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vs 『베니스에서의 죽음』 6회
그들이 외딴섬으로 떠난 까닭은?
어쨌든 당신은 자신을 괴롭히는 정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딘가를 향해 위험하고 고독한 모색의 길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 당신이 어떤 불가사의한 열반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 진리와 자유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죠. 그런데 한순간 사랑에서 해방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지친 영혼이 여자의 팔 안에서 휴식을 찾으려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거기에도 휴식이 없음을 깨닫고 여자를 미워한 거죠. 여자에게는 연민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두려움 때문에 여자를 죽였어요. 위험에서 간신히 빠져나오긴 했지만 아직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못했으니까 말입니다.
(…) 일주일 뒤 나는 우연히 스트릭랜드가 마르세유로 떠났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뒤로 나는 다시 그를 보지 못했다.
--서머싯 몸, 송무 옮김, 『달과 6펜스』, 민음사, 2009, 212~213쪽.
스트릭랜드는 어떤 문명의 만유인력으로부터도 구속되지 않는, 원시적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는 특정 유파의 기법에도, 위대한 대가의 내공에도 기대지 않은 채 오직 자신의 몸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야생의 숨결이 이끄는 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한다. 스트릭랜드를 향한 일방적 사랑에 지쳐버린 블란치는 급기야 자살을 선택하고, 스트로브의 후원-블란치의 사랑으로 구성된 스트릭랜드의 두 번째 유사-가족은 그렇게 처참하게 붕괴된다. 블란치의 죽음 이후, 스트릭랜드는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완전한 자유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망을 더욱 강하게 느낀다. 그가 마르세유를 거쳐 ‘타히티 섬’을 선택한 이유는 그곳이야말로 태곳적 인류의 원시적 충동이 살아 꿈틀거리는 야생의 공간이라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스트릭랜드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가족’과 ‘직업’이었다면, 아셴바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바로 ‘명성’과 ‘명예’였다. 스트릭랜드는 타히티 섬에서 그 모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었고, 아셴바하는 베니스의 리도 섬에서 비로소 자신이 평생 완성하고 싶었던 아름다움의 이상형을 발견했다. 스트릭랜드는 자신이 직접 그리는 그림 속에서, 아셴바하는‘머릿속’이 아닌 ‘실제 인간’에게서 최고의 이상을 발견한 것이다. 외딴섬은 그들에게 도피처이자 해방구였고, 영혼의 안식처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에게 매우 유사한 재난이 닥쳐온다. 도시인으로 살아왔던 그들에게 가장 취약한 것은 바로 ‘몸’이었다. 예술을 위해 자신의 삶은 물론 육체적 건강까지 희생했던 스트릭랜드는 결국 나병에 걸리고, 베니스에 콜레라가 급속도로 전염되는 것을 알면서도 ‘여기 타치오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떠나지 못한 아셴바하는 급기야 콜레라에 감염되고 만다. 흥미롭게도 ‘섬’을 선택한 두 예술가 모두 치명적인 질병에 걸려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다. 질병을 향한 두 예술가의 태도 또한 비슷하다. 스트릭랜드는 인생의 역작을 완성하는 데 온 마음을 다 쏟느라 자신의 몸을 돌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아셴바하는 무서운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베니스의 거리 곳곳에서 각종 수상한 약품 냄새를 맡으면서도, 단지 ‘여기 타치오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베니스를 떠나려 하지 않는다. 예술에 눈먼 스트릭랜드, 사랑에 눈먼 아셴바하. 그들은 그렇게 하나뿐인 ‘육체’마저 그들의 이상을 위해 불태워버린다.
아셴바하는 소년의 일행이 어느 정도 앞서가도록 내버려둔 다음 그들을 따라갔다. 베니스 시가를 두루 산책하는 그들을 남몰래 뒤따라갔던 것이다. (…) 그의 머리와 가슴은 도취되어 있었다. 그의 발걸음은 인간의 이성과 위엄을 자기 발 아래로 꿇어앉히려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는 악령의 지시를 따르고 있었다. (…) 한 고물상 상인의 지저분한 가게 앞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아셴바하를 속여볼 심산으로, 지나가는 그에게 들렀다가 가라고 아첨이 섞인 몸짓을 하며 간청했다. 이것이 베니스였다. 아첨을 잘하는, 믿기 어려운 미녀와도 같은 도시. 어쩌면 동화 같고 어쩌면 나그네를 유혹하는 함정 같은 도시. 이 도시의 썩어가는 공기 중에서 한때 예술이 향락적으로 번성했던 것이다. 이 도시는 자장가를 불러주며 동시에 유혹하는 멜로디를 음악가들에게 들려주었던 것이다.
--토마스 만, 안삼환 외 옮김, 『베니스에서의 죽음』, 민음사, 2009, 497~4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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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정여울
문학평론가, ‘나비’ 편집위원. 2004년 봄 <문학동네>에 「암흑의 핵심을 포복하는 시시포스의 암소―방현석론」을 발표하며 평론가로 데뷔했다. 이후 <공간>, <씨네21>, <출판저널>, <드라마티크> 등에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글을 기고했다. 저서로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 『내 서재에 꽂은 작은 안테나』, 『미디어 아라크네』, 『모바일 오디세이』, 『시네필 다이어리』, 옮긴책으로 『제국 그 사이의 한국』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