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vs 『이방인』 5회
세상 밖으로 추방되다
“너 당장 의사한테 다녀와야겠다. 그레고르가 병이 났어. 어서 의사를 불러와. 너 지금 그레고르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니?”
“그건 동물의 소리였습니다.”
(…) 그레고르는 오히려 훨씬 더 침착해졌다. 그 사이 귀에 익숙해진 탓인지 그에게는 자신의 말이 충분히 뚜렷하게, 전보다 더 뚜렷하게 들린다고 생각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러니까 그의 말을 더 이상 알아듣지 못하는 것임에 분명했다. 그러나 어쨌든 그들은 이제 그의 상태가 결코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믿게 되었고, 그를 도와주려는 자세를 갖게 되었다. 그들이 취한 첫 조치에서 보여준 신뢰와 확신에 그는 마음이 놓였다. 그는 다시 인간사회 속에 받아들여지는 기분이 들었고, 의사건 열쇠공이건 막연히 그 둘이 함께 대단하고 놀라운 활약을 펼쳐 보일 것으로 기대했다.
(…) “좀 들어보세요.” 지배인이 옆방에서 말했다. “열쇠를 돌리고 있어요.”
-프란츠 카프카, 이재황 옮김, 『변신』, 문학동네, 2005, 31~32쪽.
난 지금 위험한 상태야.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 가족들은 분명히 나를 도와줄 거야.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되어버린 그레고르의 유일한 희망은 그것이다. 가족들이 우왕좌왕하다가 드디어 열쇠공과 의사를 부르러 나가자, 그레고르는 비로소 희망을 품기 시작한다. 다시 인간세상 속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다시 가족들의 희망이 되기를.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그는 열쇠공이 오기 전에, 자기 자신이 직접 나서서 문을 열어보기로 한다. 인간의 손이 아닌, 벌레의 턱으로. 바깥에서 지배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열쇠를 돌리고 있어요.” 그저 단순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말이지만, 이 말이 그레고르에게는 엄청난 격려가 된다. 그래, 내가 이렇게 열심히 문을 열고 있으니까 모두가 날 격려해주었으면. 아버지와 어머니도 나에게 격려를 보내준다면 좋을 텐데. 힘내라, 그레고르! 조금만 더 힘을 내! 옳지! 이렇게 응원을 해주었으면. 벌레가 되어 손이 없어져 버린 그는 이제 오직 입과 턱의 힘을 이용해, 온 힘을 다해 문고리를 여는 데 성공한다. 모두가 위험에 처한 자신을 도와줄 거란 희망을 품으며.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도움이 아니라 충격과 공포였다. 지배인은 비명을 지르며 어물어물 뒷걸음친다. 어머니는 급기야 기절해버린다. 아버지는 적대감을 숨기지 못하고 그레고르를 향해 주먹을 불끈 쥐다가 마치 ‘진짜 그레고르’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더니,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렇게 당당하고 위엄 넘치던 아버지가, 나 때문에 저렇게 울다니. 그레고르는 냉정함을 되찾을 사람은 자기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이 와중에도 직장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벌레가 된 거구를 이끌고 출근을 해보려는 그레고르 잠자. 그는 지배인이 이 모든 사실을 회사에 알릴까 봐 전전긍긍한다. “지배인님, 대체 어디로 가십니까? 회사로 가시나요? 그렇지요? 모든 일을 사실대로 보고하실 겁니까? 지금 당장은 일하라 능력이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오히려 이런 때에야말로 그 사람의 예전의 실적을 떠올려볼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중에는, 그러니까 장애가 제거된 후에는, 틀림없이 그만큼 더 열심히, 훨씬 더 집중에서 일하게 될 테니까요.” 그러나 아무리 간절하게 애원해도 소용없다. 그레고르의 언어는 ‘벌레의 울부짖음’으로 들리지, 더는 인간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사람들끼리의 언어로만 소통한다. 한때 사람이었던, 이제는 벌레가 된 그레고르의 언어는 이제 ‘세상 바깥의 소음’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편 『이방인』의 뫼르소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자신에 대한 ‘나쁜 평판’을 알게 된다. 옆집에 살고 있는 살라마노 영감이 가족 같던 개를 잃어버리고 나서 상심하고 있기에, 뫼르소는 그를 자기 방으로 불러 담소를 나눈다. 살라마노 영감은 뫼르소의 어머니를 ‘가엾은 자당님’이라고 부른다. 이 말은 왠지 중의적으로 들린다. 단지 돌아가셨기 때문에 ‘가여운’ 것이 아니라, 뫼르소에게 ‘버려졌기’ 때문에 가엾다는 뜻으로 들리는 것이다. 살라마노는 어머니를 잃은 뫼르소가 ‘당연히’ 상심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뫼르소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자 당황한다. 살라마노는 뫼르소를 악평하는 동네 사람들과는 달리, 자신은 뫼르소를 이해한다고 말한다. 악평? 뫼르소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듣자하니 동네 사람들은 뫼르소가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냈다는 이유로 오래전부터 뫼르소를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뫼르소는 당혹스럽다. 어머니를 돌볼 능력이 없어서, 어머니가 내 곁에서는 더 외로워하셔서, 양로원으로 보낸 것일 뿐인데. 왜 그것이 내가 ‘악평’을 받아야 할 이유가 될까. 뫼르소는 오래전부터 이미 뭇 사람들의 ‘시선’에 의해 불효를 단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만의 커뮤니티’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의 방 문간에서 살라마노 영감을 만났다. 내가 그를 방으로 들어오게 했더니 영감은, 동물 보호소에 가 봤는데도 개는 없으니 결국 잃어버리고 만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 아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살라마노는 매우 외로움을 느꼈다. 그래서 개 한 마리를 동료에게 부탁해서 아주 어린 놈으로 얻어 왔다. 처음에는 젖병을 물려서 기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개의 수명은 사람의 수명보다 짧으므로, 그들은 함께 늙고 말았다. (…) 엄마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가엾은 자당님’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죽은 뒤 필시 내가 매우 상심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말했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빠른 어조로 어색한 낯을 보이며, 어머니를 양로원에 넣었다고 동네에서 나를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며, 내가 엄마를 퍽 사랑했다는 것을 알고 있노라고 말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 까닭을 알 수 없지만, 나는 엄마 때문에 내가 악평을 받고 있다는 것을 그때까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나에게는 엄마를 돌 볼 사람을 둘 만한 돈이 없었으므로 양로원에 넣는 것이 마땅한 처사로 생각되었던 것이라고 대답했다.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이방인』, 민음사, 2011, 54~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