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트라비아타』 vs 『적과 흑』①
스캔들, 욕망의 치명적 함정
그들은 감정을 상하게 함으로써만 감정을 건드릴 수 있다.
-어떤 현대인
그는 자기를 받아들여준 상류사회에 대해 증오와 혐오만을 느꼈다. 실상 그는 그 사회에서
테이블의 말석을 차지한 셈이었는데, 어쩌면 그것이 증오감과 혐오감을 설명해주는 이유
인지도 모른다. 때로 화려한 만찬회가 열리곤 했는데 그럴 때면 그는 주위의 모든 것에
대한 증오를 억제하기 힘들었다. (…) 빈민의 복지를 관리하게 된 이후로 명백히
제 재산을 두세 배나 불린 자(드 레날씨)에 대한 경의와 치사한 존경의 꼴이라니!
놈은 다른 사람들보다 그 비참함이 더 존중되어야 할 고아들을 위해 마련된
기금까지 착복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아아! 짐승만도 못한 놈! 더러온 놈!
(…) 쥘리엥은 너무 일찍부터 경계심을 품었다. 그는 드 레날 부인이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했으나 그 아름다움 때문에 그녀를 미워했다.
-스탕달, 이동렬 옮김, 『적과 흑』, 민음사, 2004, 60~61쪽.
각종 ‘소문’을 어떻게 유통시키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분위기가 결정되곤 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주로 온라인 커뮤니티가 소문을 통제하고 관리한다면, 서양 중세사회에서는 ‘교회’와 ‘왕실’이 그런 역할을 했다. 보다 작은 단위에서 소문을 유통시키는 아날로그적 커뮤니티는 이를테면 전근대사회의 ‘빨래터’나 초기 근대사회의 ‘이발소’, ‘까페’ 같은 곳이다. 서양 근대사회의 여명이 밝아오던 시기, 막 부르주아가 사회의 기득권을 흡수하기 시작한 시대에는 ‘사교계’가 그런 역할을 했다. 각종 소문이 제조되고, 확장되고, 조작되고, 왜곡되는 곳. 소문의 위력은 실로 대단해서 한 사람의 인생쯤은 순식간에 파멸시킬 수 있다. 『적과 흑』, 『라 트라비아타』의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스캔들, 즉 추악한 소문이다.
작품 속에서 프랑스 파리 사교계의 중심을 뒤흔든 역사적 스캔들의 주인공, 『적과 흑』 가정교사 쥘리엥과 『라 트라비아타』의 매춘부 마르그리트. 그들은 소문 때문에 고통받고 소문 때문에 주목받으며 마침내 소문 때문에 희생되는 비극적 인물이다. 이들이 살았던 시대에는 나쁜 소문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곧 사회적 패배이자 개인적 실패로 여겨졌다. 이런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의 ‘중론’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타인의 스캔들에 빌붙어 살아가는 호사가들, 말하자면 잠재적 파파라치들이 가장 활개를 치기 좋은 환경인 셈이다. 이제 『라 트라비아타』의 아르망은 ‘창녀와 사랑에 빠진, 한때 전도유망했던 귀족청년’이라는 추문과 싸워야 한다. 『적과 흑』의 쥘리엥은 ‘귀부인과 사랑에 빠진 가난한 가정교사’라는 추문과 싸워야 한다.
『적과 흑』의 쥘리엥은 자신의 주인을 증오하는 아랫사람의 전형이다.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머리하나는 기막히게 좋은 이 청년은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전투의 의지로 가득하다. 그가 보기엔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에 연루된 드 레날씨가 아름다운 부인을 차지하고 앉아 부귀영화를 누리며 자신처럼 훌륭한 청년을 하인처럼 부려먹는 행태가 한없이 추악하게 느껴진다. 쥘리엥은 하층계급의 최상위권이자, 상층계급의 최하위권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이다. 그에게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다. 그에게 펼쳐진 인생의 딜레마는 ‘용의 꼬리’와 ‘닭의 머리’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괴로움과 같다. 그러나 드 레날 부인에게만은 자신의 날 선 분노를 보여주고 싶지 않다. 자신을 순수하게 연민하는 드 레날 부인의 따뜻한 시선 앞에서 쥘리엥은 괴로워한다. 쥘리엥에게 드 레날 부인은 자기의 출세를 가로막을지도 모르는 장애물로 보인다. 자신을 향한 그녀의 연민조차 출세를 가로막는 암초로 느껴진 것이다. 그는 처음 만나던 날 그녀의 손에 키스했던 황홀감을 잊기 위해 되도록 그녀와 적게 이야기한다.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유혹당할까봐, 그녀에게 아주 잠시라도 사랑을 느낄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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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온 거리에 보석과 염문의 씨를 뿌리는 여자들의 내막이 지금 그 모습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내가 방문한 방의 주인은 이미 죽고 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지조가 있는 부인이라도 안심하고 그 방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볼 수 있다. 죽음은 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추악한 장소의 공기를 말끔히 씻어 냈고, 필요하다면 그럴듯한 핑계도 댈 수 있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인들은 진귀한 물건들 틈에서 창부의 생활 흔적을 찾아내려고 혈안이 되었다. 창부의 살림살이에 대해서는 갖가지의 일화가 없는 말까지 보태져 귀에 들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아깝게도 비밀은 여신과 함께 죽어 없어졌다. 부인들은 혈안이 되어 살펴보았지만 거기서 발견한 것은 창부가 죽은 뒤 팔려고 내놓은 물건들뿐이고, 생전에 여기서 몸을 판 흔적은 아무도 찾아내지 못했다.
-뒤마 피스, 양원달 옮김,『춘희』, 신원문화사, 2004, 24쪽.<{131406427134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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