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 흑> vs <라 트라비아타> 8회
열정, 허영, 그리고 질투의 삼각관계
드 레날 씨는 아내가 완전히 순결하다고 생각하기로 작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베리에르의 여론이 난처한 지경에 빠져 있음을 아내에게 고백한 것이었다. 여론은 잘못된 것으로 질투하는 사람들이 오도한 것이다. 그러나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 드 레날 부인에게 떠나야겠다는 무서운 소식을 알리면서 쥘리엥은 한 가지 사실에 놀랐다. 부인이 아무런 이기적인 반대도 제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 “나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러나 내가 죽더라도 아이들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세요.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아이들이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힘써주세요. 또다시 혁명이 일어나면 귀족은 모두 참살당할 거예요. (…) 잘 가요, 쥘리엥! 여기서는 이게 마지막 순간이에요.”
- 스탕달, 이동렬 옮김, 『적과 흑 1』, 민음사, 260~261쪽.
때로 열정과 허영의 외모는 매우 흡사하다. 열정의 외모로 우리를 속이는 허영도 있고, 허영처럼 보이지만 진심 어린 열정이 보석처럼 숨겨져 있을 때도 있다. 쥘리엥은 자신의 마음속에 감춰진 욕망의 활화산이 순수한 열정이라고 믿는다. 나폴레옹처럼, 세상의 밑바닥에서 세상의 최정점으로 치고 올라가는 것. 그런 삶을 꿈꾸는 쥘리엥은 자신의 불타는 허영심을 스스로는 잘 인정하지 못한다. 성격과 욕망의 불일치, 바로 거기서 쥘리엥의 불행이 시작된다. 그는 나폴레옹의 세계, 즉 성공한 군인의 길과 같은 세속적인 꿈을 꾸면서도(‘적赤’), 평화와 안식의 세계를 상징하는 성직자의 꿈(‘흑黑’)을 쉽게 놓아버리지 못한다. 그는 모든 상황에서 철저히 이중적으로 행동한다. 귀족이 되고 싶으면서도 막상 귀족들을 보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혐오하며, 부자가 되고 싶으면서도 막상 부자들과 함께 있으면 어색함을 참지 못한다. 그는 항상 ‘적’을 꿈꾸면서 ‘흑’을 갈망한다.
쥘리엥은 드 레날 부인을 사랑하면서도 그녀를 향한 열정을 ‘상승의 욕구’와 구분하지 못한다. 반대로 성공을 위해 라 몰 후작의 딸 마틸드와 사귈 때에는, 그것이 ‘허영’인지도 모른 채 사랑이라 믿는다. 그는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을 때의 성취감과 사랑하는 이의 곁에만 있어도 행복한 느낌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마틸드를 욕망하면서 마음속에서 드 레날 부인을 지우지 못하고, 세속적 성공을 바라면서 상류사회의 위선과 부패를 보면 구토를 느낀다. 드 레날 부인과의 사랑을 지배하는 것이 ‘열정’이었다면 마틸드와의 사랑을 주도하는 것은 ‘허영’이다. 드 레날 부인은 쥘리엥을 사랑하면서도 그를 놓아주지만, 마틸드는 쥘리엥을 사랑하기보다는 쥘리엥을 통해 위대한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을 모방하는 것을 즐긴다. 마틸드의 뼛속 깊이 배인 자연스러운 허영은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신출내기 줄리엥의 허영을 만족시켜준다. 아무것도 부족할 것 없이 자란 마틸드는 허영조차 오만하게 추구한다. “나와 같은 여자의 운명에는 모든 것이 특이해야 만해.”
열정이 ‘질투’라는 이름과 결합할 때, 그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아르망은 마르그리트에게 버림받은 순간, 자신의 순수한 열정이 거부당했을 때의 참혹한 좌절감을 맛본다. 열정의 화살이 향하고 있었던 과녁이 사라지면, 눈먼 열정의 화살은 분노의 불화살로 바뀌어버린다. 그녀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던 아르망은, 이제 그녀에게 복수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아르망은 마르그리트의 질투를 유발하기 위해 오랑프라는 젊고 아름답고 창녀를 유혹한다. 그는 열정이 연소해버린 자리에 잡초처럼 자라나는 분노의 그림자를 따라가느라 마르그리트의 얼굴에 어린 슬픔의 그림자를 알아보지 못한다. 분노로 눈이 멀어버린 아르망에게는 가장 중요한 진실이 보이지 않는다. 마르그리트는 아르망을 떠나 겉으로는 매우 요란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요란한 생활이야말로 그녀의 깊은 슬픔을 가리기 위한 세련된 장막이었음을.
내 옆을 지나칠 때 마르그리트는 안색이 변하며 신경질적인 웃음으로 입술을 일그러뜨렸습니다. 나도 심한 고동으로 가슴이 들먹거렸습니다. 그러나 겨우 차디찬 표정을 되찾자 지난날의 연인에게 차디차게 목례를 했습니다. (…) 만약 마르그리트가 불행하게 되어 그녀를 구하러 가지 않으면 안 된다면, 나는 아마도 그녀를 용서하고 괴롭히려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행복했습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나 때문에 계속할 수 없었던 사치스러운 생활을, 그녀는 다시 시작한 듯 보였습니다. (…) 나는 사랑뿐 아니라 자존심까지 손상당했습니다. 나의 고통은 반드시 그 여자에게 보상받아야만 했습니다.
- 뒤마 피스, 양원달 옮김, 『춘희』, 신원문화사, 1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