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틀담의 곱추』 vs 『시라노』 8회
최후의 프러포즈=최초의 프러포즈
“저 여자를 수레로 떠메어 가라, 그리고 어서 해치워라!”
사형 집행인의 하인들이 (…) 냉정한 명령을 집행할 채비를 차리는 순간, 카지모도는 화랑 난간을 뛰어넘고, 발과 무릎과 손으로 밧줄을 붙잡더니, 창문 유리를 따라 흘러내리는 빗물 방울처럼, 성당의 정면 위를 미끄러져 내려, 지붕에서 떨어진 고양이처럼 날쌔게 두 망나니 쪽으로 뛰어가서 거대한 두 주먹으로 그들을 때려누이고, 어린아이가 제 인형을 집어 들듯, 한 손으로 이집트 아가씨를 집어서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단 한 번 펄쩍 뛰어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서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성역(聖域)이다!”하고 외쳤다.
(…) “성역이다! 성역이다!”라고 군중은 되풀이했고, 수만의 박수소리가 카지모도의 외눈을 기쁨과 자랑으로 반짝이게 하였다.
이 요란스러운 진동에, 사형수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 여자는 눈을 뜨고 카지모도를 바라보다가, 다시 얼른 감아버렸다. 마치 자기의 구원자에게 겁이라도 난 것처럼.
-빅토르 위고, 정기수 옮김, 『파리의 노트르담 2』, 민음사, 2011, 216쪽.
에스메랄다를 향한 프롤로의 집착은 급기야 그녀를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는다. 프롤로는 페뷔스와 에스메랄다가 키스를 하는 순간을 틈타, 질투심에 사로잡혀 페뷔스를 칼로 찌르고 만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페뷔스와 충격으로 쓰러진 에스메랄다를 버려둔 채 프롤로는 비겁하게 줄행랑을 치고, 에스메랄다는 페뷔스의 살인자라는 누명을 쓰게 된다. 페뷔스는 에스메랄다를 ‘하룻밤’의 상대로 여겼고, 프롤로는 그녀에게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씌울 정도로 무책임한 인간이었다. 사랑에 눈이 먼 에스메랄다는 자신이 끔찍한 고문을 받고 사형선고를 당하게 된 것보다 페뷔스의 상태를 더욱 염려했다. 그녀가 빛 한줄기 스며들지 않는 감옥에서 떨고 있는 동안 페뷔스는 멀쩡히 살아남아 자신의 연인을 찾아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시덕거렸다. 페뷔스의 바람둥이 기질보다 더 최악인 것은 그가 ‘비겁한 인간’이라는 점이다. 페뷔스는 자신이 증인으로 나서주면 에스메랄다가 죽음을 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집시여인과 하룻밤 애정행각을 벌이려 했다는 점이 들통 날까 봐 앞으로 나서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심각한 인종차별까지 서슴지 않는다. “백인보다 더욱 아름다운 여인이 있을까? 백인이 아닌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식이었다. 에스메랄다는 사랑에 눈이 멀어 페뷔스의 추악한 속물근성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프롤로는 에스메랄다에게 더러운 거래를 제안한다. 만약 자신의 여자가 돼준다면, 사형을 면하게 해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에스메랄다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마침내 그녀의 사형집행일이 다가오고, 오직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를 구경하기 위해 광장에 모인 수많은 군중의 침묵만이 그녀를 감싸고 있는 순간, 그야말로 혜성같이 나타나 그녀를 낚아채 간 구원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노트르담의 종지기 카지모도였다. 카지모도가 그녀를 노트르담 성당으로 숨겨주며 군중 전체에게 외친 말은 놀랍게도 “성역이다!”였다. 노트르담은 누구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성역이었던 것이다. 어떤 죄인도 성당에 숨어있는 한 체포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뭔가 ‘모자란 인간’, ‘인간의 함량에 미달되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카지모도는 그동안 절치부심하며 아무도 모르는 방식으로 사형집행 직전에 그녀를 구해내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운 것이다. 시인 그랭구아르는 그녀를 구할 힘이 없었고, 페뷔스는 그녀의 간절한 시선을 아예 무시해버렸으며, 프롤로는 죽음의 문 앞에 선 그녀에게 더러운 거래를 제안했다. 네가 날 원한다면, 널 구해줄 수 있다고. 그녀가 단호히 거절하자 프롤로는 저주를 퍼붓는다. 널 가질 수 없다면, 누구도 널 가질 수 없게, 차라리 없애버리겠다고.
이런 상황에서 사형 집행 명령은 어김없이 떨어지고, 노트르담 앞에 모인 수만 명의 군중은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던 에스메랄다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는 슬픔과 공포에 사로잡힌다. 이때 카지모도가 나타난 것이다. 노트르담의 장엄한 종소리를 울리던 그 힘과 그 기술로, 갑자기 노트르담 안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와 번개같이 그녀를 낚아채 노트르담 성당 안으로 데려가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더 없이 지혜로운 성찰로 이 모든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해버린다. “성역이다!” 성역이니, 누구도 그녀를 건드릴 수 없다. 성역이니, 어떤 ‘인간의 규율’도 생명의 소중함을 빼앗아 갈 수 없다. 성역이니, 그 어떤 방해물도 그의 사랑을 방해할 수 없다. 누구도 진정으로 사랑해 본 적이 없던 카지모도는 처음으로 타인을 구원하는 방법을 깨달은 것이다.
개구리 왕자가 공주의 키스로 저주에서 풀려나듯이, 시라노 또한 사랑하는 여인 록산의 방문만으로도 깊어가는 마음의 질병을 치료받는다. 크리스티앙은 록산을 다그친다. 정말 ‘그까짓 편지 따위’ 때문에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내들의 전쟁터에 달려온 것이냐고. 록산은 그렇다고 말한다. 그녀는 당신의 아름다운 외모가 덧없이 사라진다 해도, 변함없이 당신을 사랑할 것이라고 말한다. 편지의 송신자로, 세레나데의 주인공으로, 사랑의 승리자로 기록되었던 크리스티앙은 끔찍한 패배감에 사로잡힌다.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나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녀가 진심으로 사랑한 것은 자신이 본의 아니게 도둑질한 타인의 편지였다. 그녀는 크리스티앙의 아름다운 외모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사랑에 빠진 것은 바로 ‘시라노의 영혼’이었던 것이다.
크리스티앙: 그럼 지금은?
록산: 지금! 마침내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승리를 거뒀어요. 지에 내가 사랑하는 건 오로지 당신의 영혼뿐이에요!
크리스티앙: (뒤로 물러나며) 아! 록산!
록산: 그러니 행복을 만끽하세요. 오로지 잠시 머무는 외모 때문에 사랑받는 것은 고귀한 사랑의 마음을 고문에 빠뜨릴 테니까요. 하지만 그 소중한 마음이 얼굴을 지워버렸어요. 처음에 내 마음을 설레게 했던 당신의 아름다움은 내가 더 잘 볼 수 있게 된 지금……더는 보이지 않아요! (…) 내가 더 깊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바로 지금이에요! 분명히 말할 수 있어요. 내가 숭배하는 건 당신의 잘생긴 외모가 아니라…
크리스티앙: 그만 해요!
록산: 난 당신을 더욱 사랑할 거예요! 당신의 아름다움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해도…
(…)
크리스티앙: 내가 추남이라도?
록산: 추남이라도! 맹세해요!
-에드몽 로스탕, 이상해 옮김, 『시라노』, 열린책들, 2010, 196~1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