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떻게 저것이 그레고르란 말인가요? 만일 저것이 그레고르였다면, 인간이 자기와 같은 짐승과는 함께 살지 못한다는 것쯤은 벌써 알았을 거예요. 그래서 스스로 나가버렸을 거예요. 틀림없이, 그렇게 되었다면 오빠는 없어져도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아서 오빠에 대한 추억을 소중히 간직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저 짐승은 우리들을 쫓아다니고, 하숙인들을 내쫓고, 틀림없이 이 집 전체를 점령해서 우리들을 길거리로 몰아낼 거예요.
-프란츠 카프카, 이재황 옮김, 『변신』, 문학동네, 2005, 101쪽.
그레고르는 어느덧 벌레의 삶에 익숙해져, 자신이 인간이었던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여동생은 그레고르가 좀 더 자유롭게 벽을 기어 다닐 수 있도록 방의 가구들을 정리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다. 그레고르의 어머니는 잠시 갈등한다. ‘벌레가 된 그레고르’의 입장에서 보면, 벽과 천장을 마음껏 오갈 수 있도록 가구를 치워주는 것이 옳다. 하지만 ‘인간이었던 그레고르’의 입장에서 보면, 가구를 치운다는 것은 ‘이제 그레고르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인정해버리는 것이 된다. 아들이 인간으로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어머니에게, 이런 식의 대청소는 ‘내 아들은 벌레다’라는 사실을 영원히 고정해버리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레고르는 내심 신 나게 벽을 기어 다니는 상상을 하다가도, ‘아, 참, 난 원래 인간이었지’라는 생각을 하며 어머니의 배려에 감동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가구를 치울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다. 그레고르는 가족들을 여전히 사랑하지만, 벌레가 된 그를 ‘가족’으로서 배려하기보다는 ‘끔찍한 괴물’로서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가족의 한계를 꿰뚫어보아야 했던 것이 아닐까.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족들은 한때 지니고 있었지만, 정작 그레고르의 입장은 분명하지 않았다. 오늘 일어나도, 내일 일어나도, 모레 일어나도, 또 다시 벌레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에게는 조금 다른 선택의 길도 있지 않았을까. 예컨대, 이런 상상도 가능하다. 그는 이제 벌레가 되었는데 왜 한 번도 가정을 탈출할 생각을 못했을까.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지만, 정작 인간이라는 울타리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 더 어려웠던 것은 아닐까. 아무도 그를 볼 수 없는 깊은 밤. 그는 창문만 열면 충분히 밖으로 뛰쳐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에게는 ‘가정’이라는 안식처가 사라진 대신, ‘자연’이라는 비상구가 있지 않았을까.
그들은 왜 탈출할 수 있는데도 탈출하지 않았을까. 그레고르와 뫼르소의 진정한 공통점은 바로 그것이다. 그레고르는 가정으로부터, 뫼르소는 감옥으로부터 탈출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그러지 않았다. 뫼르소의 재판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금방이라도 정상참작을 해줄 것 같았던 법조계의 분위기는 점차 뫼르소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인간’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아랍인들과 레몽 일행 사이의 원한관계에 초점을 맞춰야 할 재판은 점점 ‘뫼르소와 어머니’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게 된 것이다. 뫼르소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이상하게 생각한 변호사와 판사들은 점점 뫼르소의 특이함을 ‘무정함’, ‘냉혹함’, ‘잔인함’ 쪽으로 몰아간다. 뫼르소가 비규범적인 인간인 것은 맞다. 그러나 비규범적이라고 해서 비윤리적인가. 규범에 따르지 않는 인간이라고 해서 윤리가 없는 것인가. 그 아들의 윤리성을 실제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사실 그의 친엄마밖에는 없다.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남은 자들이 뫼르소의 어머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동안 뫼르소는 점점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파렴치한’이 되어간다.
양로원 원장은, 장례식 날 담담한 나를 보고 놀랐더랬다고 대답했다. 담담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물으니까 원장은 구두코를 내려다보더니, 내가 엄마를 보려 하지 않았고,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며, 장례식이 끝난 뒤에도 무덤 앞에서 묵도를 하지 않고 곧 물러났다고 말했다. 그를 놀라게 한 일이 또 하나 있다고 했다. 장의사의 일꾼 한 사람으로부터, 내가 엄마의 나이를 모르더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이방인』, 민음사, 2011, 1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