들고 서 있는 것만은 안 된다.’
- 프란츠 카프카, 송소민 옮김,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카프카 단편선》, 책만드는 집, 2008, 144~145쪽
독일어에서 원숭이Affe라는 단어는 때로는 굉장히 경멸적인 뜻으로 ‘모방자’, ‘멍청이’를 가리킨다. 타인을 비판 없이 흉내 내는 모습을 풍자할 때 쓰이기도 한다. 자신의 창조성에 대한 믿음, 비판적인 자기 인식이 없는 사람을 가리켜 원숭이라고 비하하는 것이다. 그러나 카프카의 원숭이는 놀랍게도 자신을 학문적 연구의 대상으로 관찰하는 학술원 지식인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며 그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학술원의 신사들은 ‘유럽인의 평균 교양’에 도달하는 데 성공한 이 최초의 ‘말하는 원숭이’에게 발표를 부탁한 것이다. 말하자면 ‘원숭이의 인간되기 매뉴얼’에 대한 보고를 원한 셈이다. 인간처럼 말도 하고 술도 마시며 유머까지 구사할 줄 아는 이 원숭이를 향한 학계의 관심은 뜨거워 보인다. 그러나 원숭이는 학자들의 이 오만한 부탁을 수락하면서도 교묘히 부정한다. 그는 원숭이가 인간이 될 수 있는 법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자신의 ‘성공사례’가 그런 식의 학문적 분석의 도구로 쓰이길 원치도 않는다. 그는 인간이 되는 것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원숭이의 본성을 지키는 데 실패한 것인지도 모른다.
원숭이는 자신을 납치한 선원들이 타고 있는 배에서 처음으로 인간세계의 각종 풍습을 접하게 된다. 선원들은 원숭이의 몸에 있는 벼룩이 튀어 올라 자기들에게 옮는다며 투덜거리긴 하지만, 진심으로 화를 내지는 않는다. 선원들은 막대기를 가져와서 원숭이의 몸을 시원하게 긁어주기도 한다. 원숭이는 탈출의 욕망을 꺾어버린 가장 큰 힘은 바로 ‘인간들이 준 안정감’이라고 말한다. 어차피 도망쳐봤자 바다에 빠지는 길밖에 없었으므로, 원숭이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잡아 가둔 선원들에게 친밀감과 안정감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며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그는 가장 먼저 인간들의 놀라운 획일성을 포착해낸다. “항상 똑같은 얼굴에 움직임도 똑같아서 마치 모두가 한 사람인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했”다고.
인간들에게는 모두 저마다의 ‘자유’가 있었지만, 그 자유를 멋지게 즐기는 인간은 없었던 것이다. 선원들은 기계적으로 일을 하고, 일을 마치고 나면 술과 담배를 즐기며 방탕한 나날을 보냈다. 원숭이의 눈에 비친 인간들은, 자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자유를 어떻게 이용할지 모르는, 스스로 갇힌 존재였던 것이다. 그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어떤 매력도 느끼지 못한다. 인간들처럼 된다고 해서 어떤 만족이나 보람도 느끼지 못할 것을 즉시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사람들의 흐릿한 눈에서 보이는 출구보다는 차라리 망망대해를 택했을 것이라고. 그는 사람들이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거창한 자유가 아니라, 아주 작은 ‘출구’만을 원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사람들과 비슷해질 필요가 있었다. 즉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함으로써, 인간 세상에 숨어 있는 자그마한 ‘틈새’를 찾으려 했던 것이다. 그는 인간을 흉내 내는 것 자체는 전혀 어렵지 않았다고 선언한다. 그는 솔직하게 고백한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모방의 어려움’이 아니라 ‘인간의 지독한 술 냄새’였다고.
사람들을 흉내 내는 일은 정말 식은 죽 먹기였습니다. 침 뱉는 일은 처음 며칠 만에 금방 따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얼굴에다 침을 뱉어댔습니다. 사람들과 저의 차이가 있다면, 저는 얼굴을 깨끗이 핥아냈고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곧이어 노인처럼 느긋하게 파이프를 피우는 흉내를 내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제가 엄지를 파이프 대가리에 쑤셔 넣자 온 갑판에서 환호성이 터졌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담배가 채워진 파이프와 빈 파이프의 차이를 구별하는 일만은 무척 오래 걸렸습니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지독한 술병이었습니다. 지독한 술 냄새가 너무 괴로웠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참으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그것도 몇 주일이 걸렸습니다.
- 프란츠 카프카, 송소민 옮김,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카프카 단편선》, 책만드는집, 2008, 1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