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 흑> vs <라 트라비아타> ④
준비되지 않는 감정, 기획할 수 없는 행동
스스로를 억제하느라 너무 애쓴 나머지 쥘리엥의 목소리는 변할 수밖에 없었다. 뒤따라 드 레날 부인의 목소리도 떨렸으나 쥘리엥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의무감과 소심함이 벌이는 무서운 싸움이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그는 자기 이외의 어떤 것도 알아볼 상태가 못 되었던 것이다. (…) 10시를 알리는 마지막 종소리가 아직 울려 퍼지고 있을 대 마침내 그는 손을 내밀어 드 레날 부인의 손을 잡았다. 부인은 즉시 손을 뺐다. 쥘리엥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다시 그 손을 잡았다. 그 자신이 몹시 흥분해 있었는데도 그는 부인의 손이 얼음같이 차가운 것에 놀랐다. 그는 발작적인 힘을 기울여 그 손을 꼭 쥐었다. 부인은 손을 빼내려고 마지막 안간힘을 썼으나 마침내 그 손은 쥘리엥의 손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
- 스탕달, 이동렬 옮김, 『적과 흑』, 민음사, 2010, 65~66쪽.
드 레날 부인은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성직자와 수녀로만 가득했던 주변에는 연애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리는 사람들뿐이었기에 연애의 구체적인 감정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녀는 이 감정이 사랑인 것조차 모른 채 쥘리엥을 아끼고 배려하고 신경 쓴다. 그것이 연애감정임을 분명히 인식했다면 드 레날 부인은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쥘리엥을 바라보는 일의 순수한 기쁨에 젖은 드 레날 부인은 순진하게도 자신의 마음이 ‘사랑’임을 인식하지 못한다. 반면 우연히 둘만 함께 있게 될 때마다 감도는 ‘어색한 침묵’ 앞에서 쥘리엥은 쩔쩔 맨다. 그는 드 레날 부인 앞에서는 ‘미리 준비한 말’ 빼고는 어떤 자연스러운 반응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다. 하녀 엘리자의 ‘분수에 걸맞은 청혼’도 단호하게 거절한다. 가난한 가정교사 쥘리엥의 마음속에서는 지금까지의 고통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절대적인 고통,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드 레날 부인에게도 드디어 이 사랑의 고통이 전염된다. 하녀 엘리자가 쥘리엥에게 청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드 레날 부인은 자기 안의 격정을 비로소 감지하게 된다. 쥘리엥이 다른 여인의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자신과 쥘리엥 사이의 그 ‘어색한 침묵’의 정체가 차마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쥘리엥은 원래 성직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사교계의 속물들 속에서 ‘위대한 신사’도 ‘위대한 성직자’도 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쥘리엥의 마음속에 꿈틀대는 격정은 아직은 그 무엇도 될 수 없지만 미래에는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젊음의 가능성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었다. 그는 화려한 성공도 하고 싶었고 우아한 성직자도 되고 싶었으며 아름다운 사랑의 주인공도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자신의 솔직한 열망 중 하나도 제대로 인정하지 못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라난 이 눈부신 엘리트 청년은 자기 안의 열망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여유를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라트라비아타>
이 여자에게는 어딘가 맑은 데가 있었습니다.
이런 생활에 막 발을 들여놓았을 뿐, 아직 악습에 물들지 않은 것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침착한 걸음걸이, 가늘고 약한 몸매, 장밋빛의 열린 콧구멍, 어렴풋이 푸르게 물든 커다란 눈, 그와 같은 것들은 육욕의 향기를 뿌려대는 격렬한 성질을 나타내고 있어서, 예를 들어 말하면 아무리 마개를 막아도 그 속의 향기를 발산하는 저 동양의 향수병을 꼭 닮았습니다. (…) 즉 이 여자 속에는 우연한 계기로 창부가 된 처녀와, 그 창부에서 우연한 계기로 정말 가련한, 참으로 청순한 처녀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창부가 엿보였습니다.
- 뒤마 피스, 양원달 옮김, 『춘희』, 신원문화사, 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