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틀담의 곱추』 vs 『시라노』 2회
나는 추악하다, 그러므로 사랑받을 수 없다
그는 여태껏 모욕과 제 처지에 대한 경멸과 제 몸에 대한 혐오감밖에 몰랐다. 그러므로 그는 아무리 귀머거리라 할지라도, 제가 미움 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기에 저 역시 미워하는 그 군중의 박수갈채를 진짜 교황처럼 즐기고 있었다. 그의 백성이 미치광이들과 병신들과 도둑들과 비렁뱅이들의 떼거리라 할지라도 무슨 상관이냐! 아무튼 그들은 백성이고 그는 군주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 모든 아이러니컬한 환호를, 그 모든 우롱 섞인 존경을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군중의 존경과 환호 속에는 매우 현실적인 두려움도 약간 섞여 있었다는 것을 말해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 왜냐하면 이 곱추는 실팍졌으니까. 이 앙가발이는 날쌨으니까. 이 귀머거리는 심술궂었으니까. 이 세 가지 특징이 조롱을 완화시켰던 것이다.
-빅토르 위고, 정기수 옮김, 『파리의 노트르담』, 민음사, 2005, 122~123쪽.
열등감 때문에 내면의 동굴 속으로 숨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닥치는 최악의 상황은 바로 ‘나에겐 매력이 없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불친절하고 공격적으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사랑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다른 모든 관계까지도 망쳐버리는 것이다. 카지모도가 바로 그런 경우다. 그는 자신의 콤플렉스 때문에 타인에게 더욱 인색해진다. 남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본다는 이유로 더욱 괴팍해지는 것이다. 타인의 따가운 시선을 향해 더욱 괴팍하고, 더욱 심술궂고, 더욱 까다롭게 굶으로써 자신의 주위에 보이지 않는 방어막을 치는 것이다. 군중은 그를 조롱하면서도 그를 두려워한다. 노틀담의 종지기 카지모도. 그는 마침내 자신에 대한 깊은 혐오감에 빠져 타인들에게 더욱 ‘다가가기 힘든 존재’가 되어버린다.
외모 때문에 지독한 콤플렉스를 가지는 것은 시라노도 마찬가지지만, 시라노는 카지모도보다 훨씬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 그는 외모 ‘이외’의 분야에서는 거침없는 자신감을 발휘한다. 문학, 음악, 과학, 수학 등 다양한 분야에 그는 출중한 재능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주변에 ‘사람을 모으는 재능’ 또한 탁월하다. 남들 위에 군림하기 좋아하는 대부분의 귀족들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은 시라노를 한 번 보면 그의 매력을 잊지 못한다. 그의 재능을 이용해 자신의 명성을 쌓으려는 귀족들의 러브콜을 한사코 거부한 채, 그는 자신의 재능을 저잣거리의 사람들에게 마음껏 무료로 기부한다. 귀족과 칼싸움을 하는 동안 즉석에서 아름다운 시를 지어 청중을 기쁘게 하는가 하면, 연기력이 영 아닌 배우는 아예 연극에 출연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극단의 퀄리티를 높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시라노의 재능과 시라노의 유머에 감탄한다. 그러나 시라노의 진짜 매력은 그 어떤 힘 있는 자에게도 굴복하지 않는 담대함이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인 록산 앞에서만은 한없이 나약해진다. 자신에겐 없는 출중한 미모를 가진 크리스티앙이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리고 그녀 또한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시라노는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만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크리스티앙에게는 시라노가 가진 모든 재능이 전혀 없다. 마치 크리스티앙의 외모와 시라노의 재능을 합치면 완벽한 남자가 탄생할 것만 같다. 시라노는 혹시나 하는 희망으로 록산의 마음을 떠본다. “당신은 아름다운 말과 재치 넘치는 사람만을 사랑하잖소. 만약 그가 문외한, 야만인이라면.” 아직 크리스티앙과 한 마디 대화도 나눠보지 않은 록산은 그가 아름다운 외모만큼 아름다운 재능을 지녔을 것이라 예단한다. 시라노는 고통스럽다.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것도 고통스럽지만, 그 여인이 사랑하는 남자가 그녀가 꿈꾸는 이상형이 아니라는 것도 고통스럽다. 이제 어찌할 것인가. 정말 그녀를 포기해야 하는 걸까.
힘 있는 보호자를 찾고, 그를 주인으로 삼고 (…) 혼자 힘으로 날아오르는 대신 술수로 기어올라야 하나? 아니, 난 싫네. 그들이 하는 것처럼, 재력가에게 시구를 지어 바쳐야 하나? (…) 아니, 난 싫네. 매일 밥 먹듯 굴욕을 삼켜야 하나? (…) 오는 정 받자고 가는 정 주고, 손을 비비며 늘 아첨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나? (…) 아니, 난 싫네! 계산하고, 겁먹고, 창백하게 질리고, 시보다는 방문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청원서를 작성하고, 줄을 서야만 하나? 아니, 난 싫네! 싫어! 싫다고! 난 그 대신…… 노래하고, 꿈꾸고, 웃고, 지나가고, 혼자 있고, 자유를 즐기고, (…) 시를 쓸 걸세! (…)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은 것은 결코 쓰지 않고 (…) 참나무나 떡갈나무는 못 되더라도 빌붙어 사는 덩굴이 되진 않을 걸세. 아주 높이 오르진 못해도, 혼자 힘으로 올라갈 걸세!
-에드몽 로스탕, 이상해 옮김, 『시라노』, 열린책들, 2010, 97~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