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틀담의 곱추』 vs 『시라노』 3회
그녀를, 눈앞에서 빼앗기다
카지모도가 (…) 제 한쪽 팔에 명주 목도리처럼 착 휘어진 아가씨를 안고서 어둠 속으로 재빨리 사라져 버렸다.
(…) “살인이야! 살인이야!” 불행한 보헤미아 아가씨는 외치고 있었다.
“게 섰거라, 몹쓸 놈들아, 그 갈보를 이리 내놓아라!”
난데없이, 옆 네거리에서 쑥 튀어나온 기병 하나가 벽력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것은 손에 장검을 들고 완전무장한 친위 헌병대의 한 중대장이었다.
그는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카지모도의 팔에서 보헤미아 아가씨를 빼내어 자기 말안장에 옆으로 앉혔는데, 무시무시한 곱추가 정신을 차리고 제 약탈물을 도로 뺏으려고 중대장에게 달려드는 순간, 그의 뒤를 바짝 따라오던 열대여섯 명의 헌병들이 긴 칼을 손에 쥐고 나타났다. (…) 카지모도는 포위되고 체포되어 꽁꽁 묶였다. (…) 보헤미아 아가씨는 (…) 순찰대장의 잘생긴 용모와 그가 자기에게 베풀어준 구원을 무척 기뻐하는 듯이 그를 한참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 “성함이 뭔가요. 헌병 나리?”
“난 페뷔스 드 샤토페르 중대장이오, 어여쁜 아가씨!”
--빅토르 위고, 정기수 옮김, 『파리의 노트르담』, 민음사, 2005, 143~144쪽.
그는 나에게 없는 것만 골라 가지고 있다. 그녀는 그를 사랑한다. 아마 그것은 내게 없는 그 무엇 때문일 것이다. 나의 결핍을 충족시켜주는 그 무엇. 그것 때문에 그녀는 그에게 매혹되었을 것이다. 질투에 빠진 남성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내게 없는 것’이 ‘경쟁자에겐 있다’는 판단이다. 페뷔스 중대장의 사회적 지위와 카리스마는 카지모도를 괴롭히고, 크리스티앙의 화려한 외모는 시라노를 괴롭힌다. 질투를 느끼는 메커니즘은 비슷하지만, 질투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사뭇 다르다. 심각한 장애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생활 자체를 꿈꾸지 못하는 카지모도가 질투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반면, 시라노는 질투를 자기만의 노하우로 승화시킨다.
아름다운 에스메랄다를 몰래 납치하려다가, 혜성처럼 나타나 그녀를 구하는 멋진 남자 페뷔스에게 에스메랄다를 빼앗긴 카지모도. 그 순간 ‘괴물 같은’ 카지모도에게 공포를 느끼던 에스메랄다는 자신을 구해준 남자에게 첫눈에 반한다. 잘생긴 외모뿐 아니라 전형적인 남성미를 갖춘 페뷔스는 카지모도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해 보인다. 이와 달리 『시라노』의 크리스티앙은 ‘시라노에게 없는 미모’를 가졌지만, 동시에 ‘시라노가 가진 것’을 상기시키는 존재다. 시라노는 열등감만큼이나 자부심도 강한 남성이다. 그의 문학적 재능과 예술적 감식안은 그의 독특한 외모를 오히려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정도로 출중하다. 시라노는 여자들 앞에서만 서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는 크리스티앙에게 엄청난 제안을 한다. ‘너의 외모’와 ‘나의 언변’을 합체시키자고. 그녀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를 내가 써줄 테니, 너는 내 글의 ‘얼굴’이 되어달라고.
크리스티앙은 시라노의 제안에 기겁한다. 당신이 두렵다고. 당신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두렵다고.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하냐고. 시라노는 ‘사랑에 빠진 남자’의 눈빛을 숨기고, ‘넘치는 재능을 주체하지 못하는 예술가’의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자신의 편지로 아름다운 여인을 유혹하고 싶은 것. 그것은 시인이라면 한 번쯤 도전하고 싶은 ‘실험’이라고. 난 자네의 ‘재치’가 될 테니, 자넨 나의 ‘아름다움’이 되어달라고. 과연 록산은 시라노의 편지에 감동하여 크리스티앙에게 더욱 깊이 빠진다. “제가 볼 때,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인 그 말들을 그보다 더 섬세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죠, 잘생긴 청년이니 재치는 없을 거라고!” 록산은 시라노가 쓴 편지인 줄도 모르고, 감격한 나머지 시라노에게 그 편지를 자랑삼아 낭독해주기까지 한다. “당신에게 마음을 빼앗길수록, 내 마음은 점점 더 커져만 가오!”
크리스티앙: 그래요, 저에게도 쉽고 군사적인 재치는 있어요. 하지만 여자들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로 변하고 말죠. (…) 오! 감정을 우아하게 표현할 수만 있다면!
시라노: 지나가는 잘생긴 총사가 될 수만 있다면!
크리스티앙: (…) 분명 난 그녀가 나에 대해 품고 있는 환상을 산산조각내고 말 겁니다!
시라노: 저렇게 잘생긴 통역이 내 영혼을 대신 표현해 준다면!
크리스티앙: (절망에 빠져) 나에겐 능변이 필요해!
시라노: (느닷없이) 내가 빌려주지! 자넨 나에게 정복자의 신체적 매력을 빌려주게. 우리 둘이 함께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보세! (…) 우리 둘이 함께 그녀를 유혹한다면? 내가 불어넣는 영혼이 내 물소가죽 저고리에서 수 놓인 자네의 저고리로 지나가는 것을 느껴 보게나!
--에드몽 로스탕, 이상해 옮김, 『시라노』, 열린책들, 2010, 10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