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틀담의 곱추』 vs 『시라노』 7회
세상을 향해 열린, 단 하나의 창문
“물 좀 줘!”
카지모도는 헐떡거리면서 세 번째로 되풀이했다. (…) 이상야릇한 옷차림을 한 아가씨 하나가 군중 속에서 나왔다. (…) 카지모도의 눈이 빛났다. 그것은 간밤에 그가 겁탈하려 했던 집시 여자였으니, 바로 이 순간에 사람들이 자기를 벌하는 것은 그 급습 때문이라는 것을 그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 그녀는 한마디 말도 없이, 자기에게서 벗어나려고 공연히 몸을 비틀고 있는 수형자에게 다가가, 허리띠에서 물통을 풀어 그 가엾은 사나이의 바짝 마른 입술에 가만히 가져갔다. 그러자 그때까지 그토록 말라 불타고 있던 눈 속에 커다란 눈물방울 하나가 돌더니, 오랫동안 절망으로 굳어져 있던 보기 흉한 얼굴을 따라 천천히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아마도 이 불우한 사나이가 난생처음으로 흘린 눈물이었으리라.
-빅토르 위고, 정기수 옮김, 『파리의 노트르담』, 민음사, 2011, 432~433쪽.
카지모도는 자기에게 갑작스레 다가온 불가해한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른다. 사랑에 빠지는 법, 사랑을 느끼는 법, 사랑을 견디는 법. 그 어느 것도 그의 생존 매뉴얼에 없었던 것이다. 그는 살아간다기보다 단지 생존했다. 노트르담의 종을 울리는 그 순간의 짧은 희열 말고는, 어떤 참다운 기쁨도 없었다. 그는 사랑하는 법뿐 아니라 친구를 사귀는 법, 타인의 호의에 감사하는 법, 세상살이에 필요한 갖가지 관계를 맺는 법도 몰랐다. 그가 파리 사람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해 빈사상태에 이르렀을 때, 그는 단 한 모금의 물만이 자신을 구원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물, 단 한 모금만, 아니 단 한 방울만이라도. 흐릿해지는 그의 시야 저편에서 아득하게, 아름다운 한 여인이 나타난다. 자신이 납치하려고 했던 그녀, 자신이 공포에 사로잡히게 했던 바로 그녀, 에스메랄다가 다가와 죽어가는 카지모도에게 물을 먹여준 것이다. 카지모도의 눈에서,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온다. 작가 빅토르 위고는 모든 걸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아마 이것은 이 불행한 사나이가 난생처음 흘린 눈물이었을 거라고. 곱추에 절름발이에 귀머거리에 애꾸눈이었던 카지모도에게, 그녀는 세상을 향해 열린, 단 하나의 창문이었던 것이다.
그가 흘린 첫 번째 눈물, 그것은 엄마도 친구도 연인도 없었던 그가 세상으로부터 처음 선물 받은, 순수한 호의 때문이었다. 에스메랄다는 자신을 납치하려 했던 괴한에게 복수하지 않고, 오히려 궁지에 빠진 그를 구원해준다. 카지모도는 동화책도 소설책도 읽어본 적이 없지만, 그제야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울고 웃고 인생조차 바치는 이유를 깨닫지 않았을까. 카지모도는 시인 그랭구아르처럼 아름다운 미사여구를 구사할 줄도 몰랐고, 프롤로처럼 부와 명예와 권력을 한꺼번에 가지지도 못했으며, 페뷔스처럼 완벽한 외모와 카리스마로 여성을 홀릴 수도 없었다. 그러나 카지모도는 그들 모두에게 턱없이 부족한 것,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도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 진정한 용기를 지니고 있었다. 이제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던 그의 영웅적 열정이 세상 밖으로 뛰쳐나올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시라노 또한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어려운 시점에 도달했음을 깨닫는다. 시라노가 대리편지라는 ‘완전범죄’를 아무런 실수 없이 평생 유지했을지라도, 누군가는 그의 마음을 알아챘을 것이다. 그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다. 크리스티앙은 도대체 왜 록산이 그 험난한 적진을 뚫고 목숨까지 걸며 전쟁터를 찾아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가 아는 록산은 그렇게까지 무모한 여성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사코 회피하고 싶었던 진실이 드디어 누설되는 순간. 록산은 바로 그 ‘편지’ 때문에, 다른 여자들처럼 얌전히 당신을 기다릴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당신의 편지는 내 마음을 뒤흔들었고, 그 어느 때보다도 당신을 열렬히 원하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처음엔 당신의 외모 때문에 반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는 당신의 영혼이 진정으로 나를 사로잡는다고. 누구나 사랑 앞에서는 자기중심적으로 변하기 쉽다. 크리스티앙은 자신도 모르게 ‘그 하잘 것 없는 편지들 때문에’라는 표현으로 시라노의 편지를 폄하한다. 그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매력만으로도 충분히 그녀를 사로잡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편지는 그저 액세서리일 뿐이라고, 그녀를 사로잡고 난 뒤에는 굳이 필요 없는, 목적지로 가는 교통수단일 뿐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는 믿을 수가 없다. ‘그 하잘 것 없는 편지들 때문에’ 그녀가 적진의 위험을 뚫고 목숨을 걸고 전장으로 달려오다니. 그녀는 그렇다면 누구를 만나러 온 것인가. 나의 육체가 아니라 시라노의 영혼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닌가.
크리스티앙: (그녀의 손을 잡으며) 이제 말해주오, 왜 그 온갖 종류의 용병과 난폭한 군인들이 설쳐대는 위험천만한 길들을 거쳐 여기까지 날 만나러 왔는지?
록산: 당신이 보낸 편지들 때문이에요!
크리스티앙: 뭐라고요?
록산: 그 위험들을 무릅썼다고 꾸짖어도 할 수 없어요! 당신의 편지들은 날 취하게 만들었어요! 아! 한 달 전부터 당신이 나에게 얼마나 많은 편지를 썼는지 생각해 봐요, 늘 더 아름다운 편지들을!
크리스티앙: 뭐라고! 그 하잘 것 없는 편지들 때문에…….
록산: (…) 당신이 어느 날 저녁 내 창문 아래에서 내가 몰랐던 목소리로 영혼을 열기 시작한 이후로, 그래요, 난 당신을 숭배해 왔어요. (…) 만약 오디세우스가 당신처럼 편지를 썼다면, 정숙한 페넬로페도 집에서 수나 놓으며 기다리고 있진 않았을 거예요.
-에드몽 로스탕, 이상해 옮김, 『시라노』, 열린책들, 2010, 194~1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