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페어 레이디」 vs 『전원교향악』 3회
신사의 에티켓, 숙녀의 에티켓
일라이자, 너는 앞으로 6개월 동안 여기서 살아야만 한다. 그리고 꽃집 점원처럼 멋지게 말하는 걸 배우는 거다. 네가 착하게 굴고 하라는 대로 잘하면 너는 좋은 방에서 자고, 많이 먹고, 초콜릿을 사고, 택시 탈 돈을 받게 될 거다. 네가 못되게 굴고 게으름을 피우면 너는 바퀴벌레가 들끓는 부엌 뒤편에서 자고 피어스 부인에게 빗자루로 맞을 거다. 6개월이 지나면, 너는 버킹엄 궁전에 아름다운 옷을 입고 마차를 타고 가게 될 거야. 만약 국왕이 네가 숙녀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리면, 경찰이 너를 런던 타워로 끌고 갈 거다. 거기서 너는 주제넘은 꽃 파는 계집애들에 대한 경고로 참수형에 처해질 거다. 네가 발각되지 않으면, 너는 꽃집 점원으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7파운드 6펜스의 선물을 받게 될 거야.
-버나드 쇼, 김소임 옮김, 『피그말리온』, 열린책들, 2011, 65쪽.
일라이자의 오랜 꿈은 ‘올바른 말투’를 씀으로써 어엿한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일라이자는 히긴스의 음성학 수업만 잘 이해하면 ‘우아한 말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꽃집 점원이 될 수 있을 거라 꿈꾼다. 그러나 막상 그 과정은 그리 순탄치가 않다. 히긴스는 그녀에게 음성학뿐 아니라 ‘숙녀가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에티켓’을 가르치려 한다. 그녀에게는 우선 ‘목욕’이 고통이다. 한 번도 욕조에서 목욕을 해본 적이 없는 그녀는 자신의 옷을 벗기려는 피어스 부인의 손길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 깨끗해진다는 게 이렇게 끔찍한 일인 줄 알았더라면 절대 오지 않았을 거야. 내가 얼마나 편하게 지내고 있었는지 몰랐었네.” 일라이자는 비로소 깨닫는다. 멀리서 바라본 숙녀의 우아한 이미지와 ‘내가 숙녀가 되는 일’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음을.
히긴스가 ‘지식’에 집착한다면, 목사는 ‘진실’에 집착한다. 지식에 대한 집착으로 먹고사는 히긴스. 그는 지식이 권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그런 자신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을 느낀다. 진실에 대한 집착으로 먹고사는 『전원교향악』의 목사님. 그는 진실을 구하는 자신의 노력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 일치한다는 사실에 무한한 자긍심을 느낀다. 히긴스에게는 일라이자가 자신의 위대한 지식으로 구제해야 할 대상으로 보이고, 목사님에게는 제르트뤼드가 자신의 종교적 신념으로 구원해야 할 ‘길 잃은 어린 양’으로 보인다. “당신은 저걸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아멜리는 제르트뤼드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시한다. ‘저것’이라는 표현에 목사는 전율하고, 솟아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기가 힘들다. 그에게 제르트뤼드는 ‘길 잃은 양’이지만, 아이 다섯을 건사해야 하는 아내에게는 이 고아 소녀가 ‘짐’인 것이다.
물론 목사님도 알고 있다. 목사로서의 끝없는 자선활동이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는 낙제점수를 받기 쉽다는 것을.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일단 구하고 보는 자신의 이해받지 못하는 열정과 경솔한 충동이 아내를 괴롭혀 왔음을. 목사님 또한 아이의 ‘실체’를 보자 경악한다. 아이의 몸에 우글우글 붙어 있는 이와 벼룩을 보자 “마차 안에서 오랫동안 그 아이가 내게 꼭 붙어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나 또한 불쾌감을 금할 수가 없었다”고 고백하기까지 한다. 그는 비로소 깨닫는다. 목사로서 ‘길 잃은 어린 양을 구해야 한다’고 결심하는 것과 그 길 잃은 양을 ‘그의 마음에 꼭 드는 숙녀’로 만드는 일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음을. 아내의 얼굴에는 싫은 기색이 역력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 예를 들어 소녀의 몸을 씻기고 닦아주는 일을 목사가 스스로 할 수는 없었다. 그런 힘든 일은 아내에게 맡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제야 나는 가장 힘들고 불쾌한 보살핌에는 내 손길이 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아내 아멜리는 미덕의 정원 같은 사람이다. (…) 하지만 그처럼 베푸는 마음씨를 타고난 그녀의 자비심도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불시에 생기는 일은 좋아하지 않았다. (…) 마치 사랑이 언젠가 다 써버릴 보물이나 되는 것처럼 그녀의 자비심에는 한계가 있었다. 바로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언쟁거리였다.
그날 저녁 어린애를 데리고 들어오는 나를 보고 아내는 이렇게 소리쳤는데, 그 말에는 내 행동을 보고 아내가 처음 했던 생각이 배어 있었다.
“당신 또 무슨 짐을 짊어지고 오신 거예요?”
-앙드레 지드, 김중현 옮김, 『전원교향악』,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