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 흑』 vs 『라 트라비아타』 10회
참을 수 없는 권태, 부끄러움, 질투
내가 그 어떤 것보다도 좋아했던 것, 재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보다도 더 좋아했던 것은 오직 ‘몽상’이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스탕달, 이동렬 옮김, 『적과 흑』2, 민음사, 235쪽.
쥘리엥은 거대한 바위 더미 위에 서서 팔월의 태양으로 이글거리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 머리 위에서 매 한 마리가 거대한 바위더미에서 날아올라 때때로 소리없이 거대한 원을 그리며 떠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쥘리엥의 눈은 자신도 모르게 그 맹금을 뒤쫓았다. 새의 유유하고도 힘찬 동작이 그를 탄복케 했으며, 그는 그 힘을 부러워했고, 그 고독을 부러워했다. 그것은 나폴레옹의 운명이었다. 그것이 언제 쥘리엥 자신의 운명이 될 것인가?
-스탕달, 이동렬 옮김, 『적과 흑』1, 민음사, 340쪽.
자기 주변의 모든 인물들을 ‘지루하고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쥘리엥의 비범함 매력은 고독에 탐닉하는 그의 성정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어디에도 제대로 속할 수 없었기 때문에 늘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라는 인상을 강하게 풍겼다.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을 듯한 불안함이 마틸드를 매혹했다. 마틸드의 아름다운 얼굴 위에 서린, 닳고 닳은 ‘권태’의 표정 뒤에는 주체할 수 없는 ‘허영’이 감추어져 있었다. 그녀는 귀족 살롱 특유의 지루하고 뻔한 삶에 권태를 느꼈고, 그녀의 마음속에는 비범한 남자와의 특별하고 허황된 로맨스를 향한 허영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마틸드는 쥘리엥을 통해 자신이 소설책이나 역사책을 통해 알고 있었던 ‘비련의 여주인공’들의 사랑을 모방하고 싶어 한다. 처형당한 연인의 머리를 품에 안고 절규하는 여왕 마고, 위대한 여장부의 대명사인 카트린 드 메디치, 아벨라르의 연인 엘로이즈 등. 마틸드는 그녀의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동경의 리스트’들에 대한 모방 욕망이 사랑이라 착각한다.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보다는 자신이 책에서 읽은 사랑을 실제에서 ‘재현’하고 싶어 한다. 사랑을 체험하기도 전에 사랑이라는 ‘이상적 개념’에 먼저 눈뜬 것이다. 쥘리엥의 캐치프레이즈가 ‘나폴레옹처럼’이라면, 마틸드의 캐치프레이즈는 ‘여왕 마고처럼’, 또는 ‘소설 속 모든 멋진 여주인공처럼’일 것이다.
쥘리엥에게는 ‘당신들보다 더 높은 존재가 될 거야’라는 야망과 ‘당신들 같은 위선자나 속물이 되긴 싫어’라는 욕망이 공존하고 있다. 어딜 가나 ‘난 너희들과 달라’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지탱해주는 자기 최면이었다. ‘난 너희들과 다르다’는 것을 매번 온몸으로 보여주려 하다 보니 그는 자연스럽게 경직된 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흥미롭게도 그 어색함, 그 어쩔 줄 모름이 뿌리 깊은 귀족 소녀 마틸드를 매혹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다. 마틸드는 쥘리엥에게서 평범한 귀족들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참신한 매력을 느끼지만, 마틸다는 마치 소설 속의 멋진 인물들을 ‘모방’하듯 자신의 사랑을 연출했고, 쥘리엥은 그녀의 연출에 무력하게 조종당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드 레날 부인을 잊지 못했던 것이다. 드 레날 부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영원히 쥘리엥을 잊고 다시 귀부인의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가려 애쓰지만, 쥘리엥이 마틸다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자 참을 수 없는 질투심에 사로잡히고 만다. 이제 세 사람의 관계는 되돌릴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한편 『라 트라비아타』의 마르그리트는 아르망을 잃고 점점 더 병색이 짙어지고, 아르망은 점점 더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한다. 아르망은 마르그리트가 초연함을 잃지 않는 모습, 그녀가 자신만의 고귀한 자존심을 잃지 않는 모습에 더욱 충격을 받는다. 아르망은 마르그리트를 괴롭히기 위해 온갖 사악한 음모를 꾸미면서도, 그녀를 향한 그리움을, 그녀를 향한 부끄러움을 지울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묘사한다. 마음으로는 어떤 죄도 생각하지 않는데도 손으로는 온갖 죄를 범하고 마는 남자와 같다고. 마르그리트를 향한 그의 온갖 폭언과 사악한 행동은 그녀를 끝까지 지켜줄 수 없는 자신의 비겁함을 잊기 위한 위악의 제스쳐였던 것이다.
그녀가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 되고 나서야, 아르망은 마르그리트가 자신을 떠난 것이 진심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한 번도 아르망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틈만 나면 그녀의 진심을 의심한 것은 오히려 아르망 자신이었던 것이다. 마르그리트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이제는 자신을 그만 괴롭혀 달라는 부탁을 하러 아르망을 찾아온다. 당신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테니, 이제 그만 나를 놓아달라고. 이 괴로운 삶도 이제는 얼마 남은 것 같지 않다고. 그 와중에도 마르그리트는 끝까지 아르망의 아버지가 그녀를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꺼내놓지 않는다. 아르망의 찬란한 미래가 자신의 지울 수 없는 슬픔으로 얼룩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전에 우리 집에 왔을 때, 마르그리트는 지금 앉은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다만 그때 이후 그녀는 다른 남자의 것이 되었습니다. 나 이외의 입맞춤이 입술에 닿은 것입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입술에 빨려 들어가 지금도 옛날과 다름없이, 어쩌면 그 이상으로 마르그리트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 “아르망. 그때의 사정은 저로서는 어떻게도 할 수 없었어요. 당신은 아무래도 화류계 여자의 천성이지, 하고 말씀하고 싶으시겠지만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던 거예요. 당신도 언젠가는 알게 되면 저를 용서해주실 거예요.”
“왜 그 이유를 오늘 말하지 못하지?”
“왜냐하면 말해봤자 우리들 사이가 예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고, 뿐만 아니라 당신이 헤어져서는 안 될 분들과 헤어지게 되기 때문이에요.”
“그 사람들이 누구야?”
“말할 수 없어요.”
-뒤마 피스 지음, 양원달 옮김, 『춘희』, 신원문화사,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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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정여울
문학평론가, ‘나비’ 편집위원, 계간 <자음과모음> 편집위원. 2004년 봄 <문학동네>에 「암흑의 핵심을 포복하는 시시포스의 암소―방현석론」을 발표하며 평론가로 데뷔했다. 이후 <공간>, <씨네21>, <출판저널>, <드라마티크> 등에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글을 기고했다. 저서로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 『내 서재에 꽂은 작은 안테나』, 『미디어 아라크네』, 『모바일 오디세이』, 『시네필 다이어리』, 옮긴책으로 『제국 그 사이의 한국』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