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페어 레이디」 vs 『전원교향악』 2회
나의 마스코트가 되어 줘
천박한 영어를 하는 저 아이를 보십시오. 저 영어는 죽는 날까지 저 아이를 빈민굴에 처박혀 있게 할 겁니다. 자, 선생. 저는 석 달 안에 저 아이가 대사의 가든파티에서 공작 부인 행세를 하게 할 수 있어요. 저 애가 보다 수준 있는 영어를 요구하는 귀부인의 하녀나 가게 점원 자리를 얻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일라이자를 바라보며) 너는 이 멋진 기둥이 있는 고귀한 건축물에 대한 수치고, 영어에 대한 모욕 그 자체야. 나는 네가 시바의 여왕 행세를 하게 할 수 있다.
-버나드 쇼, 김소임 옮김, 『피그말리온』, 열린책들, 2011, 36쪽.
너를 감싸고 있는 어둠의 장벽을 모두 제거해줄게. 너를 날아오르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짐을 내가 대신 져줄게. 대신 나의 멋진 마스코트가 되어 주렴. 나의 능력을 증명하고, 나의 신념을 증명할 수 있는 마스코트. 『피그말리온』의 히긴스 교수는 일라이자를 통해 자신의 학문적 실험의 우수성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출신성분을 그대로 드러내는 ‘천박한’ 말투 때문에 취직조차 하지 못하는 일라이자를 귀족들의 사교 파티에 데뷔시킬 수만 있다면, 음성학의 힘, 아니 ‘나, 히긴스’의 능력은 증명되고도 남을 것이다. 『전원교향악』의 주인공 ‘나’도 목사로서의 봉사정신과 희생정신을 맹인 소녀 제르트뤼드를 통해 증명받고자 한다. 그는 히긴스 교수만큼 오만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의 봉사정신이 아내는 물론 가족 모두를 괴롭힌다는 점에서 그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피그말리온』의 히긴스 교수도, 『전원교향악』의 주인공인 목사도 저마다 자신이 후원한 존재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존재, 자신의 존재론적 아바타가 되기를 바란다.
일라이자 두리틀은 한 번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시험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히긴스의 교육이 그녀의 능력을 시험할 수 있는 첫 번째 시험장이 된다. 그녀는 빨리 배우고, 빨리 외우고, 빨리 응용한다. 무엇보다 히긴스는 일라이자의 자부심을 위협하는 인격모독의 발언을 서슴지 않는데, 일라이자는 그때마다 굴하지 않고 히긴스에게 저항한다. 히긴스는 일라이자를 감정 따위는 없는 로봇처럼 대한다. “저 아이는 우리가 신경 쓸 만한 감정은 갖고 있지 않아요. 갖고 있니, 일라이자?” “어디든 전화해서 새 옷을 가져오라고 해요. 옷이 올 때까지는 저 애를 갈색 종이에 싸놓으시오.” “저 애는 너무나 매력적으로 천박하고, 너무 끔찍하게 더러워!” 일라이자는 이런 식의 취급을 받으면서도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다. “오, 거만하시긴! 저분도 돈을 받고 가르치는 사람일 뿐이잖아요?” “나는 수업을 받으러 왔다고요. 그리고 확실하게 돈도 지불할 거예요. 틀림없이요.” 일라이자는 히긴스의 ‘음성학’ 수업을 받지만, 그녀에게는 이 수업 시간이 음성학을 뛰어넘는 ‘세상살이의 시뮬레이션’이 된다.
『전원교향곡』에서 눈먼 소녀 제르트뤼드를 바라보는 목사, ‘나’의 시선은 한없는 연민과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있다. 목사는 제르트뤼드를 가르치는 것이 한없이 즐겁다. 점자책 읽는 법을 가르쳐 역사와 문학을 가르치는 것만큼이나, 제르트뤼드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지식이다. 목사는 어느 정도 ‘제한된 지식’을 주입함으로써 그녀가 맹인이라는 이유로 겪고 있는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한다. 목사는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대신, 눈으로 봐야만 알 수 있는 ‘이미지’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제르트뤼드는 목사의 이 ‘엄선된 침묵’의 의미를 번개같이 알아차린다. “왜 목사님은 제게 그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세요? 제가 보지 못한다는 것을 배려해서 혹시 제게 괴로움을 줄까봐 겁이 나서 그러세요? 그렇다면 목사님이 잘못 생각하시는 거예요. 저는 새들의 노랫소리에 담긴 이야기들을 모두 알아들을 것만 같거든요.” 목사는 제르트뤼드를 위로하기 위해 ‘시각의 중요성’을 폄하한다. “눈이 보이는 사람들은 너만큼 새들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단다, 제르트뤼드야.”
내가 제르트뤼드를 처음 발견했던 그 초가집에서는 그 애에게 겨우 먹을 것을 주고 죽지 않도록(‘살도록’이라고는 차마 못 하겠다.) 도와주는 것 외에는 아무도 그 아이를 돌보아 주지 않았다. 그 애의 캄캄한 세계는 그 애가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는 바로 그 방의 벽에 의해 경계지어져 있었다. (…) 사실 그 애는 내가 보살펴 주기 전까지는, (…) 그 어떤 것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깊은 동면에 빠져 살았다.
(…) “대지는 새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정말로 그렇게 아름다운가요? 왜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더 해주지 않나요? 왜 목사님은 제게 그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세요? 제가 보지 못한다는 것을 배려해서 혹시 제게 괴로움을 줄까봐 겁이 나서 그러세요?”
-앙드레 지드, 김중현 옮김, 『전원교향악』,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36~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