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틀담의 곱추』 vs 『시라노』 10회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간직하는 법
그 모든 끔찍한 해골들 사이에서, 송장 하나가 다른 송장 하나를 이상하게 껴안고 있는 두 송장을 발견했다. 이 두 송장 중 하나는 여자 송장이었는데, 아직도 그 흰 옷감 드레스의 몇 조각이 남아 있었으며, 그 여자의 목둘레에는, 녹색 유리 세공품으로 장식된, 열린 채 비어 있는 조그만 명주 주머니 하나가 달린 멀구슬나무 열매 목걸이 하나가 보였다. (…) 이 송장을 꼭 껴안고 있는 다른 송장은 남자 송장이었다. 이것은 등뼈가 구부러졌고, 머리가 견갑골 속에 들어가 있고, 한쪽 다리가 다른 쪽보다 더 짧은 것을 사람들은 알아볼 수 있었다. 게다가 목의 추골이 조금도 부러져 있지 않았으니, 그는 교수형을 당하지 않았음이 분명하였다. 그러므로 이 송장의 임자였던 사나이는 거기에 와서 죽은 것이다. 그가 껴안고 있는 송장에서 그를 떼어내려고 하자, 그것은 먼지가 되어버렸다.
-빅토르 위고, 정기수 옮김, 『파리의 노트르담 2』, 민음사, 2011, 489~490쪽.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진정 다시없는 ‘운명적 인연’처럼 보이지만, 정작 본인들은 평생 그걸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랫동안 서로의 곁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사랑’인지 모른 채 그저 ‘우정’이라 믿는 사람도 있고, 한쪽은 운명적 인연을 알아보고 평생 한 사람만을 바라보지만 다른 한쪽은 그 변함없는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늘 엉뚱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경우도 있다. 피할 수 없는 사랑의 운명을 깨닫는 것은 어렵다.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상대를 향해 그 사랑의 운명을 실천하는 길은 더욱 어렵다. 카지모도와 시라노는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사랑의 유형을 상징하는 인물들처럼 보인다. 온 힘을 다해 사랑해도 온 힘을 다해 ‘딴청’을 피우는 상대. 한사코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상대를 향한 조건 없고, 기약 없고, 희망 없는 사랑. 한 인간을 향한 사랑을 넘어, 차라리 사랑 자체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되는 그런 사랑 말이다.
자신을 하룻밤 상대로 이용했을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에스메랄다는 페뷔스를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못한다. 더구나 노트르담 성당이라는 ‘성역’을 벗어나는 순간 자신에게 남는 것은 죽음뿐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의 유일한 꿈은 페뷔스를 한 번만이라도 다시 만나는 것이다. 카지모도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를 포기하지 않는다. 카지모도의 소원은 그녀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살아주는 것’이다. 그녀가 그저 살아있기만 해도, 그는 이토록 비참한 삶을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이 그녀의 삶을 도륙하고 만다. 프롤로는 끝내 에스메랄다를 성역에서 납치하여 또다시 그녀를 향한 탐욕의 손길을 뻗친 것이다. ‘죽음’ 아니면 ‘나’를 택하라는 프롤로의 끈질긴 집착 앞에서, 그녀는 단호하게 ‘죽음’을 택한다. 아무 죄도 없는 집시 처녀 에스메랄다는 그렇게 끝내 교수형 당하고 만다. 그녀 없는 세상을 견딜 수 없는 카지모도는,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간 프롤로에게 복수한 후, 자신도 그녀를 따라가기로 한다. 그녀의 눈이 영원히 감기고 나서야, 더 이상 그녀는 카지모도의 흉측한 모습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갈기갈기 찢어진 흰 드레스를 입고 처참하게 죽어간 집시 처녀의 시체를 껴안고 죽어간 꼽추 청년의 안타까운 주검. 빅토르 위고는 이 가여운 주검들을 향해 ‘카지모도의 결혼’이라는 비극적인 타이틀을 부여한다.
무려 14년 동안, 전쟁터에서 죽은 크리스티앙을 그리워하며 수도원에서 홀로 지내온 록산은, 죽음을 앞둔 시라노의 눈빛 속에서 비로소 자신을 지켜주던 유일한 영혼의 불빛을 발견한다. 그녀는 알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크리스티앙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극진한 사랑이 자신을 감싸고 있는 듯한, 불가해한 따뜻함을. 록산은 크리스티앙이 남긴 마지막 편지를 ‘마치 자신의 편지처럼’ 낭독하는 시라노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서야, 편지의 진짜 주인을 알아낸다. 내가 사랑한 건 당신이었다고, 제발 죽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는 록산을 남겨두고 시라노는 조용히 세상을 떠난다. 크리스티앙이 ‘가짜 편지’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은 시라노의 기사도였으며, 그녀를 가질 순 없었지만 그녀를 늘 지켜주었던 것은 시라노의 사랑이었다. 시라노와 카지모도. 그들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비극적인 사랑의 극한까지 걸어갔고, 그 끝에는 참혹한 결말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아프게 증명한다.
시라노: 그래, 내 삶은 몰래 할 말을 일러주고는 곧 잊히는 사람의 것이었어! 크리스티앙이 당신 발코니 아래에서 당신에게 말을 했던 밤, 기억하시오? 그렇소! 그게 바로 내 삶이오. 내가 그 아래, 짙은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영광에 입 맞추기 위해 올라갔소! (…) 난 여성의 부드러움을 모르고 자랐소. 내 어머니는 날 예뻐하지 않았고, 나에겐 누이가 없었소. 커서는 비웃는 눈길을 가진 여자들이 두려웠소. 적어도 내가 여자 친구를 가진 건 당신 덕이었소. 당신 덕분에 여자 드레스가 내 삶 속을 지나갔소.
(…) 록산: 난 단 한 사람을 사랑했고, 그를 두 번씩이나 잃는구나!
(…) 시라노: 난 당신이 매력적이고, 착하고, 잘생긴 크리스티앙을 덜 기리길 바라는 건 아니오. 다만, 차가운 한기가 내 척추를 파고들 때, 당신이 그 베일에 이중의 의미를 부여해 주길, 그를 기리는 상을 치르며 나도 약간은 기려주길 바랄 뿐이오.
--에드몽 로스탕, 이상해 옮김, 『시라노』, 열린책들, 2010, 233~2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