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틀담의 곱추』 vs 『시라노』 9회
마침내, 주인에게 도착한 편지
“저는 지금까지 제 추함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저는 저 자신을 아가씨에게 견주어 볼 때, 저 자신이 무척 가엾어요. 저는 참으로 가련하고 불쌍한 괴물이예요! 저는 틀림없이 아가씨에게 짐승같이 보일 거예요, 그렇죠. 그런데 아가씨는 한줄기 햇살이에요. 한 방울 이슬이에요. 새의 노랫소리예요! 저는, 저는 그 어떤 끔찍스러운 것, 사람도 아니고 짐승도 아니고, 조약돌보다도 더 단단하고 발 아래 더 짓밟히고 더 보기 흉한, 뭔지 알 수 없는 것이에요!” (…) “아가씨는 저더러, 왜 제가 아가씨를 살려냈느냐고 묻고 계시죠. 아가씨는 잊어버리셨어요. 어느 날 밤 아가씨를 강탈하려고 했던 악당을. 그런데 아가씨는 바로 그 이튿날 그 수치스러운 죄인 공시대 위에서 그 악당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쳐 주셨어요. 한 방울의 물과 약간의 동정, 그것은 제 목숨으로도 다 갚을 수 없을 거예요. 아가씨는 그 악당을 잊어버리셨어요. 그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에스메랄다는 몹시 감동하여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한 방울의 눈물이 종지기의 눈 속에 감돌고 있었으나 떨어지지는 않았다.
-빅토르 위고, 정기수 옮김, 『파리의 노트르담 2』, 민음사, 2011, 252~253쪽.
노트르담 성당 앞에 구름처럼 모여든 구경꾼들 앞에서, 죽어가는 그녀를 신출귀몰한 솜씨로 구해내는 순간. 카지모도는 다시없는 영웅이 된다. 그녀를 구하는 순간, 군중들은 웃고 울고 열광하며 발을 동동 구른다. 그들이 그토록 멸시하고 짓밟고 혐오하던 카지모도는 그 순간 진정 소름 끼치게 아름다워 보였으니까.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을 구했을 뿐 아니라, 그녀를 잔인한 운명의 굴레에서 해방시킨다. 그리고 단지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을 넘어, ‘그들만의 세계’로 보였던 파리의 저잣거리 속으로 드디어 개입한다. 그는 더 이상 얼굴이 보이지 않는, 종소리만 울리고 사라지는 엑스트라가 아니라, 그들만의 세상, 어긋난 세상을 바로잡는 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는 존재로 비약한다. “그는 아름다웠다, 그는, 이 고아는, 이 업둥이는, 이 허섭스레기는. 그는 자신이 존엄하고 굳세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카지모도는 추방당한 자였다. 그러나 이 순간, 그는 자신을 추방시킨 그 사회를 장악하고 굽어보며 그들만의 법과 제도를 조롱한다. 그녀를 죽이기 위해 ‘출근’한 경관들, 법관들, 망나니들은 모두 국왕의 전령들이었다. 카지모도는 이 순간 한 여자를 구하는 일을 넘어 국왕과 맞서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한 여자를 구하기 위해 온 세상과 대적하고 있었다.
이제야 카지모도는 에스메랄다를 바로 곁에서 지킬 수 있게 된다. 카지모도는 에스메랄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그녀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절대로 성역 바깥을 나가서는 안 된다고. 당신이 만약 성역 바깥으로 나간다면 즉시 잡힐 것이고, 그렇다면 자신 또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겠다고. 에스메랄다는 죽음을 목전에 둔 채 모든 것을 포기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구원자를 만나자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한다. 그러나 카지모도의 기괴한 모습에 아무래도 적응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웃으며 그의 얼굴을 보려 해도, 그의 얼굴은 슬프도록 그로테스크했던 것이다. 얼굴만 봐도 공포심이 저절로 솟아나는 그의 얼굴을, 에스메랄다가 연민과 동정을 담아 간신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카지모도. 그는 찢어질 것만 같은 마음을 다잡고 상냥하게 제안한다. “아가씨는 저를 보시지 않고 제가 아가씨를 볼 수 있는 곳으로 가겠어요.” 그는 그녀에게 호각을 하나 주며, 자신이 필요할 땐 언제나 호각을 불어달라고 말한다.
시라노 역시 이제 바로 곁에서 그녀를 지킬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좀처럼 앞으로 나서지 못한다. 이제 록산의 진심을 알아버린 크리스티앙은 시라노에게 선언한다. 더 이상 ‘연기’는 그만하자고. 그녀에게 모든 것을 말하라고. 그녀에게 진심을 고백하라고. 크리스티앙은 자신이 훔친 것이 시라노의 영혼임을 인정한다. 그는 마침내 깨닫는다. 화려한 글솜씨나 매력적인 말솜씨, 절절한 연애편지마저 훔칠 수는 있지만, 타인의 영혼은 훔칠 수 없음을. 크리스티앙은 시라노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저 자신 속에 경쟁자를 품고 있는 데 지쳤어요!” 시라노는 거부하지만, 크리스티앙 또한 단호하다. “그래요, 전 온전히 저 자신으로 사랑받고 싶어요. 아니면 아예 사랑받지 못하거나!”
절망한 크리스티앙은 전장으로 뛰쳐나가고, 가장 먼저 총알받이가 되어 전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다. 적이 쏜 첫 총탄에 맞아 죽은 크리스티앙. 남의 영혼을 훔친 편지를 써서라도 그녀의 사랑을 얻고 싶었던 크리스티앙의 사랑 또한 아름다웠다. 시라노는 크리스티앙이 ‘겉만 번지르르한 미남’이 아니었음을 알기에, 크리스티앙의 사랑 또한 자신 못지않음을 알기에, 더더욱 록산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록산이 자신의 영혼을 사랑했다는 것만으로,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믿는 시라노. 그는 그렇게 ‘사라지는 매개자’이자 비극적인 사랑의 주인공이 되어, 끝까지 자신의 마음을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크리스티앙이 죽은 후 무려 14년 동안, 수도원에서 칩거하고 있는 록산의 더없는 친구가 되어준 시라노의 진심 또한 마침내 밝혀진다. 다른 이의 이름을 훔쳐서라도 반드시 전하고 싶었던, 절절한 사랑의 편지는 마침내 주인을 찾았다.
록산: 그건 당신이었어요.
시라노: 아니오, 록산, 아니오!
록산: 그가 내 이름을 불렀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 그 모든 너그러운 속임수를 이제야 깨달았어요. 그 편지들을 쓴 건 당신이었어요.(…) 미친 듯한 열정의 말들, 그건 당신이었어요! (…) 어둠 속의 목소리, 그건 당신이었어요!
시라노: 맹세컨대, 아니오!
록산: 영혼, 그건 당신의 것이었어요!
시라노: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소.
록산: 당신은 절 사랑했어요!
시라노: (몸부림치며) 그건 그였소!
록산: 당신은 절 사랑했어요!
시라노: (…) 아니오, 아니오, 내 소중한 사랑,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소!
록산: (…) 왜 지난 14년 동안 입을 다무셨나요, 그와 아무 상관도 없는 이 편지에 남은 이 눈물은 당신이 흘린 것이었나요?
-에드몽 로스탕, 이상해 옮김, 『시라노』, 열린책들, 2010, 230~2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