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틀담의 곱추』 vs 『시라노』 4회
세레나데 임파서블
“그럼 나를 남편으로 삼을 생각은 없단 말이죠?”
그녀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말했다. “예.”
“애인으로는?” 그랭구아르는 다시 물었다. (…) “싫어요.”
“친구로는?” 그랭구아르는 계속했다.
그녀는 또다시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한참 곰곰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가능하겠죠.”
(…) “우정이 무엇인지 아나요?” 하고 그는 물었다.
(…) “그것은 오누이가 되는 것, 두 넋이 서로 섞여들지 않고 마주 닿는 것, 한 손의 두 손가락이 되는 거지요.”
“그럼 사랑이란?” 그랭구아르는 계속했다.
(…) “그건 둘이면서도 하나가 되는 거예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나의 천사로 서로 섞여드는 거예요. 그것은 하늘이지요.”
(…) 그녀의 내리깐 기다란 검은 속눈썹에서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일종의 빛이 솟아나와, 라파엘로가 처녀성과 모성과 신성의 신비로운 교차점에서 훗날 다시 찾아낸 저 이상적인 아리따움을 그녀의 옆모습에 주고 있었다.
--빅토르 위고, 정기수 옮김, 『파리의 노트르담』, 민음사, 2011, 191~192쪽.
고백할 수 없는 사랑이 있다. 그런 사랑의 유일한 꿈은 세레나데, 혹은 프러포즈다. 성사되지 않더라도, 고백이라도 시도해보는 것. 사람들은 ‘고백했을 때의 후폭풍’과 ‘고백하지 않았을 때의 후회’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한다. 마음속에서만 생로병사 하는 사랑의 슬픔. 그 끝나지 않는 드라마, 오직 자기 안에서만 태어나고 자라나고 죽어가는 이야기는 인간을 절망시킨다. 하루에도 수없이 마음속의 수많은 목소리가 높디높은 사랑의 바벨탑을 쌓고, 속절없이 무너진다. 이 고통은 쉽게 숨기기 어려운 것이기에 어이없는 실수(?)로 속마음이 탄로 나기도 한다. 그제야 사람들은 깨닫는다. 어쩔 수 없이 탄로 나는 것보다 용기를 내어 고백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탄로는 수치심을 유발하지만, 고백은 아무리 거절당해도 고백만이 지니는 쾌감과 감동이 있다. 내 마음의 무늬가 세상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 자신도 알지 못했던 수많은 감정의 편린들이, 펼쳐질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켠다. 그리하여 고백의 결과와 상관없이 고백은 아름답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그녀, 에스메랄다와 록산. 그녀들은 단지 아름다운 외모뿐 아니라 사람들을 사로잡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 에스메랄다와 록산은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 수많은 남성들의 구애를 예의 바르게 거절한다. 사람들은 에스메랄다에게 갈보라느니 거지 집시라느니 욕을 하면서도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신비로운 빛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 열여섯 살 집시 소녀에게서 꼬마 성모마리아처럼 무한히 사랑받고 동시에 무한히 사랑을 주는 어떤 가슴 시린 이상향을 만난다. 얼떨결에 그녀와 ‘위장결혼’한 그랭구아르는 그녀의 빛을 아주 가까이서 관찰할 기회를 가진다. 그리고 그녀가 위험에 처했을 때 그녀를 구하지 못했음을, 그녀가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에스메랄다는 거절의 가이드라인이 확실하다. “난 나를 지켜줄 남자밖에는 사랑할 수가 없을 거예요.”
한편, 시라노의 고백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채 이루어진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숨긴 채, 록산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녀는 이 아름다운 고백의 목소리가 크리스티앙이라 믿고 있다. 그녀의 창문 아래서 세레나데를 펼치는 주체는 시라노이지만, 그 ‘얼굴’은 크리스티앙처럼 보인다. 어둠 속에서만 시라노는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 그녀가 입 맞추는 것은 크리스티앙의 얼굴이지만 그녀가 입 맞추고 있는 영혼은 바로 시라노의 것이다. 어둠 속에서 자신의 외모를 가린 채 열정적인 고백을 펼치는 그 순간만은 행복하다. 그녀가 나의 콤플렉스를 알아챌까 봐 신경 쓰지 않은 채, 마음껏 자신의 숨겨진 마음을 펼쳐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시라노는 빛나는 재치와 화려한 수사학으로 자신의 슬픔을 감추고 있었다. 그는 혹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들킬까 봐, 늘 수선을 피우며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숨긴다. 그러나 그는 한껏 들이마시고 싶다. 진정 원하는 것만이 피워올릴 수 있는 행복의 향기를. 이 고백 아닌 고백의 순간, 시라노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움츠러들고 주눅 든 영혼이 해방되는 것을 느낀다.
시라노: 당신이 그 높이에서 내 가슴에 험한 말을 떨어뜨린다면 난 이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 거요!
(…) 록산: 정말, 당신 목소리가 완전히 달라진 것 같아요
시라노: (열정적으로 다가서며) 그렇소, 완전히 달라졌소. 날 보호해주는 이 어둠 속에서 난 마침내 감히 나 자신이 되었으니까. (…) 내 마음은 늘 부끄러워 재치로 속내를 감추고 있다오. 별을 따러 떠난 나는 행여나 우스꽝스러워 보일까 봐 멈춰 서서 작은 꽃을 따고 만다오! (…) 난 너무나 두렵소. 그 헛된 심심풀이 말장난으로 영혼이 비어 버릴까 봐. (…) 당신이 영영 아무것도 모른다 할지라도, 가끔 멀찌감치 서서 내 희생으로 탄생된 행복이 웃는 것을 잠시 들을 수만 있다면!
-에드몽 로스탕, 이상해 옮김, 『시라노』, 열린책들, 2010, 133~1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