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 흑』 vs 『라 트라비아타』②
사랑, 경이와 연민의 눈부신 이중주
쥘리엥은 속옷이 몇 벌 안 되어 집 밖에서 자주 빨도록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작은 일 때문에 하녀 엘리자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짐작도 못했던 이런 극도의 빈곤이 드 레날 부인의 마음을 두드렸다. 그녀는 쥘리엥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으나 선뜻 그러지도 못했다. 이 마음속 갈등은 쥘리엥이 그녀에게 야기한 최초의 고통스러운 감정이었다. (…) 점차로 그녀는 쥘리엥에게 결핍되어 있는 모든 것에 대해 기분이 상하기는커녕 동정심을 느끼게 되었다. (…) 많은 재산의 상속녀로 일찍부터 아첨의 대상이 되었고, 열렬한 신앙심을 타고난 그녀는 전적으로 내성적인 삶의 방식을 지니게 되었다. (…) 쥘리엥이 올 때까지 그녀는 실제로 자기 아이들에게만 관심을 가져왔다. 아이들의 사소한 질병, 괴로움, 작은 기쁨만이 브장송의 성심 수녀원에 있을 때 하느님을 경배한 경험밖에 없는 이 영혼의 모든 감수성을 사로잡고 있었다.
-스탕달, 이동렬 옮김, 『적과 흑』, 민음사, 2004, 62~64쪽.
계급의 균형추가 심각하게 기울어지는 사랑에 빠졌을 때, 상대적인 약자는 더욱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내적인 타격과 상관없이, 더 많은 소문과 눈총의 뭇매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약자 쪽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사랑을 ‘상승의 욕망’, 즉 속물적 욕망과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저 매춘부는 귀족 청년 하나를 꼬드겨 팔자를 고치려 하는군.’ ‘저 가정교사는 감히 귀부인을 유혹해서 부귀영화를 꿈꾸는 것 아냐?’ 『라 트라비아타』의 마르그리트와 『적과 흑』의 쥘리엥은 각각 그런 ‘소문의 권력’과 싸워야 한다. 파리의 사교계라는 막강한 소문의 공동체가 발휘하는 스캔들 메이킹의 파급력은 막강하다. 어떻게 ‘한낱’ 창부가 귀족청년을 넘보는가. 어떻게 ‘일개’ 가정교사가 귀부인의 연인이 되는가.
그러나 소문의 베일을 걷고 사태를 바라보면 그 사랑의 ‘평범성’에 놀라게 된다. 사랑은 똑같다. 소름끼치도록 똑같다. 우리들의 사랑과 그들의 사랑은. 평범한 사랑이든 드라마틱한 사랑이든 그 시작과 끝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계급의 저울추가 심각하게 ‘기우뚱’하는 사랑이라 할지라도 사랑의 본질은 같기 때문이다. 사랑은 한쪽의 ‘경이’ 혹은 다른 한쪽의 ‘연민’으로 시작된다. 어떻게 저토록 아름다운 사람, 저토록 대단한 사람이 있을까 하는 것이 ‘경이’의 본질이고, 그토록 아름다운 사람이 어떻게 저토록 고통스러울 수 있을까 하는 슬픔이 ‘연민’의 본질이다. 그리하여 적어도 사랑의 테두리 안에서는 경이와 연민이 동급의 감정이다. 그의 사소한 눈길에도 심장이 터질 것 같고, 그의 하찮은 우울조차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된다. 그에 대한 경이가 커질수록 연민 또한 더욱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평생 평화롭고 경건한 삶밖에는 살아본 적 없는 드 레날 부인의 눈에 비친 쥘리엥은 이러한 ‘경이’와 ‘연민’의 도가니다. 속옷을 살 형편이 안 되어서 ‘너무 자주’ 속옷을 세탁해야 하는 쥘리엥의 심각한 빈곤이 드 레날 부인에게는 폐부를 찌르는 고통이 된다. 저렇게 아름답고 성실하고 지적인 청년이 저토록 비참한 가난 속에 살아가야 한다니. 『라 트라비아타』의 아르망 또한 마르그리트에게 경이에 비례하는 연민을 느낀다. 이제 갓 스물네 살이 된 귀족 청년 아르망은 한 번도 이런 격정에 휘말려 본 적이 없다. 내가 처음으로 미친 듯이 사랑하게 된 여자가 매춘부라니. 그러나 저 여인은 어떻게 저토록 고상하고 우아한 걸까.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어떤 귀부인의 자태보다 기품 있고 고귀해 보인다. 사랑은 이렇게 ‘똑같이’ 찾아온다. 상대방의 계급, 직업, 혈통 그 어떤 것도 사랑의 이 눈부신 ‘똑같음’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들어봐요, 마르그리트.”
나는 참을 수 없는 가슴속을 단숨에 털어놓았습니다.
“당신이 내 일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것은 나로서는 알 수 없어. 하지만 나는 알고 있소. 현재 당신만큼 내 마음을 끄는 여성은 한 사람도 없단 말이요. (…) 당신을 처음 만나고서부터 늘 그랬어. 그러니까 제발 몸을 돌보고 이런 생활에서 발을 씻어 줘요.”
“몸을 소중히 하면 난 죽어버릴 거예요. 나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지금의 열병 같은 생활이에요. 게다가 몸을 돌본다는 일 따위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있는 여자들의 것이에요. 남자들의 허영이나 쾌락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금방 버림을 받아 지루한 낮과 밤이 계속되지요. 나는 잘 알고 있어요. 보세요, 요전에 두 달 동안이나 자리에 누워 있었지요. 그랬더니 삼 주일째부터는 아무도 와주지 않았어요.”
-뒤마 피스, 양원달 옮김, 『춘희』, 신원문화사, 2004, 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